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생각(21)
또 하나의 나
필리핀 딸락지역을 다녀왔다. 수년 전 정릉감리교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아 예배당 하나를 세운 아스투리아스가 포함된 지역으로, 장로님 내외분은 그 지역에 시니어학교(11~12학년) 건물을 봉헌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계기로 의료봉사가 시작이 되었는데, 뭔가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해오던 비중 있는 일, 왜 그런 지를 말만 듣고 판단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싶어 동행을 했다.
의료선교는 모두 3곳에서 이루어졌다. 허름하고 좁긴 해도 예배당에서 진료가 이루어졌는데 깜짝 놀랐던 것은 그곳을 찾는 수많은 아이들이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표현이 송구하지만 ‘깨알 쏟아지듯’ 몰려왔다. 피난민촌처럼 여겨질 만큼의 허술한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저 많은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헝클어진 머리와 허름한 옷, 새까만 발, 어린 아이임에도 까맣게 변한 치아, 엄마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의 어린 나이에 자식들을 안고 있는 모습, 치과진료를 맡은 이에게 물어보니 첫날에 뽑은 치아만 46개라고 했다.
길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들이었다. 많은 일 중에서도 유독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이었다. 창가에 매달려 예배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진료를 바라보는 눈길들이 있었다. 들어와서 진찰이나 치료를 받으면 치약이나 칫솔 등을 선물로 받을 수 있음에도 그들은 창문을 통해서만 안을 들여다 볼 뿐이었다. 행여나 눈이 마주치면 얼른 숨어버리곤 했다.
그들은 왜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못했을까? 단순한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경계심이나 두려움일지도 모를 일이고, 어쩌면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창가에 매달린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거리감이 마음 아프게 숙제처럼 남았다. 치료를 받은 후 선물을 받고 돌아섰던 아이들이든, 창가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 볼 뿐 끝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아이들이든, 내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그 모든 아이들의 모습 속에는 내 어릴 적 모습이 담겨 있다는, 우리 어릴 적 모습도 저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그래서 더욱 눈물겨운...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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