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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by 한종호 2019. 10. 20.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2)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아코디언 연주를 하는 두 사람을 본 것은 막 찻집에서 나왔을 때였다. 부흥회 셋째 날, 낮 집회를 마치고 점심을 먹은 뒤 찻집을 찾았다. 동강 변에 있는 찻집이었는데, 2층에서 내다보는 경치가 빼어났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들기 시작하는 붉은 빛이 곳곳에 스미고 있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말씀을 듣는 교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고마움으로 말씀을 듣는 교우들이 고마웠다.

 

이야기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찻집 앞 느티나무 앞에서 두 사람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었다. 품이 넓은 느티나무와 저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잘 익은 햇살, 그 속에서 연주하는 아코디언 소리는 가을 풍광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함께 차를 마신 선배 목사님과 교우들은 잘 쉬라는 인사를 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몸은 피곤했지만 쉬기 위하여 숙소로 돌아오는 대신 아코디언 연주자에게로 다가갔다. 마침 차에 카메라가 있어 챙겨서 갔다.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려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의 연주를 곁에서 들어도 좋을지, 연주하는 사진을 찍어도 좋을지를 물었더니 얼마든지 좋다고 했다. 빼어난 가을 경치만큼 두 사람의 마음도 흔쾌했다. 이어지는 몇 곡의 연주들, 그 중에서도 El Cóndor Pasa가 압권이었다. 아코디언과 너무도 잘 어울렸는데, 실제로 강가에선 백로인지 왜가리인지가 유유히 날고 있었다.

 

 

 

 

 

그새 마음이 가까워진 탓일까, 한 곡을 신청해도 좋을지를 물었더니 제목을 묻는다.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겠다 싶은 곡이 떠올랐던 참이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청했더니 즉흥연주를 하는데, 막힘이 없다.


 

마침 차에는 내가 쓴 책이 두 권 있었다. 돌아서기 전에 좋은 연주를 들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고 싶었다. 책을 전하기 전 “저는 개신교 목사입니다” 하며 내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연주를 한 한 사람이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장로교 고신파 목사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작고 외진 교회에서의 목회를 고집했던. 나에게 영월에 사느냐 물어 집회 인도 차 왔고, 수요일 저녁까지 말씀을 나눌 예정이라 대답을 했다. 그때 그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괜찮으면 저녁 집회에 참석하여 아코디언으로 찬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대답할 말은 아니었지만 선배 목사님이 거절하실 일은 결코 아니다 싶었다.

 

저녁 집회 시간, 그는 정말로 교회를 찾아와 아코디언으로 여러 곡 찬양을 했다. 마음속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코디언 연주라면 우리나라에서 2등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고 할 만큼 뛰어난 연주자였지만, 하루에 연습을 6시간 이상 한다고 했다. 그날 밤 세종시로 내려가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찬양 후 함께 예배를 드렸고, 예배 후에는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하지 못했던 만남, 하지만 복되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우연처럼 주어진 만남은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가을 햇살 가득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청했던 노래처럼,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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