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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치명적 농담

by 한종호 2020. 1. 28.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5)

 

치명적 농담

 

서재 구석에 꽂혀 있던 책이 있었다. 읽고 싶어 구입을 하고는 책을 펼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사 후 되는대로 꽂은 책의 위치도 하필이면 책꽂이 구석이어서 더욱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이었다.


분량이 제법인 원고쓰기를 마치고 모처럼 갖는 한가한 시간, 우연히 눈에 띈 책을 발견하고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는데, 얼마쯤 읽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인 책이었는데, 어느 순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내용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단어로 연결되어 그런가 싶어 눈여겨 읽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오자 아니면 탈자일까 싶어 문맥을 살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게 뭐지 하다가 페이지를 확인했더니 이런, 페이지가 잘못되어 있었다. 16페이지 다음에 147페이지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17페이지를 찾으니 어디에 있는지를 모를 만큼 페이지는 책 안에서 서로 길을 잃고 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출판사, 11쇄인 책, 그런데도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싶었다.


책 뒷면에 있는 출판사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했더니 책을 보내주면 바꾸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몇 페이지가 잘못됐는지를 알려달라고.

 

책 앞부분에서 만난 글 중에 시인 정호승 씨 이야기가 있었다. 머리 없는 부처상이 모여 있는 곳에 아이들이 찾아와선 장난삼아 자기 머리를 부처 위에 대보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정호승 시인은 부처가 목이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부처의 목을 자른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부처가 되어보라 부처 스스로가 목을 자른 것이라고.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치명적 실수, 어쩌면 그 또한 치명적 농담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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