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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가도 남는 것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10) 사람은 가도 남는 것 소똥령 마을, 이름부터가 정겹다. 그곳이 어디든 고개를 넘는 소떼들이 보이고, 그러느라 소들이 싸댄 똥들이 여기저기 멋대로 나뒹굴고 있을 것만 같다. 냄새조차도 역겹지 않아 바람은 여전히 구수하게 불어올 것 같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어디선가 정지용의 향수가 들려올 것도 같다. 소똥령을 향해 가는 길에 대대리를 지나게 되었다. 문득 대대리 삼거리가 눈에 익다. 같이 신학을 공부하고 대대리 이 외진 곳에서 목회를 하다가 일찍 주님 품에 안긴 친구가 있다. 최경철 목사, 눈매와 웃음이 참으로 선한 친구였다. 그 때만 해도 대대리는 땅 끝처럼 .. 2017. 7. 15.
어쩌다 두 용사가 쓰러졌는가! 사울 이야기 4 어쩌다 두 용사가 쓰러졌는가!사무엘하 1:17-27 사울은 실패한 삶을 살았을까?지난 번 글에서 다윗이 등장한 후 사울의 생을 개략적으로나 살펴봤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통해 하느님이 자기를 버렸고 대신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을 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 후로 하느님이 보낸 악한 영에 시달려 강박증 비슷한 증세를 보였습니다. 이에 신하들은 수금을 잘 타는 다윗을 소개해서 다윗은 사울의 신하가 됐는데 바로 이 다윗이 사울 대신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였습니다. 사울을 괴롭힌 강박증의 원인이 다윗이었는데 수금을 연주해서 그를 강박증에서 치료해준 사람도 다윗이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입니까. 그 이후 얘기는 지난 글에서 얘기했으니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누가 누구를 쫓.. 2017. 7. 14.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9) 길을 잘 일러주는 사람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서 잠깐 기도를 드렸다. 지금은 남한의 가장 북쪽에 있는 초등학교, 하지만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나라 중심에 있는 학교가 되기를, 금강산 가는 길목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는 학교가 되기를, 남과 북의 어린이들이 내가 서 있는 이 운동장에서 맘껏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잠깐의 기도에도 간절함이 담겼다. 기도 끝에 짧게 보고를 드리고는 첫 걸음을 옮긴다.‘저 이제 떠나요!’ 대지를 적시는 비가 먼 길 나서는 걸음을 기억하고 격려하는 하늘의 손길처럼 여겨졌다. 첫날 일정은 거진항까지다. 로드맵에 적힌 거리는 15.5km, 앞으로 걸을 길이 만만치 않으니 첫날은 가볍게 몸.. 2017. 7. 13.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생을 위하여 김순영의 구약 지혜서 산책(4)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생을 위하여 어떤 향기도 열정도 재미도 없는 건조한 글을 꼽으라면 교과서다. 이것은 학교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어정쩡한 시간을 보내며 가끔씩 무료하면 아무거나 읽던 중고등학교 시절 느꼈던 나의 생각이다. 그런 내가 마흔을 훌쩍 넘긴 세월을 지내며 십대 청소년기의 아들에게 “학교공부도 잘 해야지”라고 말하는 학부모가 되어있다. 그렇게 나는 세월과 함께 평범한 학부모의 대열에 서있다. 그런데 문제는, 학교공부가 시민적 교양과 덕성을 목표하는 교육이 아니다. 경쟁에서 이긴 소수의 사람들에게 우월성을 부여하는 시대의 폭력성과 연계된 상태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야지 다짐했지만,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는 기독교인이고 성경을.. 2017. 7. 11.
가장 좋은 지도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8)가장 좋은 지도 “목사님, 혼자 걸으실 것을 감안해 코스를 만들어 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도 노인은 늙어가고 젊은이는 사랑하며 아이는 태어납니다. 목사님 그 땅 사랑하시는 줄 진작부터 알기 때문에 저도 광야 같은 그 길 ‘강추’합니다. 터널이 많이 생기고 도로가 넓혀지면서 걷기 좋던 그 길이 위험천만한길로 변했다는 것이 문젭니다. 하여튼 다음 주 중 코스를 만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예비 일을 이틀 정도 두시면 좋겠습니다. 고성~철원은 궁예가 강릉을 출발해 철원으로 가며 걸었던 길, 철원~파주는 왕건이 철원을 오가던 길이라 생각하면 재미 있습니다.” “목사님, 아주 바쁘고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걸으시는 거 로드맵입니다. 숙박처, 식당 등은 일일이 다 체크를 못했.. 2017. 7. 10.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7) 따뜻한 기억과 든든한 연대 열하루 동안 DMZ 인근마을을 따라 홀로 걷기로 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도, 휴식이나 유람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기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열하루 일정을 ‘걷는 기도’라 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야 늘 드려왔다고는 하지만, 구별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허리가 잘린 채 철조망을 두르고 있는, 서로를 향하여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내 나라 그 땅을 내 발로 걸어가며 드리는 기도는 가만히 앉아 드리는 기도와는 사뭇 다를 것이라 여겨졌다. 길을 떠나기 전에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을 생각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외에도 몇 가지 기도할 내용들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기도를 .. 2017. 7. 8.
여성들의 소리가 내 속에서 고동쳤다 여성들의 소리가 내 속에서 고동쳤다 이 책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에서 30여 명을 불러내어 오늘의 독자와 다시 대면시킨다. 초고를 보고 반가웠다. 퍽 오래 전이긴 했지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는 하는데 말이 없는 한 여성” 호세아의 아내 고멜을 변호하고 그의 남편 호세아를 호되게 나무란 적이 있었다. 그 후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변호했던 성서의 여성들이 김순영 박사에게 새롭게 초대받아 새 변호인의 변호를 받으며 다시 활기차게 살아나고 있고, 성경 독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러시아의 여성 시인 안나 아흐마또바(1889-1966)의 라는 시가 있다. 고향 소돔을 떠나게 하는 천사의 강제이주 명령은 잔인하다. 도시를 떠나는 자가 뒤를 돌아보았다가는 죽고 만단다. 그러나 천사의 말에, 그.. 2017. 7. 7.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한 마리 벌레처럼 가는 ‘걷는 기도’(6) 길을 떠나니 길 떠난 자를 만나고 명파는 또 하나의 땅 끝처럼 먼 곳에 있었다. 월요일 새벽, 아들 규민이와 함께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전날 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아침 6시 30분 속초행 고속버스를 예약해 둔 터였다. 창구에서 표를 끊고 버스에 타면서 표의 절반쯤을 잘라내던 것은 이젠 옛 시대의 유물, 이제는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고 예약한 내용을 핸드폰으로 보여 주기만 하면 되었다. 핸드폰에 있는 예약권을 단말기에 대니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앉을 좌석번호까지를 알려준다. 마치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기계가, 그것도 친절한 목소리로! 이른 시간인데도 생각보다 승객이 많았다. 드디어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한다. 잠깐 눈을 붙였다 싶었는데, 눈.. 2017. 7. 6.
슬픔의 강, 생명의 강 슬픔의 강, 생명의 강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다. 교양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읽는다면 모를까,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길을 찾고자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애써 가꿔온 삶의 토대와 자아 정체성을 사정없이 흔들거나 허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위안을 구하는 이들에게 성경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낯선 세계를 향해 자기를 개방하는 일이다. 삶의 방식을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이라야 성경과 참으로 만날 수 있다. 성경은 매끈한 텍스트가 아니라 주름 잡힌 텍스트이다. 인류의 오랜 경험과 시간이 성경 이야기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름과 주름 사이의 갈피를 잘 살필 때 성경의 진미가 우러나온다. 이반 일리치는 이라는 책에서 수도사들의 .. 2017.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