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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그냥

by 한종호 2019. 5. 8.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9)

 

                                     그냥 
                 

  후둑후둑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오래된 흙집 흙벽 떨어지듯 견고하다 싶었던 마음이 허물어질 때가 있다. 태연하던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어디에도 뿌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미동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손을 휘저어도 무엇 하나 잡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어떤 것도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도, 음악도, 책도, 커피도, 세상 풍경도, 전해지는 이야기도,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뒷걸음을 친다. 한 순간 내가 낯설고 세상이 낯설다. 모래알 구르듯 시간이 지나가고, 어둠이 깊도록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침내 향방이 사라진다.


그럴 때면 발버둥을 치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지도,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미끄러지듯 스미듯 무중력의 물컹한 시간에 나를 맡긴다. 유빙처럼 어디에 닿을지를 알지 못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떠받칠, 나보다 깊은 내부에 모든 것을 맡긴다. 그럴 뿐이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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