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14)
무딘 마음을 타고서 고운 결로 흐르는 이야기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을 읽고 -
책을 펼친 후 몇 날 며칠이 흘렀는지 모른다. 책을 펼치면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러기가 힘이 들었다.
한바닥을 읽다가 가슴이 멍먹해지면 고개 들어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또 한 줄을 읽다가 눈물이 자꾸만 나와서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다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어 눈물 콧물을 소매로 닦다가. 그렇게 가슴에 맴도는 울림이 쉬 가라앉질 않아 책을 덮고 마는 것이다.
편안히 앉아 눈으로만 읽기가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서, 처음 글부터 필사를 하기로 했다. 하루에 한두 편을 적으면 크게 무리는 없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농부와 목자의 마음을 내 무딘 가슴에 새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일주일이 넘었나 보다 어깨 죽지가 아려서 오전에는 잠시 누웠다는 게 한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뜨니 정오가 넘었다. 이런...
남들은 지금 밖에서 일하느라 숨 돌릴 틈도 없이 돌아가고 있을텐데,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책상에 편히 한 번 엎드리지도 못할 시각. 이 얼마나 편한 팔자인가. 미안한 마음에 또다시 글을 읽고 글을 적고, 나머지 시간을 사색과 감사함으로 채웁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밖엔 달리 도리가 없기에. 어쩌면 하나님이 그러라고 주신 소명을 위한 터널 같은 시간인지도 모르기에.
그러기를 얼마나 했는지. 오늘 겨우 책의 중반을 넘긴 것을 본다. 필사는 잠시 접어 두고서 그냥 읽어 나간 것이다. 뒤로 갈수록 눈물은 터진 샘물처럼 흐른다. 멍먹하고, 애틋하고, 아프고, 더없이 아름답다. 그 마음과 마음들이.
1997년 12월 단강, 인우재에서 한희철. 지금으로부터 22년전, 작은 시골 단강 마을 이야기.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농촌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찌보면 공감 할 만한 삶의 흔적이라곤 없는 나에게. 전국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그 작은 시골 마을 이야기에 온통 멍먹함과 눈물이 된 것을 두고 무엇으로 헤아려야할런지. 내 마음을 헤집어본다. 나도 사람이기에. 이유는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읽고서, 닮지도 않은 삶의 기록들을 읽으며, 눈물이 선명히 흐르고 있지 아니한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작은 농촌 마을의 농부와 목자가 함께한 눈부시도록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들.
그네들의 아픔과 상처에서 고름처럼 흐르던 눈물. 그 눈물을 두 손으로 때론 온몸으로 받은 목자. 아니 끌어안은 목자. 빗물이 눈물 되어 고이는 곳으로, 햇살이 따스하게 감싸 안는 곳으로. 농부와 함께 눈물 흘린 목자의 눈물은 낮은 곳으로 고여 농부의 고단한 삶을 적셔 준 단비가 되었고. 낮아진 목자의 시선은 햇살이 되어 농부의 삶을 구석구석, 그들 자신도 잊고 지내는 속뜰까지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그리고 시절을 훌쩍 지나와 나에게도 눈물이 되어 흐른다. 그렇게 흐르는 눈물은 단비가 되어 내 메마른 심령까지 적시고. 한국 교회의 목청 높은 목회자를 향하던 어둡던 골짜기까지 환한 햇살이 되어 따스하게 감싸 안는 것이다.
어찌하여 쓸쓸한지도 모르는 내 무딘 마음을 타고서 고운 결로 흐르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고운 결을 따라서 나에게로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이 흘러온 것이리라. 중고 서점에서 어렵사리 구한 책이라 안타까운 것은. 절판이 된 현실이다. 나와 인연이 된 이 책은 다행히 중고지만 새책이나 진배없이 띠지가 그대로 있다. 거기에 적힌 추천사를 그대로 옮겨 적어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막쪄낸 찐빵>의 작가 이만재가 말하는 예수님 냄새 풍기는 그분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새털 처럼이란 말은 기분 좋을 때 아메리컨 인디언들이 쓰는 말로 정말 새털처럼 가벼우니 몸이 금방 하늘로 둥둥 떠올라 갈 것만 같게 됩니다. 그런 분을 만나는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을 뿐만 아니라 심신이 아주 뿌듯해지는 충만감을 느낍니다. 내가 만난 한희철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 추천사 중에서
한희철 목사님은 페북의 벗님이시기도 하다. 면전에서 이런 글을 올리기란 조심스럽고, 주위를 둘러보게도 된다. 그럼에도 이렇게 독서 후기를 적으며 그 따뜻한 마음들을 잔잔히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한편 송구스럽고, 별스런 일에 놀라실세라 적잖이 마음이 콩알 만큼 작아진다.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람 냄새 그리운 이 시대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두레 밥상에 둘러 앉아 예수를 나누듯. 작고 외진 시골 단강 마을에서 흙과 농부와 목자가 나눈, 함께 아프고 함께 웃었던 그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살가운 사랑을 심령이 가난한 벗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벗님들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벗님들이나. 절에 스님들이나 농사를 지으시는 벗님들이나. 나처럼 글을 쓰는 벗님들이나 바깥에서 노동을 하시는 벗님들이나. 해외에서 한국을 더없이 그리워하고 있는 벗님들이나. 그 누구와도 따스하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진흙 속에 묻힌 보석을 발견했는데, 어찌 혼자만 숨겨 놓고 볼 수 있는가. 내가 아는 예수님은 혼자만 쟁여 놓는 그런 분이 아니다. 보석은 함께 나누는 것이기에.
나에게도 글이 주는 숙제는 언제나 삶이다. 문득 이런 마음이 든다. 삶을 세공하는 것은 눈물인지도 모른다는. 누군가를 위해서 얼만큼 삶 속에서 함께 울어 주었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은 딱 그만큼 빛이 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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