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갓 태어난 송아지 신기하게도 송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다닌다. 오늘 지 집사님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영양부족인지 일어나질 못했다. 모두 일터에 나간 한낮에 송아지를 낳은 모양이었다. 저녁 어둘 녘에야 일터에서 돌아와서 외양간 오물을 치우면서야 송아지를 발견한 것이다. 저녁예배를 마치고 우사에 가보니 어미 소가 열심히 핥아주고 있는데도 그때까지 송아지는 털이 마르지 않았다. 송아지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려다 맘 속으로 대신한다. 신앙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너무 꾸민 몸짓 같았다. 다음날 원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사에 다시 들리니 송아지가 일어섰다. 일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송아지를 돌본 집사님의 정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겨우 일어섰을 뿐 엄마 젖을 찾을 줄도 빨 줄도 몰라 우유를 타서 줘야 한다. 추.. 2021. 8. 11. 빼앗긴 들 김영옥 성도님네 잎담배 심는 곳에 다녀왔다.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 밭이었다. 요즘은 매일같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담배를 심고 있다. 그때마다 일터로 찾아가 인사를 한다. 그러나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일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건 수고한다는 빈말에 가까운 인사보다는 구체적으로 일을 돕는 일손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맡은 일의 차이를 인정하여 인사만이라도 거르지 말아야지 싶은 생각이다. 내가 할일을 사람들이 깨달으며 인정한 후엔 오히려 함께 일함이 쉬워지겠지. 밭에 가니 동네 거의 모든 분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담배는 참 손이 많이 가는 농사다. 한 분씩 만나 뵈며 수고하신다 인사를 하며 몇 마디씩 이야기를 나눈다. 그래도 반가이 맞아 주는 그분들이 고맙다.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는데 일하는 밭 바로 옆 강가.. 2021. 8. 10. 니코스카잔차키스를 읽으며 어제 오늘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오 아름다운 크레타의 영혼’을 읽는다. 그의 작품들에서 인상적인 말들을 뽑아 엮은 책이다. 낱권으로 읽을 때의 신선함이 되살아난다. 거침없는 사고와 행동, 그러면서도 더 없이 맑고 투명한 영혼.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가슴속에서 꾸밈없이 일궈내는 살아있는 언어들. 자유혼을 가져야만 얽매임 없이 내 사는 땅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그가 들려주는 여러 얘기들은 가르친다. 분명 그는 내게 커다란 산이다. 한 마디 말로는 규정할 수 없는, 우직하고 묵묵한 산. 니코스카잔차키스를 통해 확인한 건 초라하게 무뎌진 내 언어와 영혼이었다. 1987년 2021. 8. 9. 갈급한 마음 팀스피릿 훈련 중이던 군인 한 명이 예배에 참석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그는 훈련 중 이곳 섬뜰에서 1박을 하게 되자 혹 오늘 예배가 없느냐 물었다는 것이다. 마침 그날은 지난번 부임 심방 때 빠진 최일용 성도님 가정을 심방하기로 한 날이어서 예배에 참석할 수가 있었다. 말씀이 그리웠다고 한다. 문득 군에 입대하여 첫 예배를 드리며 눈을 꽤나 흘렸던 옛 군생활이 생각났다. ‘강하고 담대하라’는 여호수아 1장 말씀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시종 무릎을 꿇고 예배를 드리던 카투사 이인철 병장, 그는 말씀을 듣고만 간 것이 아니라 귀한 것을 남기고 갔다. 말씀을 갈급해 하는 마음을 남겼다. 넌 언제 어디서 그걸 잃어버렸느냐고, 그가 묻지도 않은 물음이 안경을 쓴 그의 얼굴과 함께 그가 돌아간 뒤에도 내내 .. 2021. 8. 8. 작두질과 도끼질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 누워 계셨고, 머리맡에 할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두 분은 마을에서 뚝 떨어진 외진 산중에서 산을 지키며 외롭게 살고 있었다. 촛농이 쌓이고, 시커멓게 그을린 등잔불, 전기도 안 들어오는 그곳에서 두 분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이란 지금처럼 어둑하고 침침한 것이리라. 날짜와 요일을 몰라 예배드리러 내려오지 못했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들을 땐, 부끄러움과 안쓰러움에 눈시울이 뜨거웠다. 깊숙한 주름마다에 패인 두 분 삶의 고독이란 얼마만한 것일지 모르겠다. 마당에 나와 소죽거리 만드는 작두질을 도와 드렸다. ‘써걱, 써걱’ 할아버지가 들이미는 짚단이 내리 밟는 작두에 잘려 나간다. 문득 스치는 생각들이 있다. 한 독립군이 일본군에 의해 작두에 목이 잘려 죽던 얼마 전 신문의 사진이 떠올랐다... 2021. 8. 7. 소에게 말을 걸다 오후에 작실에 올라갔다. 설정순 성도님네가 잎담배를 심는 날이었다. 해질녘 돌아오는 길에 일을 마친 이속장님네 소를 데리고 왔다. 낯선 이가 줄을 잡았는데도 터벅터벅 소는 여전히 제 걸음이다. 종일 된 일을 했음에도 싫은 표정이 없다. 그렇게 한 평생 일을 하고서도 죽은 다음 몸뚱이마저 고기로 남기는 착한 동물. ‘살아생전 머리에 달린 뿔은 언제, 어디에 쓰는 걸까?’ 커다란 소의 눈이 유난히 착하고 맑게 보인다. 알아들을 리 없지만 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소에게 말을 건넨다. ‘소야, 난 네가 좋단다.’ 소는 여전히 눈을 껌벅거릴 뿐이었지만. 1987년 2021. 8. 6. 어떻게, 어떻게든 된담 “나무하러 가는 사람 왜 불러요?” 저만치 산으로 나무하러 오르다 잰 걸음으로 뛰다시피 내려오신 신집사님, 말은 그렇게 하지만 환한 얼굴, 마음이 그런 게 아니다. 체구에 맞게 만든 작은 지게를 마당에 세워 놓고 방으로 들어간다. 2월이 다가오자 집사님은 고민이 된다. 2월 1일부터는 용암 쪽으로 일을 나가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를 망설이는 것이다. 비닐하우스 재배하는 곳에 ‘취직’을 한 것이다. 한 달에 세 번 쉬고 점심은 각자 지참. 그리고 월급은 18만원이다. 오가는 차비 빼고 나면 뭐 그리 크게 남는 게 없지만 그래도 고정된 수입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그것만 생각하면 취직을 하는 게 집에서 품 파는 것보다야 열 번 편한데, 문제는 땔감이다. 연탄도 기름보일러도 없기 때문에 천생 나무를 해서 때야 .. 2021. 8. 5. 창립예배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 우리가 모인 이 자리를 두고 분명 거룩한 땅이라 이름 부를 것입니다.’ 끝내 목이 멨다. 창립예배를 드리며 인사말을 하는데 가슴이 떨렸고 빈말은 삼가고 싶었다. 먼 길을 달려와 마당 한가운데 둘러선 사람들. 무엇보다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한쪽 눈을 실명한 창식이 와준 게 고마웠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그려오던 목회의 첫발. 오늘은 1987년 3월25일 수요일, 눈바람 불고 무지 추움. 이정송 감리사님과 유상국 목사님의 뒤를 이어 ‘기독교대한감리회단강교회’라 쓰인 현판을 작은 사랑방 모퉁이에 힘차게 못질을 한다. ‘이제 시작이다.’ 안쓰러운 표정을 남기고 모두들 돌아갔지만 외롭진 않았다. 삶의 터전은 다르지만 우린 모두 하나님 품속에서 사는 거니까. 난 또 이곳에서 새로운 이.. 2021. 8. 4. 첫 목양지로 가는 길 3月25日 이른 아침, 원주로 향하는 영동 고속도로엔 춘삼월에 어울리잖게 세찬 눈발이 휘날렸다. 이따금씩 비취는 햇살에 현란함을 더한 춘설은 창가보다는 창가에 기댄 가슴으로 부딪쳐 왔다. 첫 목양지로 향하는 빈 가슴이 오히려 든든했다. 내 떠남을 춘설로 기억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이 고마웠다. 그 길밖엔 없었다. 강원도행이 좌절됐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친구와 몇몇 선배의 얼굴이었다. 지금 그들의 심정은 어떨까. 하여 나는 무조건 떠나야 했다. 나를 위해 다시 한 번 마련된 그 자리로 떠나는데 자존심 같은 건 생각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한 공동체가 잃어서는 안 되는, 내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였다. 황동규의 시구 하나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살고 싶다, 누이여, 하나의 피해자로라도.. 2021. 8. 3.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