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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에서 말하는 노동은? 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6) 전도서에서 말하는 노동은? 종교인의 세금납부 의무를 2년 유예시키자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 발의를 주도한 국회의원들이 모두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종교인의 세금납부 정당성과 찬반문제를 논하기 전에 교회 공동체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수고하는 이른바 ‘목회’ 혹은 ‘교회사역’이 노동의 영역인가를 정의하는 제도권 교회의 내부적인 합의가 우선되어야겠다. ‘목회’가 ‘노동’으로 간주되면 그 대가로 발생한 소득 때문에 목회자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금납부의 의무를 이행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몸을 움직여 일하여 필요한 물자를 얻는 육체적 혹은 정신적인 노력과 수고를 총칭하는 말이다. 그러면 목회자의 목회활동은 노동의 영역인가? 기독교의 삶의 표준인 정경.. 2017. 8. 19.
이 땅 기우소서!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3) 이 땅 기우소서! 산은 말없이 길을 품고길은 말없이산을 넘느니좋은 벗 좋은 길좋은 벗 좋은 길 -‘동행’ 매해 여름이 되면 부산 에서 주최하는 독서캠프가 열린다. 책 좋아하고, 이야기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격의 없는 만남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2박3일 시간을 함께 보낸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것에 감탄하고, 별 것 아닌 것에 웃음과 눈물이 터지는, 따뜻하고 진지하고 맑은 모임이다. 오래 전부터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를 하고 있는데, 몇 해 전 모임을 가질 때였다. 모임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을까, 모임을 마치는 날 ‘동행’이라는 짧은 글 하나를 썼고 노래꾼으로 참여한 박보영 씨가 곡을 붙였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노래였지.. 2017. 8. 18.
지팡이와 막대기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2) 지팡이와 막대기 길을 걷는 동안 내내 한 손에 스틱을 잡았다. 스틱 하나의 무게가 얼마나 되랴만, 그래도 짐의 무게를 줄이려고 하나만 챙겨 떠난 스틱이었다. 스틱은 몇 가지 점에서 유용했다. 무엇보다도 안전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인도가 따로 없는 도로를 걸을 때면 자동차가 지나는 쪽 손에 스틱을 잡았는데, 운전자가 길을 걷는 나를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마음을 든든하게 해주는 역할도 했다. 스틱을 손에 잡았다는 것은 하나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자기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를 내가 들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동네를 지날 때마다 짖어대는 개들.. 2017. 8. 14.
숨겨두고 싶은 길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1) 숨겨두고 싶은 길 아직 휴가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십이선녀탕 입구는 한산했다. 아예 문을 열지 않은 식당들이 많았는데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눈에 띄어 들어가니 할머니가 맞아 주셨다. 걷는 시간을 통해 덤처럼 누렸던 즐거움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때마다 누렸다. 식당에서 만난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손님이 없어 자연스럽게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자식들 이야기, 농사짓는 이야기…,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은 물론이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렇게 시골에 살면 외롭지 않으세요?” 할머니에게서 묻어나는 표정을 보면 전혀 외로운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여쭤보.. 2017. 8. 11.
도움 받으시다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20) 도움 받으시다 우연히 눈에 띈 표지판 덕에 번잡한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길을 걷던 중 한 미술관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다 있구나 싶은,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이었다. 때마침 한 젊은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 몇 시에 개관을 하는지를 물어보았더니 10시라 했다. 시계를 보니 8시 40분, 시간 차이가 제법 났다. 그냥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가 말했다. “관심 있으면 들어오셔도 돼요.” 덕분에 2층으로 된 미술관을 혼자서 둘러보았다. 나를 받아준 직원은 일일이 전시관의 조명을 켜주며 불편 없이 둘러보게 해주었다. 수화 김환기, 고암 이응노 등 익숙한 화가의 작품도 있었지만 낯선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낯선 것은.. 2017. 8. 8.
행동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믿음 이정배의 고전 속에서 찾는 지혜(13) 행동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믿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하느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고 말이다. 그 때 나는 ‘너와 나’라는 문구에서 ‘와’가 하느님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영어로 보면, ‘You and Me(너와 나)’에서 ‘and’ 같은 존재가 하느님으로 정의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사람과 자연 그리고 영원과 순간을 연결해주는 고리로서 하느님이 의미 있다고 답변했다. 철저히 존재론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이 있다. 어떤 개념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이들이다. 존재의 유무에 집착하여 자신들이 믿는 대상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마련해야 안심이 되는 이들이다. 가치로서 또는 관계성으로서 가 아니라 개체성을.. 2017. 8. 7.
가혹한 현실과 믿음 사이 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5) 가혹한 현실과 믿음 사이 “재판하는 곳에 악이 있고, 공의가 있어야 할 곳에 악이 있다”(전도서 3:16, 새번역). 공의와 정의 실행으로 억울함이 없어야할 법정에서 조차 악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발설한 코헬렛(전도자)의 이 말, 통탄할 일이다. 만연된 불의를 짚어낸 말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면모가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모름지기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관찰하고 수집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해하고 통찰해보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코헬렛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정직하게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가 예언자들처럼 시대의 악을 고발하도록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간결한 말의 세계를 음미하다보면 인간과 사회의 본질적인.. 2017. 8. 5.
작은 표지판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9) 작은 표지판 진부령 정상에서 용대리를 향해 내려가는 길은 걷는 즐거움을 맘껏 누리게 했다. 아직 세상이 눈을 뜨지 않은 이른 아침,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한적한 길, 그런 길을 혼자 걷는 즐거움을 어느 누가 흔하게 누릴까. 오가는 차도 드물뿐더러 길도 내리막길어서 나도 자연스레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같았다. 제법 걸어 내려왔다 싶을 때 저만치 앞쪽으로 기가 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기암괴석이 질주하듯이 내달리고 있었다. 용대리(龍垈里)라는 지명이 바로 저 바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용 용’(龍) 자에 ‘터 대’(垈) 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암괴석은 영락없이 용의 등 비늘을 빼닮았다. 용의 등 비늘을 닮았지 싶은 바위가 산등성이를 내달리고 있.. 2017. 8. 4.
왜 걸어요?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8) 왜 걸어요? 이 또한 드문 경험이었다. 그곳이 식당이든, 길가 평상이든 배낭을 내려놓고 쉴 때면 누군가 다가와 먼저 말을 붙이는 이들이 있었다.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인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닐 터, 그런 점에서 새롭기도 하고 드물기도 한 경험이었다. 생각해보면 내 행색과 무관하지 않은 일이겠다 싶다. 조금만 유심히 보면 나는 길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가까운 길이 아니라 먼 길을, 한 나절이 아니라 여러 날 걷는 사람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배낭 때문이었다. 배낭이 유별났던 것은 아니다. 길을 걷다 만난 이들 중에는 배낭의 무게를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따로 재어보질 않았으니 나도 몰랐다. 일정 중에서 도피안사를 찾아갈 때였다. 신라 시대.. 2017. 7.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