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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소리의 열쇠

by 한종호 2020. 10. 10.

한희철의 얘기마을(110)


소리의 열쇠


“한희철 목사님”

“강은미 사모님”

“한소리”

“한규민”


저녁 무렵, 마당에서 혼자 놀던 소리가 날이 어두워지자 집으로 들어옵니다. 문이 닫혀 있습니다. 그러자 소리는 닫힌 문을 두드리며 차례대로 식구 이름을 댑니다.


짐짓 듣고도 모른 체 합니다. 소리는 더 큰 목소리로 또박 또박 식구 이름을 다시 한 번 외쳐댑니다. 웃으며 나가 문을 열어줍니다. 소리가 히힝 웃으며 들어옵니다. 손에 얼굴에 흙이 가득합니다. 


며칠 전 문을 열어 달라 두드리는 소리에게 아내는 식구 이름을 물었습니다.


“누구니?”

“소리”

“소리가 누군데?”

“한소리요.”

“아빠가 누구지?”

“한희철 목사님”

“엄마는?”

“강은미 사모님”

“동생은?”

“한규민”


그제서야 “응 소리가 맞구나” 하며 문을 열어 주었던 것입니다. 한두 번 그런 일이 더 있자 아예 소리는 문을 열어달란 말 대신 식구 이름을 대게 되었습니다. 식구 이름을 대는 것이 소리에겐 ‘열려라 참깨’가 된 것입니다. 세 살 난 딸은 그렇게 문을 엽니다.



그런 소리의 모습을 보며 나는 기도의 의미를 생각합니다. 식구 이름을 대는 것, 그게 문 여는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만, 엄마 아빠는 그 뜻을 알고 있고 원하는 대로 문을 열어줍니다. 그건 서로의 약속이기도 하며 따뜻한 이해이기도 합니다. ‘문 열어 달라’는 직접적긴 말보다는 나란히 식구 이름을 대는 어린 딸의 재롱을 기쁨으로 받으며 기꺼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 아니 마땅히 구할 것조차 알지 못한 채 기도라는 형식을 빌어 그분께 아뢰더라도 그분은 우리 마음 헤아려 우리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속 깊은 탄식을 어찌 꼭 맞는 말로 담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서툰 우리들의 기도도 하나님은 제대로 받아 주심을 나는 믿습니다. 닫힌 문 앞에 서서 식구 이름을 나란히 외워대는 어린 딸에게서 나는 쉽지  않은 그 믿음을 배웁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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