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단강초등학교 졸업식 반짝이는 보석상자, 영롱한 추억의 보고(寶庫), 끊임없이 되살아와서 따뜻하게 생(生)을 감싸는 손길, 편안한 귀향(歸鄕), 마르지 않는 웃음들, 싫증나지 않는 장난감이 가득한 방, 끈끈한 생명력이 살아 숨 쉬는 곳, 그게 어린 시절이지 싶다. 지난 2월 19일 단강초등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작은 교실 한 칸에 졸업생과 재학생, 그리고 학부모들과 내빈들이 둘러앉았다. 뒤편으론 몇 사람이 서기도 했다. 사무실용 의자를 옆의 사람에게 양보를 하고 난 정말 오랜만에 작은 초등학교 때 앉아 공부하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연필로 혹은 칼로 금을 그어 짝과 경계를 정하고 나란히 앉아 공부했던 그 어린 시절. 내 자릴 넘었다고 때론 짝꿍과 다투기도 했지만 실은 모든 것이 넉넉했었지. 우리들 이름이 적히기도 했던 칠판도.. 2021. 5. 18. ‘하나님은 농부시라’ 작은 체구. 그러나 그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았다. 투박한 그의 말이 오히려 설득력을 가지고 들려 왔다. 그런 설득력의 근거는 그의 말이 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 있었다. 분명 그의 말속에는 땀내와 흙내가 섞여 있었다. 농민 선교 대회, 오전 강사로 나온 를 쓴 윤기현 선생은 자신이 자라온 지난날들 속 겪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전라도 그 특유의 사투리를 섞어가며 과장 없이 이야기 해 나갔다. 이야기를 들으려 참석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농한기를 맞은 농촌교회 교인들이었고 살아가며 직접 겪고 느꼈던 여러 가지 지적들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착하고 열심히 살면 부자 된다는, 어린 시절 그의 성실함을 지켜주었던 그 그럴듯한 교훈이 한갓 공허한 교훈일 뿐이었음을 깨.. 2021. 5. 17. 세월의 강 겨울비 내리는 강가는 유난히 추웠다. 그만큼의 추위라면 눈이 맞았을 텐데도 내리는 건 비였다. 내리는 찬비야 우산으로 가렸지만 강물 거슬러 불어대는 칼날 바람은 쉽게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장자리 얼어가는 강물이 잡다한 물결을 일으키며 거꾸로 밀리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한참을 떨며 강 건너 묶여있는 배를 기다렸지만 뱃사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 하나 두고 떠난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해 가을 10여년 만에 고향을 찾은 유치화 청년의 지난 내력을 알기 위해 교회 젊은 집사님과 마을 청년과 치화 씨와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이쪽 부론은 강원도, 짧은 폭 강 하날 두고 겨울비 속 풍경화처럼 자리 잡은 저편은 충청북도. 유치화 청년의 먼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이다. 기구한 사연 속, 열세 .. 2021. 5. 15. 兄에게 그날 우린 한 밤을 꼬박 새워 많은 얘길 했죠. 교회 얘기도 했고 목사 얘기도 했습니다. 너무 물욕적(物慾的)이라고요. 너무 굳었다고요. 시골로 목회 떠나온 지 1년 돼 갑니다. 불편함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지금 제가 사는 집은 마을에서 가장 그럴듯한 집 중 하나입니다. 제가 받는 돈은 우리 교우 중 그래도 가장 많을 겁니다. 땀은 가장 적게 흘립니다. 예배시간엔 제단에 서서, 마루에 앉은 교우 앞에 양복 입고 서서 사랑을 말하고 은총을 말하고 나눔과 죄를 말합니다. 그리고도 괴로움을 모릅니다. 그렇게 굳어 갑니다. 그게 괴롭습니다. 1988년 2021. 5. 14. 어느 날의 기도 아니라 하십시오. 동정이나 연인으로, 안쓰러움으로 내 손을 잡질랑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딛고 일어나겠습니다. 견디다 견디다 힘 부치면 쓰러지고 말겠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원망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저 저만치서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너무 쉽게 손을 주진 마십시오. 주님. 1988년 2021. 5. 13. 사람 그리워 52쪽, 어느 날 찾아 든 는 52쪽 분량이었고 내용도 쪽수만큼이나 무겁고 신선했다. 박성용, 그는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3권과 86년 소년중앙 문학상 동화부문 자신의 당선작인 ‘하늘빛 꿈’을 복사해서 보내준 손진동님. ‘그리고 고맙습니다. 정말입니다’로 끝났던, 동화보다도 먼저 읽은 그의 당선 소감. 2월호에 실린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의 동화. 고집스레 우직한 걸음 고집하는 가끔씩 친구가 쓰는 ‘사람들 얘기‘ 모두들 어딘가를 바라보며 산다. 살아있는 한 흐름이고 싶다. 한 흐름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건, 그 흐름 아닌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난 지금 잡다한 많은 것에 눈을 주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의 굳어진 굴레를 벗어야 한다. 코미디 대사를 되뇌며 그 웃음을 따라.. 2021. 5. 12. 마음의 객토작업 늘 그랬지만 설교 준비하기가 요즘은 더욱 어렵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가 많다. 한 주일을 보내며 늘 설교 생각이 머리에 남아 있으면서도 주보를 다 만들 때까지 본문과 제목을 정하지 못해 애태울 때가 있다. 삶과 유리된, 생활과 거리가 있는 그럴듯한 말을 찾자면 야 그런대로 쉬울 것도 같은데, 현실을 이해하고 그 현실에 필요한 말씀을 찾으려니 쉽지 않을 수밖에. 지금의 난 성경도 제대로 모르고 농촌의 현실 또한 모르고 있다. 교인들의 표정 뒤에 있는 속마음의 형편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빈 말은 삼가고 싶은데 떠오르는 말이 없는 것이다. 지난 주일 저녁 설교 제목은 ‘마음의 객토작업’이었다. 이번 겨울을 보내며 동네에선 대부분 객토작업을 했다. 탱크처럼 생긴 15t .. 2021. 5. 11. 아버지 집 충주인가 청주인가, 결혼 잔치에 참석하고 오던 백수가 오던 길로 교회에 들러 학생부 토요 예배를 드리고서 집으로 갔다. 집부터 안 들렸다고 집에서 야단을 맞았다 한다. 저물녘까지 안 들어와 집에서는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 때 백수는 웃으며 말했단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몰랐습니까?” - 1998년 2021. 5. 10. 목발 양쪽에 목발을 집고서 안한수 씨가 교회에 나왔다. 기브스 한 다리를 불편하게 뻗은 채 함께 예배를 드렸다. 뜻하지 않은 경운기 사고로 다리뼈가 부러지는 큰 아픔과 쓰라림을 겪었지만 대신 주님을 찾게 된 것이다. 건강할 때 외면했던 주님을 부편한 몸으로 찾은 것이다. 돼지우리, 집 떠난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걸 생각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지. 비참함, 때론 가장 분명한 삶의 전기. 목발을 지탱 하시며 한 아들의 영혼을 당신께로 이끄시는 님의 모습을 본다. 이젠 주님 안에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리라. 마음의 목발까지 내버리고서. - 1998년 2021. 5. 9.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