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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세월의 강 겨울비 내리는 강가는 유난히 추웠다. 그만큼의 추위라면 눈이 맞았을 텐데도 내리는 건 비였다. 내리는 찬비야 우산으로 가렸지만 강물 거슬러 불어대는 칼날 바람은 쉽게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가장자리 얼어가는 강물이 잡다한 물결을 일으키며 거꾸로 밀리고 있었다. 하늘은 잿빛으로 낮게 내려앉았다. 한참을 떨며 강 건너 묶여있는 배를 기다렸지만 뱃사공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 하나 두고 떠난 사연은 무엇일까. 지난해 가을 10여년 만에 고향을 찾은 유치화 청년의 지난 내력을 알기 위해 교회 젊은 집사님과 마을 청년과 치화 씨와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이쪽 부론은 강원도, 짧은 폭 강 하날 두고 겨울비 속 풍경화처럼 자리 잡은 저편은 충청북도. 유치화 청년의 먼 친척이 살고 있는 곳이다. 기구한 사연 속, 열세 .. 2021. 5. 15.
兄에게 그날 우린 한 밤을 꼬박 새워 많은 얘길 했죠. 교회 얘기도 했고 목사 얘기도 했습니다. 너무 물욕적(物慾的)이라고요. 너무 굳었다고요. 시골로 목회 떠나온 지 1년 돼 갑니다. 불편함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지금 제가 사는 집은 마을에서 가장 그럴듯한 집 중 하나입니다. 제가 받는 돈은 우리 교우 중 그래도 가장 많을 겁니다. 땀은 가장 적게 흘립니다. 예배시간엔 제단에 서서, 마루에 앉은 교우 앞에 양복 입고 서서 사랑을 말하고 은총을 말하고 나눔과 죄를 말합니다. 그리고도 괴로움을 모릅니다. 그렇게 굳어 갑니다. 그게 괴롭습니다. 1988년 2021. 5. 14.
어느 날의 기도 아니라 하십시오. 동정이나 연인으로, 안쓰러움으로 내 손을 잡질랑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딛고 일어나겠습니다. 견디다 견디다 힘 부치면 쓰러지고 말겠지만 그렇다고 당신을 원망하진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저 저만치서 지켜봐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너무 쉽게 손을 주진 마십시오. 주님. 1988년 2021. 5. 13.
사람 그리워 52쪽, 어느 날 찾아 든 는 52쪽 분량이었고 내용도 쪽수만큼이나 무겁고 신선했다. 박성용, 그는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3권과 86년 소년중앙 문학상 동화부문 자신의 당선작인 ‘하늘빛 꿈’을 복사해서 보내준 손진동님. ‘그리고 고맙습니다. 정말입니다’로 끝났던, 동화보다도 먼저 읽은 그의 당선 소감. 2월호에 실린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의 동화. 고집스레 우직한 걸음 고집하는 가끔씩 친구가 쓰는 ‘사람들 얘기‘ 모두들 어딘가를 바라보며 산다. 살아있는 한 흐름이고 싶다. 한 흐름으로 방향을 잡는다는 건, 그 흐름 아닌 모든 것을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난 지금 잡다한 많은 것에 눈을 주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의 굳어진 굴레를 벗어야 한다. 코미디 대사를 되뇌며 그 웃음을 따라.. 2021. 5. 12.
마음의 객토작업 늘 그랬지만 설교 준비하기가 요즘은 더욱 어렵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가 많다. 한 주일을 보내며 늘 설교 생각이 머리에 남아 있으면서도 주보를 다 만들 때까지 본문과 제목을 정하지 못해 애태울 때가 있다. 삶과 유리된, 생활과 거리가 있는 그럴듯한 말을 찾자면 야 그런대로 쉬울 것도 같은데, 현실을 이해하고 그 현실에 필요한 말씀을 찾으려니 쉽지 않을 수밖에. 지금의 난 성경도 제대로 모르고 농촌의 현실 또한 모르고 있다. 교인들의 표정 뒤에 있는 속마음의 형편이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할 수만 있다면 빈 말은 삼가고 싶은데 떠오르는 말이 없는 것이다. 지난 주일 저녁 설교 제목은 ‘마음의 객토작업’이었다. 이번 겨울을 보내며 동네에선 대부분 객토작업을 했다. 탱크처럼 생긴 15t .. 2021. 5. 11.
아버지 집 충주인가 청주인가, 결혼 잔치에 참석하고 오던 백수가 오던 길로 교회에 들러 학생부 토요 예배를 드리고서 집으로 갔다. 집부터 안 들렸다고 집에서 야단을 맞았다 한다. 저물녘까지 안 들어와 집에서는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 때 백수는 웃으며 말했단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몰랐습니까?” - 1998년 2021. 5. 10.
목발 양쪽에 목발을 집고서 안한수 씨가 교회에 나왔다. 기브스 한 다리를 불편하게 뻗은 채 함께 예배를 드렸다. 뜻하지 않은 경운기 사고로 다리뼈가 부러지는 큰 아픔과 쓰라림을 겪었지만 대신 주님을 찾게 된 것이다. 건강할 때 외면했던 주님을 부편한 몸으로 찾은 것이다. 돼지우리, 집 떠난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걸 생각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지. 비참함, 때론 가장 분명한 삶의 전기. 목발을 지탱 하시며 한 아들의 영혼을 당신께로 이끄시는 님의 모습을 본다. 이젠 주님 안에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리라. 마음의 목발까지 내버리고서. - 1998년 2021. 5. 9.
물기 스미듯 뒷문이 열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문소리에 뒤로 눈을 준 교우들이 벌떡 일어나 뒤로 간다.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눈다. 자연히 설교는 중단되고 말았다. 과수원을 하는 서울집 아주머니와 친척 되시는 분들이 설교가 끝나갈 즈음 들어온 것이다. 아무도 그 분이 교회에 나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오래전 일로 교회완 거리를 두고 다른 종교에 몸담고 있던 그 분, 설교시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반가움에 달려가 손을 잡고 인사 나눈 성도들, 비록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좋았다. 예배 후 사택에 모여 얘기 나눌 때 차 한 잔을 놓고 시누이라는 분이 기도하게 됐는데, 울먹여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 교회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한지 꼭 한 달 만에 이곳 단강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길 듣.. 2021. 5. 8.
보고 싶다 광철 씨가 있다. 우리교인이다. 더없이 순하고 착하다. 그 마음을 말이 못 따를 뿐이다.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장가 못 갔다. 못 갈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봄, 가을 짐을 져 나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그럴 때 그를 필요로 한다. 봄에는 거름을, 가을에는 볏가마니를, 야윈 몸에 무거운 짐 지고 새벽부터 어둠까지 품을 팔지만 안으로 자라는 약함의 뿌리는 보이질 않고, 염두에 둘 여유도 없다.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봉헌 예배 땐 땔감 하라고 나무 한 짐 지게에 져 내려온 광철 씨. 이번에 되게 앓았다. 단순한 몸살일지. 거의 빠짐없이 저녁예배에 나와 예배드리고 꺼칠한 손을 마주잡아 인사를 한다. 안쓰럽게 마주함이 결국 모든 것일까. 으스러져라 눈물로 안아야 할 .. 2021. 5.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