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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가난, 내 영혼의 떨림으로 다가온

by 한종호 2020. 2. 13.

신동숙의 글밭(79)

 

가난, 내 영혼의 떨림으로 다가온

 

빛나는 새옷을 사달라고 조르면
엄마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나보다 못 입은 사람은
엄마 없는 아이, 집 없는 노숙인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자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무소유'로 받은 첫 인세비 50만원을 봉투째 장준하 선생의 부인에게 건네시며 뒤도 안돌아보고 가시던, 돌아가시던 이 세상의 마지막 날 처음으로 길상사에서 밤을 보내신
산골 오두막의 법정 스님

 

누더기옷 성철 스님
사막의 교부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지하방에서 살아가는 나처럼 가난하지만 행복한 영혼들


고층 아파트의 부유함 속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영혼들

10억 인세비를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 하시며,
돌아가시기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가난한 책할배'로 남으신
강아지똥의 권정생 선생님

 

이 땅에 머리 둘 곳 없다 하시며, 홀로 산으로 오르시어
고독 속에서, 가난한 마음 속에 하나님을 품으신
우리들 가난한 마음 속에, 진리의 성령을 공평하게 선물로 주신
십자가 헐벗은 예수님

 

 

 

 

빈 몸에 두른 거라곤 하늘 뿐인 겨울나무들
돌아가신 후에도 어둔 가슴에 영원히 빛나는 영혼들

 

가난을 첫사랑의 씨앗처럼, 사랑으로 품고 품으며
그렇게 가난한 삶을 살다가신 아름다운 영혼들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영혼들
어둡고 가난한 내 마음에 별과 달과 태양으로 환하게 빛나는

 

가난, 내 영혼의 떨림으로 다가온
내가 사랑하는, 살아서 숨 쉬는 영혼들

 

지상과 지하, 나뭇가지와 나무 아래
그리고 마음 속 깊숙이 피고 또 피어나는 꽃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는 존엄성을 지닌
겨울과 봄날의 동백꽃처럼 아름다운 영혼들

 

하늘과 땅, 햇살과 비, 바람과 물, 산과 들
모든 생명은 자연에 기생하는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품은 첫사랑
하나님을 품은 행복한 씨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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