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88 복음과 성공주의 이데올로기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욥 8:7)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막 9:23)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 4:13) 이 세 구절은 70년대 중반이후 지금까지 한국교회(특히, 순복음교회) 성장과정에서 가장 많이 쓰인 성서의 대목이라고 할 만 하다. 이 말씀을 듣고 주저앉았던 사람들이 일어서서 재기의 의욕을 불태운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는 이러한 의욕의 무진장한 공급처였으며 그로써 한국사회의 발전을 보다 힘 있게 지원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가 겪은 가난과 열등감과 목표상실의 현실에서 풍요와 자신감과 성공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슬로건처럼 이 세 구절은 신앙인들에게 용기.. 2021. 9. 15. 그대 앞에 내 사랑은 그대 앞에 내 사랑은 가난한 사랑은 그대 가슴에 닿기도 전 스러지고 만다 마른 마음에 슬픔을 키우고 오늘도 해는 쉽게 서산을 넘었다 품을 수 없는 표정들이 집 앞 길로 지나고 무심히 서둘러 지나고 어둠속 부를 이름 없었다 웅크린 잠 꼭 그만큼씩 작아지는 생 하늘은 꿈에나 있고 폐비닐로나 널린 이 땅의 꿈을 두고 그대 앞에 내 사랑은 가난한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다 - 1989년 2021. 9. 15. 땅 투기성 재산증식이라는 천박한 수단으로서가 아닌, 땅을 홉. 작이라는 작은 단위까지 나눠 땅에 대해 갖는 인간의 강한 집착은, 유한한 인간이 갖는 무한에의 동경일 수 있으며, 죽음의 기운에 싸여 사는 인간이 땅을 소유함으로 생명의 가능성을 확인하려 하는 일종의 본능에 가까운 보상심리 아닐까. 고향을 향한 회귀본능일 수도 있겠고. - 1989년 2021. 9. 14.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 실내화를 안 가지고 학교를 갔다. 빈 실내화 주머니를 가지고 간 것이다. 맨발로 교실에 있었다. 규덕이 보고 실내화를 가지고 오라고 전화를 했는데도 규덕이는 실내화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이다. 학교에서 계속 맨발로 지냈다. 집에 와서 물어보니 학교에 가지고 왔는데 잊어버리고 나한테 안 준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꼭 챙겨야지. -그렇게도 정신이 없었니? 6.25땐 아기를 업고 간다는 게 베개를 업고 피난을 간 사람도 있었다더라. 초등학교 5학년인 조카 규애가 연필로 쓴 일기 밑에는 빨간색 글씨의 짧은 글들이 있었다. 물으니 담임 선생님께서 써 주시는 것이란다. 반 아이들 일기도 마찬가지란다. 흔히 ‘검’자나 ‘참 잘 했어요’ 도장을 찍어 주는 게 예사인 줄 알았는데 그 선생님은 달랐다. 규애의 일기 밑에는 .. 2021. 9. 13. 식구 아이들이 1일 캠프를 다녀오게 되었다. 동부선교원 어린이들이 캠프를 가는데 같이 가기로 했다. 이숙희 선생님의 배려였다. 저 어린 것들을 보낼 수 있을까. 놀이방 엄마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하룻밤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의 대견한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도 했다. 소리와 규민이도 마찬가지였다. 울지나 않을는지, 대소변은 제대로 가릴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떠나기 전날 짐을 꾸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녀석들의 마음가짐을 도와준다.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울고 보채는 거 아냐?” 슬쩍 말을 돌렸더니 뭔가 생각난 듯 소리가 대답했다. “이러면 되겠다. 엄마 아빠 옷 중에서 안 입는 옷을 하나씩 가져가는 거야. 엄마 아빠가 보고 싶으면 옷을 꺼내 보면 되잖아. 잠 잘 때도 옷을 만지면서 자면 되고.” 엉뚱한 딸의 .. 2021. 9. 11. 생각은 그림자, 마음이 실체 대상과 마주하는 찰라 거울에 비친 듯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한 마음이 있습니다. 곧이어 생각이 그림자처럼 뒤따릅니다. 종종 그 생각은 마음을 지우는 지우개가 됩니다.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림자가 된 생각에게 맨 첫마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무의식 또는 비몽사몽, 명상이나 기도의 순간에 대상과 마주하는 바로 그 순간과 동시에 마음 거울에 비친, 떠오른 그 첫마음이 바로 우리의 본성 즉 본래 마음에 가깝습니다. 곧이어 뒤따르는 의식화된 생각은 단지 본래 마음의 그림자인 것입니다. 실체는 마음입니다. 한 생각을 일으켜 이루어 놓은 이 세상은 마음의 그림자 곧 허상일 뿐입니다. 그 옛날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 석가모니와 예수가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가리키며 보여준 .. 2021. 9. 11. 무모한 명분 허전함과 괴로움과 두려움. 언제부터인지 그런 감정들이 서로 뒤섞여 가슴 한쪽 거친 똬리를 틀고 신기하게 날 거기 잡아넣는다. 애써 아닌 척 하지만 그걸 느낄 때마다 가슴이 눌린다. 함께 사는 이들의 속살 보듯 뻔히 뵈는 아픔, 설움, 거짓을 두고 난 그저 무력할 뿐. 그게 두려워 괴로워 모른 척 하고. 또한 바람처럼 쉽게 헐값으로 회자되기도 하는 가벼움. 정말 내 삶은 어디에 소용 닿는 것인지. 견딘다는 건 무모한 명분 아닌지. - 1989년 2021. 9. 10.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기" 이따금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 후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는 경우가 있다. 어린 생각에도 엄마한테 혼이 날까봐, 어린 마음에도 자기에게 곤란하다 싶으면, 아이들은 무심코 엉뚱한 말로 둘러대거나, 금방 들통날 적절치 않은 말이 입에서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러한 미흡한 말들은 당장에 주어진 현실을 회피하고 싶다거나, 현실을 충분히 직시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둔함에서 비롯된다. 모두가 일종의 거짓말인 셈이다. 그럴 때면 내 유년 시절의 추억 속 장면들이 출렁이는 그리움의 바다로부터 해처럼 떠오른다. 나의 자녀들과 지금 현재 겪고 있는 똑같은 순간이 나의 유년기에도 있었고, 지금도 그대로 겹쳐진다. 함께 뛰어놀던 동네 언니들이랑 무슨 말을 주고 받을 때면, 큰 언니들은 웃음 띈 얼굴로 사뭇 진지한.. 2021. 9. 10. 꽃을 먹는 새 한 아이가 쌀새에 대해 물었다. “저 새는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죠, 엄마? 혹시 꽃을 먹는 게 아닐까요?”(헨리 데이빗 소로우, , 강은교 옮기고 엮음, 도서출판 이레, p.171)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모처럼 맑은 햇빛을 보니 참 좋습니다. 마치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빛을 받아 환히 열린 미래를 봅니다”(시 36:9)라고 노래했던 시인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도 계시지요? 가끔 삶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나의 언덕을 넘고 나면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또 다른 언덕이 우리를 기다리곤 합니다.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형 에서를 피해 .. 2021. 9. 9.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