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7)
가르마 타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머리를 깎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편하고 익숙한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말로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정릉에 온 뒤로 교우가 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데 때가 되어 미용실을 찾았더니, 집사님은 손을 다쳐 머리를 깎을 수가 없었고 집사님 대신에 낯선 미용사가 머리를 깎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잠시 기다리며 보니 손놀림에 막힘이 없어 보였다.
내 차례가 왔을 때 혹시라도 머리를 어색하게 깎을까 걱정이 된 아내가 한 마디 부탁을 했다. 오른쪽 이마 부분이 휑하지 않게 깎아달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미용사는 선뜻 가위를 드는 대신 이리저리 머리를 만지고 넘겨보더니 대뜸 이야기를 했다.
“가르마를 오른쪽에 내는 것이 좋겠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이어지는 동작을 보면서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왼쪽에 위치한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바꾸어보라는 것이었다. 그 때가 언제였을까,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왼쪽에 가르마를 내고 오른쪽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며 살아왔다. 원래 머리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없거니와 그렇게 시작했고 그렇게 지내온 터라 지금까지 가르마의 위치를 바꾸는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미용사가 대뜸 가르마를 오른쪽에 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렇게 권하는 미용사가 신기하게 여겨졌다.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러자 미용사는 다시 한 번 뜻밖의 말을 한다. 이제껏 자기 말을 들은 사람 중에 80퍼센트 이상은 만족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는데 정말로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내고 자르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제안을 듣고 당황했을 뿐 충분히 동의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80퍼센트에 대한 지나친 신뢰,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대한 무리한 확신, 내게는 그런 것이 왜 없을까, 예배를 드리러 나가기 전 거울 앞에서 습관처럼 머리를 오른쪽으로 넘기며 나를 돌아본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나운 짐승이 사는 곳 (4) | 2019.12.02 |
---|---|
낫게와 낮게 (4) | 2019.12.01 |
문을 여는 방법 (4) | 2019.11.29 |
촛불은 심지만으로 탈 수 없다 (4) | 2019.11.28 |
용한 재주 (4) | 2019.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