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얘기마을(107)
효험 있는 청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동구 밖과 집, 지집사님은 연신 동구 밖과 집을 왔다 갔다 합니다. 종종걸음으로 동구 밖으로 나와 신작로를 바라보다가 누가 부르기라도 한 듯 다시 집으로 달려가곤 합니다. 그런 집사님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부천에 나가 살고 있는 둘째 아들이 교제하는 여자와 인사드리러 온다고 전화를 한 것입니다. 집과 동구 밖을 오가는 것으로 봐선 집사님은 집 아궁이에 찌개를 올려놓은 게 분명합니다. 오랜만에 오는 아들도 아들이지만 새 며늘아기 될 아가씨에게 오는 대로 따뜻한 상을 차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저녁 해가 기울고 산 그림자를 따라 땅거미가 깔릴 때에야 기다리던 아들과 예비며느리가 왔습니다. 첫 번째로 부모님을 찾아뵙는 떨림과 부끄러움을 어두움에 가리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반갑고 고마운 집사님은 며늘아기의 손을 꼬옥 마주잡고선 아들과 함께 집으로 갔습니다. 어둠이라 해도 집사님의 자랑스러운 웃음이 크게 보였습니다.
다음날인 주일, 이른 아침 교회 마당 수돗가에 인기척이 있어 나가보니 집사님이 어제 온 며늘아기와 걸레를 빨고 있었습니다. 교회청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빙그레 웃음이 나왔습니다. 시어머니 될 분이 당신께 인사 하러 온 아가씨와 하룻밤 같이 잠을 자고 주일 이른 아침 교회 청소를 하는 그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런 청소를 하며 집사님이 갖고 있을 은근한 기대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결혼한 맏아들 때도 그랬습니다. 인사 온 며늘아기가 자청하여 교회 청소를 깨끗이 하고 함께 예배를 드렸던 것인데, 이후 모든 일이 잘 됐고 지금까지 부모님께 효를 다하며 잘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른 아침의 교회 청소가 그 몫의 적지 않은 부분을 감당했다고 생각하는 집사님은 다시 한 번 둘째 며늘아기에게도 그 효험을 기대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배시간, 집사님은 며늘아기와 나란히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어머니 될 집사님께 성경 찬송을 찾아드리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습니다. 성도의 교제 시간, 우리는 따뜻한 박수로 두 사람의 만남을 축하했고 두 사람은 환한 웃음으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씨도 잘 안 나오고 그나마 나온 건 썩고, 올 농사 유난히 안 돼 근심뿐이던 집사님도 그날 만큼은 근심 걱정 다 떨친 모습이었습니다. 그토록 걱정하며 기도했던 둘째 아들이 며늘아기와 인사하러 왔고, 며늘아기 따라 아들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니 이젠 모든 가족이 다 믿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잘 될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끊임없기도 하지만, 그 효험 있는 아침 청소도 잊지 않고 했으니까요.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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