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물기 스미듯 뒷문이 열리고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을 때 문소리에 뒤로 눈을 준 교우들이 벌떡 일어나 뒤로 간다.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눈다. 자연히 설교는 중단되고 말았다. 과수원을 하는 서울집 아주머니와 친척 되시는 분들이 설교가 끝나갈 즈음 들어온 것이다. 아무도 그 분이 교회에 나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오래전 일로 교회완 거리를 두고 다른 종교에 몸담고 있던 그 분, 설교시간을 의식하지 못하고 반가움에 달려가 손을 잡고 인사 나눈 성도들, 비록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좋았다. 예배 후 사택에 모여 얘기 나눌 때 차 한 잔을 놓고 시누이라는 분이 기도하게 됐는데, 울먹여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오빠 교회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한지 꼭 한 달 만에 이곳 단강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길 듣.. 2021. 5. 8. 보고 싶다 광철 씨가 있다. 우리교인이다. 더없이 순하고 착하다. 그 마음을 말이 못 따를 뿐이다.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장가 못 갔다. 못 갈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봄, 가을 짐을 져 나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그럴 때 그를 필요로 한다. 봄에는 거름을, 가을에는 볏가마니를, 야윈 몸에 무거운 짐 지고 새벽부터 어둠까지 품을 팔지만 안으로 자라는 약함의 뿌리는 보이질 않고, 염두에 둘 여유도 없다.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봉헌 예배 땐 땔감 하라고 나무 한 짐 지게에 져 내려온 광철 씨. 이번에 되게 앓았다. 단순한 몸살일지. 거의 빠짐없이 저녁예배에 나와 예배드리고 꺼칠한 손을 마주잡아 인사를 한다. 안쓰럽게 마주함이 결국 모든 것일까. 으스러져라 눈물로 안아야 할 .. 2021. 5. 7. 더 어려운 일 무관심 하지 말 것. 형식적으로 의무감으로 관심 갖지 말 것. 무책임하게 다른 이의 가슴 깊이 들어가지 말 것. 목회를 하며 얻게 된 작은 깨달음. 무책임하게 뛰어듦보단 책임 있게 바라보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 - 1998년 2021. 5. 6. 넉넉한 은혜 절기예배 중 그중 어려운 게 감사절입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할 감사절을 두고 웬 우중충한 얘기냐 할진 몰라도, 아무래도 감사절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맥추감사주일이건 추수감사주일이건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첫 곡식을 거두며, 혹은 온갖 곡식을 거두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예배에 왜 감사와 기쁜 마음 없겠는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괴롭고 안타까운 일들을 주변에 두고 때 되어 감사절을 맞아야 할 때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 감사의 조건과 감사의 이유를 찾아보지만, 그런 마음을 가로막고 나서는 안타까움이 바로 곁에 있습니다. 지난번 맥추감사주일 예배를 드릴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일이 감사절, 어떻게 감사 예배를 드리나, 바쁜 일철에 몇 명이나 모여 어떤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을까.. 2021. 5. 3. 이사 새로 지은 사택으로 이사를 했다. 미비한 점도 있었고, 아직 채 벽도 마르지 않았지만 곧 다가올 봉헌예배 행사를 위해 시간을 앞당겼다. 이번에도 동네 모든 분들이 수고를 하였다. 17평, 내 의견이 반영된 집이라 그런지 참 편안하다. 흩어져 있던 살림살이가 이제야 한군데로 모였다. 두 달여 허름한 담배건조실, 조그마한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형편없이 뒹굴며 주인의 무관심을 원망했을 몇 가지 짐들이 한군데로 모인 것이다. 그간 서너 번의 이사로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곳이 많았지만 그래도 책을 쥐가 쏠지 않은 것이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수도를 틀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단칸방, 조그마한 마루에 부엌살림을 늘어놓고 찬바람 그대로 맞으며 식사를 마련했던 아내 보기가 영 미안했는데, 이제 .. 2021. 5. 2. 삶의 구조 사흘간 열린 지방등급사경회에 단강에선 광철 씨 혼자 참석을 했다. 많이는 아니더라도 해마다 서너 명씩은 참석을 했는데 올핸 광철 씨 뿐이었다. 이번에 4학년에 올라가는 김천복 할머니와 3학년이 되는 김영옥 속장님이 설을 쇠러 자식네 다니러 가서 내려오지 않았고. 지금순 집사님은 설을 쇠러온 아들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광고를 잘 들어두었던 광철 씨가 아침 일찍 교회로 내려왔다. 늘 그런 셈이지만 광철 씨의 차림새가 남루했다. 날이 찬데도 입은 옷이 허술했고 그나마 때가 잔뜩 오른 옷이었다. 지난번 서울에서 고마운 손길을 통해서 보내온 옷을 이런 날 입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어디 갈 때 입는다며 아껴둔 옷을 이번에도 입지를 않았다. 광철 씨는 사흘 동안의 사경회를 빠지지 않고 참석을 했다. 고마운 일이.. 2021. 5. 1.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애광원을 다녀오며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어요. 돌아설 수도 비켜갈 수도 없는 길이었어요. 내가 잡은 것 무엇인 줄 모르고 나를 잡은 것 무엇인 줄 모르는 길이었어요. 웃음이 무엇으로 소중한지 몰랐어요. 무엇으로 웃음이 터지는지도 몰랐고요. 버릴 수 없는 표정들을 버리지 않았을 뿐, 더는 몰랐어요. 이처럼 예쁠 수가 있을까요? 이처럼 고울 수가 있을까요? 아무 것도 없이 기막히게 없이 줄기도 가지도 없이 문득 문득 하늘로 피어나는 천상의 꽃.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작은 웃음 하나 만나기 위해 하루처럼 걸어온 먼 길. - (1992년) 2021. 4. 30. 애광원 이번 여름을 보내면서 가장 인상적인 일은 애광원을 방문한 일이었다. 거제도, 한 정치가의 고향으로만 알고 있었던 그곳은 차로 열 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 지도를 펴 놓고 확인해보니 남쪽의 맨 끄트머리 한쪽 구석이었다. 춘천의 권오서 목사님과 사모님, 서울의 유경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나 다섯 명이 동행하게 되었다. 애광원은 산과 바다 그리고 하늘이 아름답게 어울린 장승포의 한 언덕배기에 있었다. 건물자체가 애광원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애광원은 정신지체아들을 돌보는 특수기관이었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 의료재활 활동과 직조·봉제·도예·조화·축산.칠보·염색·원예 등 작업재활 활동, 화훼·버섯재배·무공해 채소재배 등 자립작업장이 운영되는 애광원과, 중증 장애자를 수용하고 있는.. 2021. 4. 29. 생일 축하 엽서 "아빠, 할머니 생일은 생신이라고 하는 거야?" 어디서 들었는지 소리가 엽서 하나를 챙겨들고 와선 '생신'에 관해 묻습니다. 내일 모레가 할머니 생신, 소리는 엉덩이를 하늘로 빼고 앉아 뭐라 열심히 썼습니다. 썼다간 지우고 또 쓰고 그러다간 또 지우고, "뭐라 쓰니?" 물어보면 획 돌아서선 안 보여주고. 며칠 뒤 굴러다니는 봉투가 있어 보니 소리가 썼던 할머니 생일 축하 엽서였습니다. 할머니가 분명 고맙다 하며 엽서를 받았는데 웬일인가 알아보니, 그날 엽서를 쓰다 잘못 써서 다시 한 장을 더 썼던 것이었습니다. 엽서에는 연필로 쓴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 '할머니 생신을 축하합니다'라고 쓴 엽서는 엉뚱하게도 다음과 같이 끝나고 있었습니다. '소리, 규민 섰다' 기껏.. 2021. 4. 28.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