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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

"손 좀 잡아줘" 했을 때

by 한종호 2022. 2. 18.

강병규 화가의 커피 그림




길을 걷는데
멈추어 서 있는 한 사람이

인사도 없이
설명도 없이

모르는 나에게
"손 좀 잡아줘"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나도 모른 새
손을 내밀고 있다

내 손바닥을 꼭 잡으며 끙 누르길래
나도 손에 힘을 주어 하늘처럼 떠받쳤다

우리의 손과 손을 이어준 것은
한 턱의 계단이었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입을 여신다
"여어를 못 올라가가, 고마워!" 하시며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가시고
나도 순간 미소를 보인 후 

걷던 길을 
다시 걷다가

한낮의 거리에서 
오고가는 사람들 그 중에서

다리가 아픈 할머니에게 선택받은 
어딘가 모르게 편안한 한 사람이 되기까지

한순간 비춰졌을
나의 얼굴과 차림새와

나의 속마음과 
나만 아는 신념과 

혼자서 묵묵히 걸어온 
나의 인생길을 되돌아보았다

방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란
레드카펫을 걷는 일보다

그보다 더 온전하고 좋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음을 스스로 알아차리곤

나는 마음속으로
혼자서 기쁨에 겨워

거리의 햇살 한 점이 되고 
푸른 바람 한 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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