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63)
이상한 병
어떤 사람이 몸이 이상해 용한 의원을 찾았다. 이리저리 맥을 짚어 본 수염이 허연 의원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거 묘한 병이구먼, 말로만 듣던 그 병이야.”
의원의 표정과 말을 듣고 자기 병이 심상치 않음을 안 그가 다그쳐 물었다.
“무슨 병입니까?”
“한 걸음에 하루가 감해지는 병이라네.”
“무슨 약은 없습니까?”
“없네. 다만 자네 마음이 약이 될 걸세.”
의원을 만난 뒤 그의 삶은 달라졌다. 집안에 틀어박혀 꼼짝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한 걸음에 하루가 감해진다니 줄어드는 하루와 바꿀만한 걸음이 어디 쉽겠는가.
일도 다 그만두고 밥도 대소변도 방에 앉아 해결했다. 그의 몸은 점점 야위어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몸져눕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하고 싶은 것을 하자. 그는 놓았던 농사일을 다시 시작했다. 수북이 자란 풀을 뽑았고, 묵은 밭을 갈아 씨도 뿌렸다. 그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났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한 걸음의 뜻을 생각했다. 하루의 목숨과 바꿀만한 걸음 되도록 힘차게 내디뎠다.
그의 삶은 달라졌고 병도 나았다.
참으로 이상한 병이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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