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03)
끊어진 이야기
옛날, 어떤 사람이 소를 잃어버렸어요. 소가 여간 귀해요? 큰일 났다 싶어 이 동네 저 동네를 찾으러 다녔죠. 어떤 동네에 이르러 보니 저기 자기 집 소가 있더래요. 어떤 집 외양간에 매어 있는데 분명 자기 소더래요. 집주인을 만나 사정 얘기를 하고선 소를 돌려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집주인이 펄쩍 뛰더래요. 우시장에서 사왔다는 것이죠.
문제가 시끄럽게 되자 할 수 없이 관청에 알리게 되었는데, 소는 한 마리에 서로가 주인이라니 소더러 물어볼 수도 없고 난감한 일이었죠. 그런데 원님이 참 지혜로웠어요.
소에 쟁기를 매게 하고선 한 사람씩 소를 부려보라 한 거예요. 자기 외양간에 소를 매 놓은 사람이 “이랴, 이랴” 아무리 소를 부려도 소가 꿈쩍도 않더래요. 회초리로 등짝을 때려도 꿈쩍을 안 했어요. 이번에는 소를 찾으러 온 사람 차례가 되었지요. 소고삐를 편하게 잡더니 “앞으로 가시지요. 그만 서시지요. 뒤로 도시지요.” 하니 소가 신기하게도 그 말대로 하더래요. 어쩐 일이가 물으니 그의 대답인 즉, “송아지 적 일을 가르칠 때 연로하신 아버님 앞에서 고삐를 잡았습니다. 앞에 아버님이 계신데 ‘이려’ 할 수 없어서 그렇게 소를 부렸습니다.” 했다는 거예요. 그 얘길 들은 원님은 “더 볼 것도 없이 이 사람이 주인이니 당장 소를 돌려주어라.”했다는 거지요.
옛날 한 새댁이 시집을 왔는데 도대체 말이 없더래요. 처음엔 새댁이니까 그렇겠지 했는데 말을 꼭 해야 될 때가 돼도 말을 안 하는 거예요. 벙어리라고 온 동네가이 술렁거렸어요. 일이 그 지경이 됐는데도 여전히 말이 없었어요. 할 수 없이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가마에 태워 친정으로 데려다 주려고 길을 떠났어요.
가던 길에 잠깐 언덕에서 쉬게 되었는데 마침 그때 꿩이 푸드득 하고 날았대요. 아 그러자 가마 속에 있던 새댁이 “이 가슴 저 가슴 된 가슴은 시아버님 드리고요, 요 주댕이 저 주댕이 놀리는 주댕이는 시누님 드리고, 이 날개 저 날개 덮는 날개는 남편을 드리고.” 하며 탄식을 했다지요.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시아버지가 말을 할 줄 알면서도 이제껏 말을 안 한 이유를 물었죠. 그러자 며느리가 대답하기를 “예, 제가 시집올 때 친정어머니가 장롱 속에 돌멩이 하나를 넣어 주면서 ‘얘야 이 돌멩이가 말하기 전에는 말하지 말아라’ 하셨어요. 매일같이 돌멩이를 꺼내 보았지만 말이 없어서....”
훌륭한 며느리를 몰라보았다며 시아버진 발걸음을 돌렸대요.
잃어버린 소 이야기는 윗작실 박민하 할아버지(78세)께, 벙어리 새댁 이야기는 아랫작실 김천복 할머니(76세)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두고서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할 손자 손녀들은 멀리 떨어져 삽니다.
농촌의 안타까움 중 그 중 큰 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끊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지혜와 숨결이 담긴 이야기들,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습니다. 세월 속에 그냥 묻히고 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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