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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나무들 옷 입히기

by 다니엘심 2019. 11. 12.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11)


나무들 옷 입히기


갈수록 해가 짧아진다. 오후가 시작되어 잠깐 시간이 지난다 싶으면 어느새 땅거미가 깔리고는 한다. 문득 인생의 계절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해가 지는 시간도 그렇게 찾아올 것이었다.


새벽예배 준비와 심방 준비를 마쳤을 때는 이미 어둠이 다 내린 시간이었다. 막 자리에서 일어나며 보니 누군가 예배당 마당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을 의지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대뜸 누구인지를 알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는 트럭, 조경 일을 하며 정릉교회 조경위원회를 맡고 있는 권사님이었다. 하루의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는 대신 예배당에 들러 예배당 주변을 돌보는 일을 하신다. 피곤한 중에도 맡겨진 일을 지극한 정성으로 감당하는 권사님을 보면 늘 고마움이 앞선다.

 

 

 


물 한 병을 들고 다가가니 권사님이 맞았다. 일을 하느라 권사님은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보니 트럭에 실린 볏짚을 연신 손으로 훑어내며 추리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세요?”  

 

인사를 나누고 무슨 일을 하는지를 여쭸더니 권사님이 대답을 한다.

 

“내일이 ‘입동’이잖아요. 나무들 옷을 입히려고요.”


권사님의 대답이 하도 자연스러워서 나는 놀랐다. 권사님은 지금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으니 여린 나무들 겨우내 얼어 죽지 말라고 옷을 입혀주는 것은 권사님에겐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순간 부끄럽고 숙연했던 것은 여린 영혼들 앞에 내 그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호와 관심이 필요한 이들에게 너무도 당연하게 보호의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인지, 입동을 앞두고 나무의 옷을 준비하고 있는 권사님은 엄히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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