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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땀방울

by 한종호 2020. 8. 21.

한희철의 얘기마을(61)


땀방울


“빨리 빨리 서둘러! 늦으면 큰일 난단 말이야!”


하루 종일 내린 비가 한밤중까지도 계속되자 숲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점점 불어난 물이 겁나게 흘러 산 아래 마을이 위태로워진 것입니다.

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에 마을이 곧 물에 잠길 것만 같습니다. 

깨어있던 나무들이 잠든 나무와 풀을 깨웠습니다.


“뿌리로부터 가지 끝까지 양껏 물을 빨아들여! 빈틈일랑 남기지 말고.”


나무마다 풀마다 몸 구석구석 물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좀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숨쉬기초차 어려울 만큼 온몸에 물을 채웠습니다.

한밤이 어렵게 갔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개울물 소리가 요란했을 뿐 마을은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아침 햇살은 거짓말처럼 찬란했습니다.

찬란한 햇살에 숲은 무리지은 반딧불처럼, 보석처럼 빛났습니다.

잎사귀 끝 영롱하게 맺힌 물방물들, 다들 빗방울이라 했지만 아닙니다.

실은 땀방울입니다.

나무와 풀이 밤새 흘린 땀방울인 것입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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