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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봄(23) 에구구 시방 사월 허구두 중순인디 이게 웬 뜬금읍는 추위라냐 꽃들이 춥겁다 여벌 옷두 읍구만 - (1996년) 2021. 4. 14.
눈물의 기도 수요저녁예배. 기도 순서를 맡은 집사님이 기도를 하다 말고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에 막혀 기도가 자꾸 끊겼다. “농사는 시작됐는데.... 일꾼은 읍구..., 갈지두 못하고 있는 논밭을 보면 속이 터지구...,자식들은 모두 나가..., 곁에 읍구..., 세대를 잘못 만나...,” 뚝뚝 끊기는, 듣는 이 숨마저 따라 끊기는, 눈물의 기도. - (1992년) 2021. 4. 13.
형제를 눈동자 같이 목요성서모임에서 사도행전을 인도하던 김 목사가 몇 주 미국을 다녀오게 되어 비게 된 시간을 손곡교회 한석진 목사님께 부탁을 드렸다. 동양사상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형이라 신선한 시간이 되겠다 싶었다. 석진 형은 '도마복음'을 택했고, 우리는 석주 동안 도마복음을 읽고 얘길 나눴다. 1945년에 우연히 Nag-hamadi 박물관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로 발견된 도마복음은 인도로 전도를 간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그곳에서 쓴 복음서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 '예수가 말했다 -'로 시작되는 도마복음은 모두 114개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는데 일종의 선문답 같은, 불교 문화권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해석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요한복음이 헬라문화권 안에서의 복음에 대한 재해석이었다면 도마복음은.. 2021. 4. 12.
막연한 소원 어둠이 한참 내린 저녁, 아내가 부른다. 나가보니 작실에서 광철 씨가 내려왔다. “청국장 하구요, 고구마 좀 가지고 왔어요. 반찬 할 때 해 드시라고요.” 그러고 보니 광철 씨 옆에 비닐봉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그 중 하나엔 허옇게 덩이진 청국장이 서너 개 담겨 있었다. “청국장을 누가 했어요?” 아버지와 광철 씨 뿐 청국장을 띄울만한 사람이 없다. “제가 했어요. 그냥 했는데 한번 먹어보니 맛이 괜찮던데요.” 사실 난 청국장을 잘 안 먹는다. 아직 그 냄새에 익숙하질 못하다. 그러나 광철 씨가 띄운 것, 비록 광철 씨 까만 손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정을 생각해서라고 맛있게 먹으리라 생각을 하며 받았다.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광철 씨와 편하게 얘기 나눈 지도 오래 되었다. 중학.. 2021. 4. 9.
봄(22) 꽃으로 피었으니 꽃으로 져야지 요란할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걸음걸음들 다시 한 번 눈부시다 - (1996년) 2021. 4. 8.
봄(21) 너무 쉽게 진다고 너무 쉽게 밟진 마세요 언제 한 번 맘껏 웃은 적 있는지 애써 묻지 않잖아요 - (1996년) 2021. 4. 7.
봄(20) 감탄할 새도 없이 목련이 터지고 안쓰러울 틈도 없이 목련이 지고 우리 생 무엇 다를까 괜스레 꽃잎 밟는 발끝 아리고 - (1996년) 2021. 4. 6.
봄(19) 모두가 본 것을 보았다면 모두가 들은 것을 들었다면 덩달아 말했겠지요 두 팔 벌려 그냥 웃는 이유를 당신이야 아시겠지요 - (1996년) 2021. 4. 5.
봄(18) 겨우내 집안에 있던 화분들을 어느 날 아내는 밖으로 낸다. 일광욕 시키듯 나란히 내 놓았다. 고만고만한 화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모처럼 볕을 쬔다. 일찍 핀 몇몇 꽃들이 해맑게 웃고 눈이 부신 듯 이파리들은 환한 윤기로 반짝인다. 더욱 곱고 따뜻하게 내리는 별 조심스레 볕이 문을 두드린다. 봄이다. - (1996년) 2021.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