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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의 향기와 나그네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16) 커피 한잔의 향기와 나그네 커피 한잔의 향기가 우울함을 거두어 줄 때가 있습니다. 그건 정갈한 동양화 같은 차를 마실 때와는 분명 또 다른 정서로 우리의 영혼을 적셔 줍니다. 이국(異國)의 풍경이 진한 갈색의 작은 물결 속에서 환영처럼 흔들립니다. 커피 한잔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입니다. 커피를 마시는 이는 나그네가 될 준비를 하는 설레임을 경험합니다. 아프리카의 밀림에서 자라나던 수목(樹木)의 한 열매가, 이슬람의 낙타에 실려 사막을 건너 유럽의 어느 도시 카페에서 제 맛을 내기까지 커피 한잔에도 문명의 긴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남미 카리브 해 연안의 작은 나라들도 이 역사의 대열에 합류합니다. 평소에는 낯설었던 인도네시아의 섬들도 카페를 찾는 나그네의 상상 속에 거쳐.. 2015. 6. 3.
몸을 입혀라 김영봉의 성서 묵상, 영성의 길(6) 몸을 입혀라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 날 먹을 것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서 누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먹으십시오" 하면서, 말만 하고 몸에 필요한 것들을 주지 않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믿음에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 2:14-17)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은 진실이지만, 믿음이 살아 있음에도 행함으로 열매가 맺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씨앗 하나가 땅에 심겨져서 싹을 내고 줄기로 자라 가지를 .. 2015. 6. 3.
인문학 진흥과 대학의 학과들… 이길용의 종교로 읽는 한국사회(23) 인문학 진흥과 대학의 학과들… 인문학 붐이 한창이다. 한쪽에서는 대학의 인문학과가 죽어간다고 난리를 치고, 또 한편에서는 각종 인문학 강좌들이 예서제서 하루가 멀다 하고 국내외 명사들을 초청하여 향연을 펼친다. 이런 어색한 불균형이 이 땅에 자리 잡은 지도 제법 된 것 같다. 정부로서도 세상의 기초학문(?)이라 불리는 인문학을 살리고자 다양한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세운 것인 이른 바 인문한국(HK) 프로젝트였다. 당시 이 정책은 인문학자들로서는 혹할 정도로 후한 인심 쓰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프로젝트에 당첨(?)이라도 될라치면, 장장 10년 동안 HK교수는 월 4백, HK연구교수는 월 3백을 보장하고, 정부의 지원이 종료된 이후에는 심사를 거쳐 HK.. 2015. 6. 2.
메르스 바이러스, 데카메론의 시간 천정근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10) 메르스 바이러스, 데카메론의 시간 지금 창궐(?)중인 메르스 바이러스 유언비어 유포의 진원지는 단언컨대 언론이다. 언론이란 결국 기자들이 쓰는 글이다. 그러나 기자들이 작가는 아니다. 기자는 작가처럼 상상력으로 기사를 쓰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 둘의 경계가 분간이 안 될 때가 자주 있다. 문제는 상상력이 아니라 상상력의 건강성, 곧 독자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기사가 지향하는 현실이 어떤 것이냐이다.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얼마만한 절망과 기원이 담겨야 하는 것인가? 절망 속에 기원을 담아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상상력이어야 하는 것일까? 비단 메르스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계속해서 우리 사회가 마치 재난 영화에 등장하는 현장의 수많은 캐릭터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 2015. 6. 1.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 이범진의 '덤벙덤벙한 야그'(15) '걷잡을 수 없이 못된 애' 길을 지나다 우연히 발견한 거리 오락실! 요즘은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으니 그럴 리 없겠지만, 약 30년 전만 해도 최고 인기였습니다. 한 판에 30원하다가 올라서 50원이었죠.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모여, 게임을 구경했고, 한 게임을 하기 위해선 30분 이상 줄을 서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게임이 나오기라도 하면 밤이 되는지도 몰랐지요. 그러니까…, 도벽이 생긴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제 나이 여덟 살 때, 오락은 하고 싶고, 돈은 없고. 월 4천 원 정도 하던 우유급식비를 삥땅쳐 모두 오락실에 쏟아 부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게임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한 시간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500원을 가져가도 10분을 넘기지.. 2015. 5. 31.
두 명의 프란체스코와 백건우 지강유철의 음악정담(22) 두 명의 프란체스코와 백건우 - 프란츠 리스트(2)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던 지난해 7월 24일,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영혼의 소나타’란 제목으로 제주항 특설무대에서 추모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연주회 10여 일 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백건우는, ‘부다페스트 공연을 준비하다가 세월호 소식을 접한 뒤 할 말을 잃었고,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화가 났었다’고 느리게 말했습니다. 추모 콘서트 제안을 받았을 때 백건우는 자신의 연주회 일정을 변경했고, 파리-서울 왕복 항공료는 물론 출연료까지 포기했습니다. 곁에서 지켜 본 윤정희는 수십 년 연주 생활 중에서 남편이 레퍼토리 선정을 놓고 이번처럼 심혈을 기울인 적은 없었다고 거들었습니다. 백건우는 죽음, 상처, 치유란.. 2015. 5. 31.
생명의 법칙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1) 생명의 법칙 - 「농사잡기」, 1934년 9월 -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하루하루 바삐 뛰며 지내다보니 먹거리로 받은 고구마 한 무더기를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다. 구석에서 존재감 없이 있다가 버려지려고 열매로 영근 생명이 아닐 텐데, 어느 날 문득 대청소 중에 발견하고 살펴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건조한 날씨에 빼빼 물기 마른 모습으로, 도려내어 먹기에는 고구마 싹들이 군데군데 너무나 많이 나와 있었다. 빠르게 내 머리를 스치고 간 생각, 그냥 버려? 자칫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향할 뻔한 고구마 열 덩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얼른 베란다 한 귀퉁이 큰 바구니에 담고 물을 부어 놓았다. 그러고는 또 하루씩 살아내느라 그 일조차 잊고 지내기를 열흘 쯤.. 2015. 5. 31.
‘그분의 정원’으로 통하는 문 한종호의 너른마당(22) ‘그분의 정원’으로 통하는 문 인간의 목숨은 언젠가 끝이 있습니다. 몸은 늙고 더는 기운이 없어 무너져 갑니다. 그 몸에 담아 둔 영혼은 그래서 몸에 더 이상은 머무를 수 없게 됩니다. 살아생전 몸이 태어나 자라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영혼도 함께 자라나고 변모하지만 몸에 끝이 오면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그 이후 그 영혼이 계속 성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몸과 더불어 자란 만큼만 성장해서 그 영원한 운명을 살아가게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의지하자면, 그 다음에는 지금의 몸이 아닌 다른 몸을 입고 살아갈 테니 역시 영혼도 새로운 차원의 성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시간은 .. 2015. 5. 29.
민들레 한희철의 두런두런(10) 민들레 - 동화 - “얘들아, 오늘은 엄마가 너희들에게 중요한 얘기를 들려줄게.” 엄마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낮고 차분합니다. “뭔데요, 엄마?” 엄마 가슴에 나란히 박혀 재잘거리던 씨앗들이 엄마 말에 모두들 조용해졌습니다. “머잖아 너희들은 엄마 곁을 떠나야 해. 제각각 말이야.” “엄마 곁을 떠나야 한다고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씨앗들이 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래. 너희들은 떠나야 해. 떠날 때가 되었어. 보아라. 너희 몸은 어느새 까맣게 익었고, 너희들의 몸엔 하얀 날개가 돋았잖니?” 엄마 곁을 떠나야 한다는 말에 모두들 놀란 얼굴이 되었습니다. “싫어요, 엄마. 우린 언제나 엄마랑 함께 살 거예요.” “우리들끼리도 헤어져야 한다니 너무 무서워요.” “엄마 곁을 떠나.. 2015.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