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2)
밟고 싶어요
책장을 정리하다가 종이 한 묶음을 발견했다. 악보였다. 지난여름 힐링 콘서트에 노래손님으로 다녀간 성요한 신부님이 전해준 악보였다.
‘두 개의 강’ ‘그럴 수 있다면’ ‘나처럼 사는 건’ ‘만 냥보다 더 귀하신 어머니’ ‘참새 다녀간 자리’ ‘울지 못하는 종’ ‘환대’ 등, 그동안 내가 썼던 짤막한 글에 곡을 붙인 노래들이었다. 글이 곡이 된다는 것은 몰랐던 새로운 경험이 된다.
악보 중에는 ‘밟고 싶어요’가 있었다. ‘밟고 싶어요’는 내가 쓴 글이 아니었다. 심방 중에 만난 정릉 어느 골목길 전봇대에 붙어 있던 방, ‘개 주인은/ 개 때문에/ 개 망신 당하지 말고/ 개 똥 치우시오’라는 글을 읽고 그 내용이 재미있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고서 예전에 만든 노래가 떠올랐다며 부른 노래였다. 힐링 콘서트에서 부른 많은 노래 중에서도 교우들이 가장 재미있어 한 노래였다.
‘밟고 싶어요’의 가사는 짧다. 짤막한 노래지만 노래를 듣다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쓰레기와 쓰레기봉투를 놓고 간 이는 분명 양심불량자, 그런데 그를 ‘놈’이 아니라 ‘분’이라 부르는 것도 그렇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첫눈 같은 분’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다. 이게 뭐지 하는 순간 한 마디가 보태지는데, 바로 그 마지막 대목에서 폭소가 터진다. 노래를 듣는 이를 갸우뚱하게 만들고는 한 방을 제대로 먹인다.
곡이 단순하니 한 번 배워 부르시며 한 방을 먹이시든지, 한 방을 당해 보시든지!
<이곳에 쓰레기와 쓰레기봉투
버리고 가시는 분은
첫눈 같은 분이십니다.
밟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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