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135)
겹벚꽃 할머니
오일 장날에
참기름집 앞에 서 있는데
앉으신 할머니가 몸을 틀어서
내 있는 쪽으로 손만 뻗고 계신다
할머니의 손이 향한 곳을 보니까
딸기 바구니에 담긴 푸른 엉개잎
바로 지척인데
강 건너 쯤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갖다 드릴까요?" 여쭈니
할머니는 눈으로 살풋 미소만 지으신다
참기름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헤아리다가
선뜻 몸을 일으키시지도
고맙단 말도 또롯이 못하시면서
할머니는 그 몸으로 장사를 하시네
차가운 바닥에 종일 앉아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해서
해가 뜨면 몸 일으킬 일이 무거워서
나무처럼 할머니의 몸도 입도 무거워서
주름진 얼굴에 핀 수줍은 미소가 겹벚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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