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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아직도 아프니?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2) 아직도 아프니? 옥계리 마을회관에서 하룻밤 묵은 다음 날, 아침을 부녀회장님 집에서 먹었다. 새로 만든 두부와 순두부로 아침상을 차렸는데, 밑반찬으로 오른 반찬들이 더없이 정겨워 보였다.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찬이었다. 정겨운 것은 상 위에 오른 반찬만이 아니었다. 부녀회장님 내외는 물론 함께 사시는 어머니, 이웃에 사는 시동생 내외 등 가족들이 둘러앉으니 대가족이었다.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아침상에 활기가 넘쳤다. 식사를 마친 뒤 냉장고에서 꺼내주는 시원한 물 한 병을 받아들고 길을 나섰다. 여느 농촌과 다를 것이 없는 평화로운 길이 이어졌다. 곳곳에 밤꽃이 피어있고, 드문드문 집이 나타나고, 도로 옆으로는 논이 이어지고 있었다. 눈앞에 펼.. 2017. 12. 6.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와 꿀잠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1) 낯선 곳, 어색한 잠자리와 꿀잠 구름에 달 가듯이 그렇게 가면 얼마나 좋을까만,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멀게 느껴졌고 걸음은 무겁고 더뎌졌다. 긴장으로 응축되었던 몸과 마음이 점점 풀어지는 듯 시간이 지날수록 헐거워지고 느슨해진다 싶었다. 먼 길을 격려차 찾아온 어머니와 형과 함께 점심을 먹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는 군대 간 아들 면회를 오신 듯 바리바리 간식이며 과일 등을 챙겨 오셨다. 철도 중단역인 백마고지역으로 달리는 경원선 열차, 언제나 길이 열려 북쪽 끝까지 숨가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찾아올지. 오후에는 하루를 묵기로 한 대광리역까지 가야 했다. 길은 거반 개울을 따라 이어졌다. 개울을 따라 걷는 것은 아스팔트를 걷는 것에 비하면 거의 천국과.. 2017. 11. 29.
어머니의 마중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40) 어머니의 마중 아흐레째 일정은 철원 고석정에서 시작했다. 게르마늄 온천수가 솟는 호텔이 있다고 로드맵에는 적혀 있었지만, 호텔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빨래 말리는 건조대까지 구비가 된 좋은 숙소였다. 입구에 걸려있는 달력을 보고 주인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것은 성지교회 청년들이 수련회를 다녀오기도 한 구수감리교회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펜션 주인은 구수교회 권사님이었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서는 내게 권사님은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긴 꿀을 전해주었다. “정말로 좋은 꿀이에요. 걸으면서 드세요.” 따뜻하고 진심어린 응원이었다. 권사님이 주신 꿀을 배낭에 넣고 물을 마실 때마다 섞어서 마셨다. 걸음을 서둘렀다. 전날 희준 형(兄).. 2017. 11. 13.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9) 그날 주일 종은 울리지 않았다 “목사님 어디쯤이신가요? 순교하신 한사연 목사님의 손자 한영순 권사님 댁이 김화 사거립니다. 이 폭염에 혹여 잊어버리실까 봐~” 김화를 지나면서는 함광복 장로님이 꼭 찾아가기를 권했던 한 권사님을 뵙고 가기로 했다. 김화에 도착을 했을 때는 점심 무렵,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함 장로님이 권한 찌개 잘한다는 식당이었을까, 눈에 띄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더니 사람들로 가득했다. 원래 그런지 손님이 많아 그런지 혼자 온 손님은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혼자 가도 받아주는 식당’을 찾았고, 마침 보신탕과 삼계탕을 하는 식당을 찾았다. 삼계탕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식사를 .. 2017. 11. 7.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8) 선입견 하나를 송구함으로 버리다 벅차게 수피령을 오를 때에 비하면 내리막길은 편하고 쉬웠다. 경사가 그랬고, 바람이 그랬다. 걸음을 옮기며 따로 힘을 주지 않아도 걸음은 절로 옮겨졌다. 땀 흘린 뒤에 맞는 바람은 여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원했고 고마웠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걸어가고 있을 때 저만치 한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었다. 인적도 없는 이 한적한 곳에 웬 공원, 생뚱맞고 어색하게 여겨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워낙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살지만 그래도 같은 이름을 가진 한 탤런트의 얼굴이 생각났다. 지자체마다 수익이 되는 사업을 경쟁적으로 벌이다보니 빚어진 일이 아닐까 싶었다. 혹.. 2017. 10. 24.
오르막과 내리막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7) 오르막과 내리막 수피령은 정말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로드맵에도 수피령을 두고는 ‘직등코스’라 적혀 있었고, 전날 길을 걷던 중 우연히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눈 심마니도 마음을 단단히 먹고 넘어야 한다고 일러준 터였다. ‘수피령’이라니,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물 수’(水)에 ‘가죽 피’(皮)에 ‘재 령’(嶺), ‘水皮嶺’이라 쓰고 있었다. 어찌 그런 이름을 얻었을까 싶은데 함장로님은 ‘말이 씨가 되었나, 96년 대홍수 때 대성산 수피령은 온통 물을 뒤집어쓰는 대피해가 있었다.’고 수피령에 얽힌 일 한 가지를 소개했다. 이른 아침 숙소 앞에 있는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길을 나섰다. 막 퍼지기 시작하는 볕인데도 벌써 더위가 느껴질 정도였다. 단단히 마음을 먹.. 2017. 10. 19.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6)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뜻이 있어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걷는 기도의 일정은 열하루로 정해졌다. 주일 지나 월요일에 길을 떠났고, 길 떠난 다음 주 금요일에 말씀을 나눌 신우회 예배가 있어 목요일까지는 돌아와야 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열하루의 일정이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성의 명파초등학교에서 파주의 임진각까지의 거리를 열하루의 일정으로 나누니 조금 무리다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가능한 거리가 아니었던 것도 일정을 정하는데 있어 큰 몫을 했다. 일정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길을 떠났는데, 곰곰 그 의미를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같은 지방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천성환 목사님은 길을 걷고 있는 내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내주었다. .. 2017. 10. 14.
혼자 드린 예배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5) 혼자 드린 예배 걷는 기도의 일정이 열하루였으니 도중에 주일이 한 번 들어 있었다. 떠나기 전부터 고민이 되었다. 주일이 되면 걷기를 멈추고 교회로 돌아와 예배를 드려야 할까, 그런 뒤에 다시 걷기를 이어거야 할까, 아니면 계속 걸을까…, 그러다가 결정을 내렸다. 계속 걷기로 했다. 주일 예배 설교를 부목사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래도 되는지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걱정할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또 하나 이어지는 고민, 그렇다면 걷다가 만나게 되는 주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러다가 그것도 결정을 내렸다. 그것 또한 결정을 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혼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일정을 보니 주일을 맞게 되는 곳은 화.. 2017. 10. 10.
거미의 유머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4) 거미의 유머 익살스러운 농담이나 해학(諧謔)을 뜻하는 ‘유머’는 막혔던 숨을 탁 터뜨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싶다. 마치 물속에 잠겨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던 이가 물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그런 순간처럼 말이다.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지는 것과도 같아서 내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단번에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도무지 긍정할 수 없었던 것을 웃음으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수피령은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걸음을 이어가야 했다. 한 유머 강사는 그의 책에서 ‘당신은 테러리스트인가, 유머리스트인가?’를 묻고 있는데, 그의 .. 2017. 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