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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신동숙의 글밭(25)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예쁜 찻잔을 보면, 순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먼저 마음으로 가만히 비추어 봅니다. 찻잔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사색의 원을 천천히 그려보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가짐으로 인해 지구 한 켠 누구 하나는 못 가질세라. 희귀하거나 특별한 재료보다는 주위에 흔한 흙이나 나무 등 자연물로 만든 찻잔인가. 나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 오는 손님이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내놓을 수 있는 평등한 찻잔인가. 간혹 놀러온 어린 아이에게도 건넬 수 있는, 설령 깨어진대도 아까워하거나 괘념치 않을 마음을 낼 수 있는가. 만약에 깨어진대도,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 후손에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을 자연물의 찻잔인.. 2019. 12. 7.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4)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 아침 기도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희끗희끗 뭔가 허공에 날리는 것이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눈이었다. 작은 눈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눈이 오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보는 눈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는데 생각하니 마침 절기로 ‘대설’, 자연의 어김없는 걸음이 감탄스러웠다. 잠시 서서 눈을 감상하고 있을 때 담장 저쪽 끝에서 참새 몇 마리가 날아오른다. 언제라도 참새들의 날갯짓과 재잘거림은 경쾌하다. 참새들의 날갯짓과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하는 눈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맞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이처럼 가벼운 것들이다. 대설과 눈, 눈가루와 참새,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서로 어울려 세상은 넉넉히 아름답다. 2019. 12. 7.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신동숙의 글밭(24)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식구들이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우자고 했을 때 결사 반대를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에게 강아지는 오롯이 꼼짝 못하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날 집에 오니 아들이 드디어 자기한테도 동생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눈까지 반짝인다. 성은 김 씨고 이름도 지었단다. 김복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 품 안에 쏙 안기는 강아지를 아들과 딸은 틈나는 대로 안아 주고, 밥도 챙기고, 똥도 치우고, 주말이면 강변길로 오솔길로 떠나는 산책이 즐거운 가족 소풍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서너 달이 못갔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지는 복순이. 일년이 채 안되어 복순이의 덩치는 아들만큼 커진 것이다. 똥도 엄청나다. 한 학년씩 .. 2019. 12. 6.
저는 아니겠지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3) 저는 아니겠지요? 녹은 쇠에서 나와 쇠를 삼킨다. 눈물겨운 사랑도 눈물겨운 배신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어느 것보다도 고맙고 아프다. 십자가를 앞둔 최후의 만찬자리, 음식을 먹던 중에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주님이 말씀하시던 중 ‘진실로’라 하면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진실로’를 다른 성경은 ‘진정으로’(새번역), ‘분명히’(공동번역)로 옮겼다. 나를 파는 자가 너희 중의 하나라는 말을 듣는 제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나는 아닙니다.” 하지 못하고, “저는 아니겠지요?” 했던.. 2019. 12. 6.
풀씨 한 알 신동숙의 글밭(23)/시밥 한 그릇 풀씨 한 알 발길에 폴폴 날리우는 작고 여린 풀씨 한 알 풀섶에 이는 잔바람에도 홀로 좋아서 춤을 추는 하늘 더불어 춤을 추는 작고 여린 풀씨 한 알 낮고 낮은 곳으로 내려갈 줄만 알아 그 어디든 발길 닿는 곳 제 살아갈 한 평생 집인 줄을 알아 작고 둥근 머리를 누이며 평온히 눈을 감는다 땅 속으로 사색의 뿌리를 내리며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작은 생명들의 소리 들으려 가만히 귀를 대고 가난한 마음이 더듬으며 사람들 무심히 오가는 발길 아래로 고요히 기도의 뿌리를 내린다 발아래 피어날 푸르른 풀잎 그 맑고 푸르른 노랫 소리 들으려 겨울밤 홀로 깊어지는 풀씨 한 알 (2019.1.9. 詩作) 2019. 12. 5.
신 벗어들고 새 날 듯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2) 신 벗어들고 새 날 듯이 대림절을 시작하는 주일, 우리 속담 하나를 소개했다. ‘친정 길은 참대 갈대 엇벤 길도 신 벗어들고 새 날 듯이 간다’는 속담이었다. 참대와 갈대가 있는 곳을 지나면 신을 제대로 신어도 발이 베이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친정을 찾아갈 때는 발이야 베든 말든 신을 벗어들고 새가 날아가는 것처럼 간다는 것이다. 친정을 찾아가는 집난이(시집간 딸)의 기쁨이 마치 숨결까지 묻어나는 듯 고스란히 전해진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왜 신을 벗어들고 갈까? 길이 멀 터이니 당연히 신을 신고 가야 하고, 참대 갈대가 있는 길이라면 더욱 더 신을 단단히 신어야 하는 법, 그런데도 왜 신을 벗고 간다고 했을까? 우선 드는 생각은 맨발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걸음 아.. 2019. 12. 5.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신동숙의 글밭(22)/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하루를 보낸 후 내 방으로 들어옵니다. 가만히 돌아보고 둘러보는 시간. 정리되지 않은 일들, 사람과의 관계들이 때론 무심한 들풀처럼 그려집니다. 참지 못한 순간, 넉넉치 못한 마음, 후회스러운 마음은 하루의 그림자입니다. 무심한 들풀 사이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들꽃처럼 환하게 미소를 띄기도 하고요. 이런 저런 순간들이 모여 색색깔 조각보의 모자이크처럼 하루를 채우고 있답니다. 낮 동안에도 잠시 잠깐 틈나는 대로 차 안이나 어디서든 홀로 적적한 시간을 갖지만, 밤이 드리우는 고요함에 비할 수는 없답니다. 우선 천장의 조명을 끕니다. 그래도 간간히 책을 읽고, 글도 쓰려면 책상 위 작은 스텐드 조명은 켜둡니다. 종지만한 유리 찻잔 안.. 2019. 12. 4.
어리석은 생각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1) 어리석은 생각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일을 두고 예수님은 ‘좋은 일’이라고 한다. 노동자 1년 치 품삯에 해당할 만큼 값비싼 향유, 제자들의 불만처럼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가난한 자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품었던 예수님의 삶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여인을 책망하는 제자들의 입장에 동조를 하실 것 같은데, 그 일을 ‘좋은 일’이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뜻밖이다. 주님의 말씀은 이어진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주님은 언제라도 할 수 있.. 2019. 12. 4.
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신동숙의 글밭(21)/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자연 곳곳에서 보이는 모든 움직임은 순환하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펄럭이는 돛, 흐르는 시내, 흔들리는 나무, 표류하는 바람,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건강과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나무 그늘에서 건강하게 뛰놀고 장난치는 것만큼 더 품위 있고 신성한 건강과 자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죄에 대한 의심 따위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이를 알고 있었더라면 대리석이나 다이아몬드로 성전 따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고, 성전 건축은 신성 모독 중의 신성 모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낙원을 영원히 잃지 않았을 것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 2019. 1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