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13)
엄마, 내 휴대폰
"엄마, 내 휴대폰!"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엄마, 내 휴대폰 놓고 내렸어요. 지금 내 친구 폰으로 거는 거예요."
매일 아침 7시50분이면 딸아이를 태워서 학교로 갑니다. 교문 앞이 붐비지 않도록 한 블럭 못 가서 내려 주는 것은 신학기 초 학교와의 약속입니다.
"엄마, 영어 학원으로 좀 갖다 주세요.",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라도 해 줄 수 있는 상황. 잠시 대답을 미룹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 동안 휴대폰 없이 지내보는 것도 괜찮다 싶은. 그전부터 엄마 마음 속에 감춰 둔 한 생각이 선물처럼 주어진 우연한 기회입니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딸아이에게 휴대폰은 떨어질 줄 모르는 분신이거든요. 휴대폰 자리를 대신하여 심심함으로 채우기를 바라는 건 엄마의 헛된 마음일까요. 때때로 찾아드는 심심함과 공허감으로 자녀의 내면이 태초의 커다란 하늘로 가득 채위지기를 바라는 마음. 창조성으로 이어질 그 지루한 터널의 시간을 빼앗은 휴대폰이 엄마는 늘 못마땅한 것입니다.
아침밥을 겨우 한 술 뜨면서도 왼손엔 폰을 들고서 얼굴에 바싹 대고 있는 풍경. 틈틈히 랩 음악을 듣기도 하고, 혼자 있는 딸아이의 방에선 까르르 웃음 소리가 건넌방까지 들려오기도 하고요. 주말이면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면서도 바로 턱 밑으로 유튜브 동영상은 쉼 없이 흘러 갑니다. 그렇게 휴대폰은 흐르는 강물처럼 딸아이의 일상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릅니다.
잠시 휴대폰 없는 딸아이의 하루를 그려 봅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10시가 넘습니다. 학원은 어디까지나 자율선택이었기에. 오히려 학원을 못 다니게 하는 건 엄마 쪽이니까요. 학교 수업만 충실히 해도 얼마든지 내신 성적은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엄마의 입장이지만, 또래 친구들과 학원 선생님과의 정이 학습보다는 더 끈끈해 보입니다.
잠자리 머리맡에까지 스마트폰을 손에 쥔채로 잠든 딸아이 얼굴을 슬면서 짧은 한 마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 자녀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예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딸아이를 차에서 내려 주면서도 어김없이 씨앗처럼 툭툭 던지는 한결같은 말이 있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고,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항상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라." 쿵, 닫히는 차문 소리에, 딸 아이의 대답은 묻히기 일쑤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제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에 떨어지듯,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예수'라는 이름 두 글짜를 새깁니다. 휴대폰에 마음을 빼앗긴 자녀의 알 수 없는 내면 세계에 '예수' 이름자를 씁니다. 강물에 글씨를 쓰듯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순간의 마무리 인사로 어김없이. 아무리 말해도 서로에게 질리지 않는 이름, 예수.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 걸음에 나란히 함께 할 이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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