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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똥 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 제가 똥 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동네 한복판에 있었다. 지리적으로 한 가운데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긷고 빨래를 하고, 우물은 만남의 장소였고 대화의 장소였다. 우물이 있어 비로소 마을 사람들은 한 식구와 같은 ‘우리’가 될 수 있었다. ‘남’이 따로 없었다. 우물은 그렇게 마을을 형성하는 중심이었다. 그런데 우물에다 똥을 누다니,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그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우물에다 똥을 눈다는 말인가? 누군가를 골려주려고 그랬을 수도 있고, 대판 싸운 집이 있어 분한 마음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속담은 ‘제가 똥 눈 우물물 제가 도로 마신다’고 말한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재미있고, 통.. 2016. 3. 4.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김기석의 톺아보기(23) 교회는 자동세탁기가 아니다 손석춘 선생님, 뵌 지 오래되었습니다. 경칩에서 춘분을 향해가는 이즈음 봄기운을 잘 타고 계신지요? 며칠 전 저는 겨우내 입었던 내복을 벗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에 한기가 들어 잔뜩 옹송그린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부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저의 몸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매일 물이 오르고 있는 산수유나무와 개나리와 눈맞춤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 흘낏흘낏 창밖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잠포록한 날씨 탓인지 제가 늘 눈길을 주고 말을 건네는 삼각산이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높은 빌딩과 거대한 크레인만이 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무엇인가가 새삼 떠올랐습니다. 요 며칠 만나는 사람마다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해.. 2016. 3. 1.
너희를 껍데기로 만들겠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7) 너희를 껍데기로 만들겠다 “내가 그들 중(中)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新郞)의 소리와 신부(新婦)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燈)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이 온 땅이 황폐(荒廢)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년(七十年) 동안 바벨론 왕(王)을 섬기리라”(예레미야 25:10-11). 신혼 초의 일이다. 부엌을 지나가다 창문가에 유리잔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같은 키의 파란 싹들이 아우성을 치듯 앙증맞게 담겨 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뜻밖에도 콩나물이라 했다. 반찬을 하면서 콩나물을 한 움큼 꽂아둔 것이었다. 콩나물이 빛을 쬐니 화초처럼 파랗게 바뀐 것이었다. 며칠 뒤였다. 싹이 담긴 유리잔에 물이 거반 줄어 있었다. 얼른 물을.. 2016. 2. 29.
‘자비’보다 ‘무심’(無心)이 낫다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5) ‘자비’보다 ‘무심’(無心)이 낫다 나는 무심(無心)을 자비보다 더 차원 높은 것으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자비는 동료의 결핍을 향해 밖으로 나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무심은 이러한 마음의 혼란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내가 모든 덕들을 살펴보건대, 무심만큼 하나님께 도움이 되는 덕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랜 전에 믿음이 깊은 성인이 있었다. 그는 매우 거룩한 사람이었으나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성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을 성자라고 여기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평범한 일을 하면서도 항상 자기 주위에 사랑의 향기를 퍼뜨렸다... 2016. 2. 25.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김기석의 톺아보기(22)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때 “길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자꾸 가다보면 생기는 것이다.” 루쉰의 이 말과 처음 만난 것은 80년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을 실감하고 있다. 20여 년 전 임수경과 문익환 목사는 갈 수 없는 땅, 가서는 안 되는 땅, 길이 끊긴 땅에 들어갔다. 그들에게는 반역자라는 붉은색 찌지가 붙었다. 하지만 그들이 걸었던 그 자리에 난 발자국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길이 열렸다. 그 길은 시작은 꿈이었다. 이사야는 주전 8세기,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충돌하고 있던 그 암울한 시대에 이집트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큰길을 보고, 이스라엘과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 세 나라가 이 세상 모든 나라에 복을 주게 될 것을 꿈꾸었다... 2016. 2. 22.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회고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2)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한 회고 -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욥기 6:26) - 4인방 모델 인상 비평적이고 경솔한 말일까 두렵고 삼가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복음주의권)의 목회 현실은 4인방(옥한흠, 홍정길, 이동원, 하용조) 모델에 따른 것이라 말하고 싶다. 4인방 모델이란 이런 것이다. 그들은 자주 이 시대의 멘토 혹은 영적 교사(스승), 차세대 지도자로 불린다. ―그런 헌사들을 그들이 선호하는지 거부하는 진 분명치 않다― 인정한다. 그들은 현실 목회에서 일정한 성과를 이루었다. 여기저기 국내외의 각종 집회의 연사로 초빙되어 강연을 하고 설교를 했고 또 그것을 책으로 출판한다. ―그들은 많게는 벌써 수십 권의 저서를 저술했다!―.. 2016. 2. 21.
사람의 판단과 주님의 판단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6) 사람의 판단과 주님의 판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人)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捕虜)를 이 좋은 무화과(無花果)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引導)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全心)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百姓)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예레미야 24:5-7). 《탈무드》에 굴뚝청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굴뚝청소를 하러 두 사람이 올라갔는데 청소를 마치고나니 한 사람은 얼굴이 시커멓고 한 사람은 깨끗했다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얼굴을 씻겠는가 하.. 2016. 2. 21.
더하기 행복론의 허구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4) 더하기 행복론의 허구 내가 행복한 까닭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거나 내 곁에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얼마나 내 ‘가까이’ 계신지를 깨닫고, 하나님에 관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붙잡을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그 매혹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소유하라.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축적하라. 그러면 그것이 그대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리라.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 출시된 신상품을 구입하라. 그러면 그것이 그대에게 더 큰 기쁨과 만족을 안겨 주리라. 나는 이것을 ‘더하기 행복론’이라 부른다. 동화 의 주인공 한스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만족을 찾아 기꺼이 ‘더하기 행복’의 사슬에 묶인 노예가 된다... 2016. 2. 19.
요단강의 쇳소리 성염의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26) 요단강의 쇳소리 “당신은 누구요?” “나는 광야에서 울부짖는 이의 소리요”(요한복음 1:19-28). “당신은 누구요?” 예루살렘 제관과 레위지파 사람에게 광야에서 서성거리는 미치광이의 대답은 중요치 않았다. 사실이냐 아니냐,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그자가 자기들의 법망에 걸리겠느냐 아니냐가 문제였다. 그자가 누군인들 무슨 대수인가? 요컨대 어떻게 저자의 입만 다물게 할까 그것이 전부였다. 지난 30년, 한국 교회에는 많은 소리가 있었다. 듣기 거북한 쇳소리가 있었다. 마치 양들이 떼죽음을 당하는데 목자는 코를 골고 있다며, 목자 대신 싸움을 벌이던 개들의 소리와 같았다. 얼어붙은 강토를 스산하게 휩싸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놀라 달빛타고.. 2016.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