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15)
빗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목양실 화장실엔 화분 세 개가 있다. 다육이를 파는 가게 앞을 지나다가 가장 작은 것 세 개를 사서 창가 쪽에 놓아두었다. 하필이면 화장실이라니, 다육이에겐 미안했지만 화장실에 파란 빛깔의 식물이 있다는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화분 하나가 대뜸 눈에 띄었다. 다육이 줄기가 블라인드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듯했다. 블라인드 칸 사이로 몸을 기대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순간 마음이 안쓰러웠던 것은 밖엔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블라인드에 몸을 기댄 줄기는 마치 창밖 빗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빗소리를 듣기 위해 온몸을 귀로 삼아 창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좁다란 칸 사이로 몸을 들이밀어 비가 오는 모습을 바라보려는 것처럼 보였다.
빗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었다. 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한 것이었다. 그것은 비를 맞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무리 비와 가깝게 있다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생명을 가진 식물에게는 빗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빗줄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비를 맞는 것이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가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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