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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새집

by 한종호 2020. 10. 9.

한희철의 얘기마을(109)


새집


새집을 하나 맡았다. 저녁 무렵 교회 뒤뜰을 거닐다 우연히 새집을 찾게 된 것이다. 들로 산으로 나다니기 좋아했던 어릴 적, 우리가 잘했던 것 중 하나는 새집을 찾는 일이었는데, 새집을 찾으면 찾았다고 하지 않고 ‘맡았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쫑긋거리며 나는 새의 날갯짓만 보고도 새집의 위치를 짐작해 낼 만큼 그런 일에 자신이 있었다.


교회 뒤뜰을 거닐 때 새 한 마리가 얼마간 거리로 날아 앉곤 했는데, 부리엔 벌레가 물려 있었다. 제 새끼에게 먹일 먹이가 틀림없었다.


난 사택 계단 쪽으로 지긋이 물러나와 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는 미심쩍은 나를 의식해서인지 여간해선 둥지로 들지 않았다. 그러기를 30여분, 나는 어릴 적 감을 되살려 마침내 새집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지난 성탄절, 성탄장식을 했던 소나무를 나무를 지탱했던 플라스틱 양동이와 함께 교회 뒤편에 놓아두었는데 새집은 바로 그 양동이 안에 있었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양동이 속은 비가  와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더 없이 좋은 장소였다.


양동이 안 둥그렇게 지어 놓은 둥지에는 아직 눈도 못 뜬 어린 새끼 세 마리가 어미가 먹이를 가져온 줄 알고 쩍쩍 입을 벌려대고 있었다.


성탄나무를 세웠던 양동이 안의 새집이라. 새는 어떻게 이곳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가장 은밀한 곳에 숨겨진 비밀 하나를 알게 된 듯 가슴이 묘하게 뛰었다.


‘잘 보살펴야지.’


어린 새 새끼를 장난감 삼아 놀기 잘하는 동네 아이들인지라 그런 수난 없이 잘 자라 둥지를 떠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씩 달라져가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빈약했던 날개 죽지에도 제법 고운 털들이 덮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들여다 본 양동이 안에 새끼 한 마리가 둥지에서 떨어져 있어 집어 드니 이미 죽어 있었다. 내 딴에는 좀 더 새를 잘 보살핀다는 마음으로 이따금씩 둥지를 살핀 것이었는데, 생각하니 이유라면 그것이 이유였을 터였다. 


어미는 들켜버린, 감시당하는 제 새끼를 불안하게 여겼을 것이고 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끼들을 옮기려다 그것이 안 되자 새끼가 죽은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비밀을 안다는 것, 돌본다는 명분으로 내밀한 아픔을 함부로 들여다본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를 죽은 새끼는 엄하게 일러주고 있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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