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311)
지화자 좋은 날
160년 전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월든 숲의 오두막에서
동양의 주역을 읽던 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산골 오두막 머리맡에 둔 몇 권의 책 중에서
성 프란체스코를 읽던 날의 법정 스님
지리산 자락의 유가댁 자제인 열 다섯살 성철 스님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쌀 한 가마를 바꾸던 날
6·25 동족상잔 그 비극의 흙더미 아래에서
밤이면 책을 읽던 진실의 스승 리영희 선생님
감옥의 쪽창살로 드는 달빛을 등불 삼아
책을 읽고 종이조각에 편지를 쓰던 날의 신영복 선생님
주일 예배 설교단에서
반야심경의 공사상을 인용하는 날의 목사님
초하루 법문이 있는 대웅전에서
요한복음 3장 8절을 인용하는 큰스님
천주교 식당 벽에 붙은 공양게송 한 줄 읊으며
창문밖 성모마리아상 한 번 보고
밥 한 숟가락 먹던 날
거실에서 운동 삼아 백십배 절을 하다가
강아지 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더운 여름 갈증이 나는 날
쪼갠 수박 속이 잘 읽었을 때
추운 겨울날 노을빛 귤껍질을 벗기다가
누군가 속에 껴입힌 하얀 털옷을 본 순간
아침마다 어김없이 해가 뜨고
저녁마다 달이 차고 기울고 사라지고 또다시
올려다본 별이 사람의 눈망울처럼 총총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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