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09)
목이 가라앉을 때면
부활주일을 앞두고 두 주간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을 갖고 있다. 어떤 모임 앞에 ‘특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조심스럽다. 졸지에 다른 시간을 특별하지 않은 시간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말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겨진다.
평소에도 갖는 새벽기도회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서일까, 평소보다 많은 교우들이 참여를 한다. 평소와는 달리 대표기도, 성경봉독, 특별찬송 등의 순서도 있다. 그런 순서 자체가 마음을 구별하게 만들지 싶다.
기도회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 목이 칼칼해지기 시작하더니 푹 가라앉고 말았다. 새벽에는 증세가 더 심해져서 말하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대표기도를 하는 교우가 목사의 성대를 위해서도 기도를 하니 마음에 더 걸린다.
이렇게 목이 가라앉을 때면 떠오르는 시간이 있다. 오래 전이었다. 강원도 화천에서 연합성회가 열릴 때였다. 화천에 있는 교회가 교단을 떠나 한 자리에 모여 말씀을 나누는 자리였다. 강사로 초대를 받았는데, 떠나기 전부터 칼칼하던 목이 대번 티를 내기 시작했다. 목이 찢어지듯이 아팠고, 말이 잘 나오지를 않았다. 색색거리는 쇳소리뿐 정말로 말이 안 나와 예배 후엔 식사기도를 못할 정도였다. 나을 수만 있다면 똥물이라도 마실 심정이었다. 마이크를 손에 붙잡고 어렵게 시간을 이어갔다. 오히려 교우들은 강사를 걱정하며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마침내 마지막 말씀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말씀을 나누기 전 그동안 강사를 위해 기도해준 교우들께 고맙다는 인사부터 했다. 인사 후 기도로 말씀을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삶에서 며칠을 감하시든, 몇 달을 감하시든, 몇 년을 감하시든 괜찮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시간만큼은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칼칼하던 목이 다시 멨고, 두 눈이 젖었다. 다행히 말씀을 모두 마칠 때까지 목소리가 나왔다. 기도를 들으신 주님의 은혜였다. 목이 가라앉을 때면 화천, 그 때의 기도가 떠오른다.
내 삶에 얼마큼의 시간을 허락하시든 얼마를 감하셨는지 셈을 하지 않기로 한다. 여쭙지 않기로 한다. 어차피 시간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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