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5)
촛불은 심지만으로 탈 수 없다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촛불을 켜는 일이 더 많아졌다. 촛불은 촛불만의 미덕이 있다. 촛불을 켜면 마음이 환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백열전등과 다르고 난로와도 다르다.
밖에 다녀올 일이 있어 켜둔 촛불을 껐다. 거반 다 탄 초였는데, 그렇다고 촛불을 켜 둔 채 외출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을 보고 돌아와 다시 초에 불을 붙였다. 자기 몸을 다 태워 키가 사라진 초는 촛농으로만 남아 접시에 물 담긴 듯 촛대 안에 담겨 있었다. 그래도 한 가운데 심지가 서 있어 불을 붙였는데, 잠시 불이 붙던 심지는 하얀 연기를 내며 이내 꺼져버리고 말았다. 심지가 다 타기 전에 촛농을 받아들여 태워야 하는데, 백록담처럼 가운데가 파인 상태였기에 녹여낼 촛농이 부족했던 것이다.
촛불은 심지만으로는 탈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가 없어도 안 되지만 심지만으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촛농이 심지를 적셔야 한다. 촛불 하나를 켜는데도 그렇다면 세상의 빛이 되는 데는 얼마나 더욱 그런 것일까, 잠시 타오르다 불이 꺼진 촛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문득 아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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