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거미의 유머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4) 거미의 유머 익살스러운 농담이나 해학(諧謔)을 뜻하는 ‘유머’는 막혔던 숨을 탁 터뜨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싶다. 마치 물속에 잠겨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던 이가 물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토해내는, 그런 순간처럼 말이다.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려지는 것과도 같아서 내내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을 단번에 이해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순간이기도 하고, 도무지 긍정할 수 없었던 것을 웃음으로 긍정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수피령은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걸음을 이어가야 했다. 한 유머 강사는 그의 책에서 ‘당신은 테러리스트인가, 유머리스트인가?’를 묻고 있는데, 그의 .. 2017. 10. 1.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3)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깊은 산중으로 이어지는 길, 걸어도 걸어도 사람이 보이지를 않았다. 그런 외진 곳에 가게가 있을 리는 만무한 일이었고, 물 없이 길을 나선 나는 점점 심해지는 목마름을 어렵게 견뎌내야 했다. 원래 사람이 없는 곳인지, 날이 무더워 밖으로 나오지를 않은 것인지 한 사람을 만나기가 이렇게도 어려울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정 안 되면 계곡물이라도 마셔야지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내 사람을,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길가 밭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일을 하고 있었다. 외진 곳에서, 목이 말라 고통스러울 때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줄이야. “물 좀 마실 수가 있을까요?” 아마도 나는 “안녕하세요!”나 “수고하십니다.”라는 인사보다도.. 2017. 9. 24.
물 없이 길을 간다는 것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2) 물 없이 먼 길을 간다는 것 단순한 실수가 중요한 실수가 될 때가 있다. 가볍고 단순하다 싶어도 실수의 결과가 치명적인 것들이 있다. 그 날 일도 그 중의 하나였다. 화천에서의 숙소는 생각지 못한 곳으로 정해졌다. 화천읍내에 도착을 해서 보니 거리마다 군인들이 가득했다. 삼삼오오 군인들끼리 어울려 다니기도 했고, 면회를 온 애인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다니는 모습들이 흔했다. 궁금해서 물었더니 무슨 큰 훈련을 마친 뒤여서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한꺼번에 외박을 나온 것이라 했다. 거리만이 아니었다. 후배 목사를 만나기 위해 잠깐 찻집에 들렀을 때, 찻집 안을 가득 채운 것도 군인들이었다. 애인과 마주앉아, 아니면 옆자리에 앉아 마음에만 두었던 이야기와 쟁여.. 2017. 9. 18.
몰랐던 길 하나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1) 몰랐던 길 하나 평화의 댐 정상에 있는 물 기념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에 식당이 있는 것이 다행이었는데, 메뉴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산천어가스였다. 화천은 세계적인 겨울축제로 자리 잡은 산천어축제가 유명한 곳, 산천어로 튀김을 한 요리였다. 화천에 왔으니 당연하다 싶은 마음으로 산천어가스를 택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식당에서 일하는 분께 다음 행선지에 대해 물었다. 화천까지 가려고 한다 하니 대답이 쉽다. 40분 정도 가면 될 걸요, 했다. 차가 아니라 걸어서 가려고 한다 하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로드맵에는 댐 정상을 통해 대붕터널과 산과 산을 연결한 비수교, 재안터널을 통과하라고 적혀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문제가 있었다. 댐이 공사 중이서 .. 2017. 9. 14.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30) 인간의 어리석음을 하늘의 자비하심으로 이때껏 찾은 적 없었던 ‘평화의 댐’을 걷는 기도 중에, 걸어서 처음으로 찾게 될 줄이야. 방산을 떠나 화천으로 가던 중에 ‘평화의 댐’을 지나게 되었다. 17km의 거리를 오전 내내 부지런히 걸었더니 점심때쯤 ‘평화의 댐’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평화의 댐’은 이름과는 달리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로 남아 있다. 1986년 당시 건설부 장관은 모든 국민이 깜짝 놀랄 만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북한을 향하여 ‘금강산 댐’ 공사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문이었다. 평화의 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다.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와는 거리가 먼 일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북한이 휴전선 북방 10.. 2017. 9. 10.
산양의 웃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9) 산양의 웃음 양구를 떠나 화천까지 가는 날이다. 길을 걷기 시작한지 엿새째, 절반쯤을 지나고 있는 셈이었지만 아직은 긴장의 끈을 풀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에게 이른다.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는 곧바로 길을 나섰다. 로드맵에 ‘전 여정 중 가장 난코스’라 적혀 있는 날이었다. 38.3km, 걸어야 할 거리 또한 가장 긴 날이었다. 동네 앞을 흐르는 큰 개울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멋진 수묵화를 누군가가 맘껏 그리고 있었다. 저 한없이 부드럽고 막힘없는 붓질이라니! 문득 단강에서 물안개를 보며 썼던 ‘두 개의 강’이 생각났다. ‘좋은날 풍경’ 박보영 씨가 곡을 붙인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다까지 가는 먼 길 .. 2017. 9. 7.
인민군 발싸개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8) 인민군 발싸개 돌산령터널 안에서 만나 하루를 꼬박 동행했던 정 장로님 내외분과의 일정은 방산에 도착하면서 마쳤다. 폭염 속 땡볕 아래를 종일 같이 걸었던 시간과 나눴던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으리라. 방산에 도착을 했을 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독일을 처음 찾았을 때였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집회를 마치고 그곳 목사님의 안내로 독일 안에 있는 종교개혁과 관련된 곳을 돌아보던 중 벨기에를 찾았다. 독일 국경에서 가까운 곳에 유명한 성지가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 벨기에로 들어가는 길, 국경을 넘는 일이니 당연히 겹겹의 철조망과 총을 든 군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방금 국경을 지나왔어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지.. 2017. 9. 4.
팔랑리 풍미식당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7) 팔랑리 풍미식당 너덜너덜해질 만큼 로드맵을 손에 들고 다닌 것은 그것이 내가 지닌 유일한 나침반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열하루 동안 걸을 길을 지도도 없이, 다른 기기의 도움도 없이 단지 지명이 적혀 있는 인쇄물만을 들고 다니는 나를 걱정 반 딱함 반으로 바라보던 김정권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로드맵을 따라 양구 동면에 있는 팔랑리를 지나게 되었다. ‘팔랑리’라는 지명은 낯설다. 무슨 내력이 있을 것 같아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그만한 사연이 있는 동네 팔랑리에는 예로부터 전해져 오는 민요도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팔랑리는 곰취로 유명한 곳인데, 그래서 그럴까 나물 뜯는 노래인 이 .. 2017. 8. 30.
‘화’와 ‘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6) ‘화’와 ‘소’ 끝을 안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 얼마만큼을 견디면 주어진 시간이 끝날 지를 짐작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말로 힘든 것은 끝을 모르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보다는 때를 짐작할 수가 없다는 것, 우리를 지치게 하고 두렵게 하는 것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다. 2995m가 아무리 길어도 끝이 있는 거지, 돌산령터널 앞에서도 그렇게 생각을 했지만 터널은 만만치 않았다. 길어도 정말 길었다. 심호흡을 길게 한다 생각하면 빠져나가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가도 가도 제자리다 싶었다. 중간에 만들어놓은 차량 대피소를 몇 차례나 지나야 했다. 터널 끝 출구로 보이는 하얀 점은 커지지도 않았고 가까이 다가오지도 않아, 내가 걸어가는 만큼 뒤로 물러서는 것 아닌가 .. 2017.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