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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3) 양진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현실(22)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3) 저는 앞글에서 건강한 부부는 잘 싸우는 부부라 했습니다. 싸우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싸우지 않는 것은 만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에만 만나는 성도 사이에는 웃음만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신사답게 만나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삶에 대해 간섭할 일도, 책임질 일도 없기에 사람 선한 미소로 서로를 마주 대할 수 있습니다. 갈등의 깊이는 관계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관계가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관계입니다. 서로의 삶에 대해 관심도 크고, 각자의 삶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크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삶은 아내에게 영향을 미치고, 아내의 삶도 남편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부모.. 2015. 6. 9.
정명훈 선생, 프란츠 리스트는 왜?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3) 정명훈 선생, 프란츠 리스트는 왜? - 프란츠 리스트(3) - 프란츠 리스트의 생애와 작품은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을 덜 받은 부분은 작가로서의 리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습니다. 물론 그는 19세기 중반의 유럽에서 비교 대상이 거의 없는 피아니스트였고, 로베르트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처럼 음악 평론을 본격적으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때문에 당시 유럽이 그의 글을 주목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에 대한 21세기의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쓴 몇몇 글들은 지금 여기에서 읽어도 속이 후련하고 배울 바 또한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 리스트가 남긴 저서, 에세이.. 2015. 6. 9.
김교신이 우치무라에게서 배운 것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2) 김교신이 우치무라에게서 배운 것 -「우치무라 간조론에 답하여」 1930년 - 흔히들 김교신의 스승이 ‘우치무라’라고 한다. 그 호명에 김교신도 깜짝 놀랐다. 물론 그가 우치무라의 성서연구 모임에 참석한 사실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평양신학교 기관지인 『신학지남』에 실린 우치무라 간조에 대한 글에서 ‘조선인 제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김교신은 기회를 빌어 자신이 우치무라를 어찌 생각하는지, 그로부터는 무엇을 배웠는지를 밝힌다. 김교신이 처음 기독교 복음을 접한 것은 1920년 4월 16일 동경 시 거리를 지나던 저녁 무렵이었다. 당시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에 재학 중이던 한 청년의 설교에 깊은 울림을 느꼈다. 하여 이틀 뒤 주일에 근처 교회를.. 2015. 6. 7.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8) 짐승을 가리킨 것이 성서 영감설로 오해돼 성서를 번역하다 보면 원문의 대명사를 번역문에서는 실명사로 바꾸어야만 할 때가 더러 있다. 의미전달을 빨리 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때로는 엉뚱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예전에 대한성서공회 번역자 모임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번역위원 중의 한 분이 아침 기도회를 인도하면서 ‘개역’ 성서의 이사야 34장 16절을 명상할 본문으로 내놓았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아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이 분의 말에 따르면, 단순한 독자들이 이 본문을 성서영감설과 관련시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여.. 2015. 6. 7.
돼지의 맑은 두 눈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22) 돼지의 맑은 두 눈 하나님은 스스로를 누리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누리시는 것과 똑같이 모든 피조물을 누리십니다. 모든 피조물을 누리시되, 피조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서의 피조물을 누리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누리시는 것과 똑같이 만물을 누리십니다. 세상 만물의 가장 작은 조각들에도 하나님의 지문이 찍혀 있네. 모든 원자 속에 삼위일체의 거룩한 형상이 성스럽게 모셔져 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이 어슴푸레 어려 있네… 내 몸뚱이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세포가 모두 다 창조주를 찬미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선언하네. 물총새는 물고기를 잡도록 만들어졌고 붕붕 우는 벌새는 꽃의 꿀을 빨도록 만들어졌으며, 사람은 하나님을 묵상하고 사랑하도록 창조되었.. 2015. 6. 5.
아뜩함과 무력감을 넘어 김기석의 톺아보기(4) 아뜩함과 무력감을 넘어 신문을 보아도 뉴스를 들어도 어제의 세상과 오늘의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 메르스 여파로 인한 파장으로 온 나라가 흔들려도 정부는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고 정치인들은 서로 깎아내리고 흠집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부정부패는 다반사가 되었다. 남북한의 긴장과 대립은 해소될 줄 모르고,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억지 부리는 강대국들의 횡포도 변함이 없다. 남을 모욕하고 부정함을 통해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평화를 거스르는 일이며, 반생명적인 폭거이다. 단 한 번의 실수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갈 수 있는 주한미군의 탄저균 실험에 대한 이 나라 정부의 대처는 또한 어떠한가. 이런 일들을 하도 많이 겪다 보니 무슨 소식을 .. 2015. 6. 5.
언제 예수가 깨끗한 부자가 되라고 가르쳤나? 한종호의 너른마당(23) 언제 예수가 깨끗한 부자가 되라고 가르쳤나? 오늘날 교회의 강단은 보다 쉽고 보다 편하고 보다 재미있는 쪽으로 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대중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심드렁해진다. 세상살이가 복잡하고 힘든 판국에 교회에까지 와서 복잡하고 심오하고 깊이 생각해야 하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성공’과 ‘부’가 가미되면 금상첨화다. 그러기에, 교회는 ‘시장의 논리’를 추종하려는 경향을 보이기까지 한다. ‘시장의 논리’란 대중들의 요구에 맞추는 것이다. 보다 많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말씀의 내용과 방식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교회 부흥의 원리가 되고 있고, 성도(聖徒)라고 표현되는 교회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2015. 6. 5.
십브라와 부아, 목숨 걸고 아이들을 지키다(2)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21) 십브라와 부아, 목숨 걸고 아이들을 지키다(2) 1.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바로 산파들이었을 것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일을 도우며 세상 밖으로 나온 그 귀중한 생명을 두 손에 안아든 산파의 모습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경건하고 거룩한가. 2. 십브라와 부아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다. 그들은 무엇이 옳은지를 알았고,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옳은 일을 했다. 산파들이 하는 일이란 게 생명탄생을 돕는 것이지 생명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바로가 내린 지엄한 명령이라고 해도, 생명을 죽이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었기에 따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로를 거역하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 2015. 6. 4.
묵은 땅을 갈아엎어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1) 묵은 땅을 갈아엎어라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播種)하지 말라"(예레미야 4:3). 학원을 운영하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 학원으로 들어서는 아이들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짐작할 수가 있다고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가볍고 뜀박질을 하듯 경쾌하단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강요에 떠밀려서 오는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는 무겁고 처진단다. 마지못해 오고 있다는 것이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이다. 표현이 뭣 하지만 풀을 뜯기 위해 햇살 좋은 들판으로 나가는 소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발걸음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농촌에서 .. 2015.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