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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

모남과 눈물, 신앙의 회오리

by 한종호 2015. 6. 14.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3)

 

모남과 눈물, 신앙의 회오리

- 전집 3권 『성서 개요』 예레미야 편 -

 

 

성서 어느 인물인들 소중히 여기고 경외하지 아니한 사람이 있을까마는, 김교신은 특히나 예레미야를 좋아하고 아꼈다. 그의 소박한 서재에는 예언자 예레미야의 초상이 걸려 있었고, 김교신은 성서 묵상과 주석 연구를 하는 와중에 예레미야의 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저이만큼의 치열함과 진지함과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생각에 미치면 글을 쓰다가도 성서본문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공부하게 된단다.

 

김교신은 예레미야가 가진 ‘모순적 성격’(?)에 매료되었다. 날카롭게 각진 모서리처럼 살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없이 여리고 감성 풍부한 ‘눈물의 선지자’가 예레미야라고 평가한다. 무엇보다 예레미야는 “모나게” 산 인물이었다.

 

세상 지자의 말대로 하면 태평시대에 방(方)으로 처함은 가하나 난세에는 원(圓)으로 처신하여야만 한다고 하였다. 언행을 모나게 하지 않음은 호신술로써 자기의 지위 안전을 보전함에는 가장 현명한 책략이다. 더욱이나 예레미야의 시대와 같이 국민생활의 파탄기에 처하여는 그러하다. … 주의도 없고 신조도 없고 기골도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면서 살아가야 할 것인데, 예레미야는 모나게 살았다.

 

웬만큼 모가 난 것이 아니어서 마치 “태백산맥의 주령에 솟은 암괴처럼 울룩불룩” 두드러진 개성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표현하는데, 김교신은 알았을까? 시대도 인물의 성격도 예레미야와 김교신은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을….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대의 멸망을 지켜본 예언자이다. 생각 없이 살다가 엉겁결에 나라가 바벨론에 망하는 꼴을 본 것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살다가는 어떤 종말을 맞을 지가 너무나 뻔히 보여, “안전 무난한 맷돌 노릇 하기를” 원치 않고 ‘매 맞는 줄 알면서 두드러진 돌처럼’ 목 놓아 외쳤다. 옥에 갇혀서도 조국의 패망과 왕가가 맞을 참상을 예언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하늘로부터 오는 말씀을 “창을 열고 태양 광선을 받아들이듯이 예민한 감수성으로써 받아들였는데” 어찌 둥글게 ‘이런 들 어떠하리 저런 들 어떠하리’ 어울리며 살까!

 

여호와의 신은 모색하여 잡을 수 있는 신이 아니요, 계시로써 자기를 현현(顯現)하는 신이다. 기독교는 지(知)의 종교가 아니요 ‘의(義)의 종교’다. 그러므로 의에 대하여 가솔린이 인화하는 것처럼 폭발로써 불붙듯이 하나님의 의(義)의 화기에 소연(燒燃)되는 일이 기독교이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아직 멀쩡한 조국을 ‘망했다’ ‘다 죽었다’ ‘포로로 끌려갈 거다’ 이리 ‘맡은 말씀(예언)’을 전하다 보니 고향 사람들에게도, 제사장과 다른 선지자들에게도, 왕과 귀족들에게도 받은 멸시와 분노가 너무 무거웠다. 하여 입 다물고 더 이상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쩌랴. 수도꼭지가 잠기지 않았는데 호스 입구만 틀어막는다고 터져 나오는 물길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마음속에 마치 화연(火燃)하는 것과 같은 것이 있어 골수에 깊이 들어 있으니” 참으려 해도 참아지지가 않았다(20장 9절).

 

 

                                예레미야/미켈란젤로

 

때문에 예레미야의 신앙은 ‘청년의 것’이었다. 하나님의 의(義)를 계시로 받아 폭발하듯 타오르는 활동성의 신앙이었다. ‘늙은’ 제도와 타협하고 이익을 취하는 세상·종교 권력가들을 향해 ‘너희들의 질서가 이제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선포하는 혁명이었다. 이는 성서조선 모임을 시작한 조선 젊은이들의 무교회 정신과도 일맥상통했다. 하여 이들은 나라를 잃고 식민 상황의 난세이니 둥글둥글 무난하게 어울려 목숨을 보존하자, 그리 타협할 수 없었다. 어찌 하는 소리마다 비판적이냐는 핀잔을 들어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너희는 ‘부수는 것이 본령이냐’ 오해를 받아도 그칠 수 없었다. 지금 이 꼴로는 교회도 나라도 소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 김교신은 예레미야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소록도에서 온 나환자의 편지를 읽고 쓴 답신에서도, 제자들과 교류한 학교생활의 일상에서도 그는 툭툭 떨어지는 눈물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김교신은 체격이 크고 선이 굵은 사람이었는데, 그의 눈물을 당면한 사람들은 꽤나 당황했을 일이다. 하지만 김교신의 눈물이 예레미야의 눈물처럼 사적 감정의 발로가 아니었음을 안다면, 그의 눈물이 실은 ‘모난’ 선포와 함께 휘몰아치는 신앙의 회오리였음을 안다면 비로소 끄덕였을 거다.

 

저[예레미야]의 일평생이 한숨으로써 호흡하고 눈물로써 마시었기 때문에 ‘눈물의 예언자’라는 별호까지 가지게 되었다. … 군자는 희노애락의 정을 함부로 나타내지 않는다 할진대 저는 과연 유교적 군자가 아니었고, 영웅은 눈물겨워 하지 않는 것이 특색이라 한다면 저는 과연 동양적 영웅형은 아니었고, 남자의 눈물이란 쉽사리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할진대 저는 과연 남자가 아니라고 하여도 가하다. … 그러나 저의 눈물은 … 동포를 위하여, 여호와의 거룩한 경륜을 위하여, 우주적 비애에 못 이겨서 우는 눈물이니 이를 칭하여 고귀한 비애(noble sorrow)라고 한다. 이 비애는 모세에게도 있었고 사도 바울에게도 있었고 모든 크리스천에게도 유전하여 오는 비애이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가히 친근할 만한 형제로다.

 

“동포를 위하여, 여호와의 거룩한 경륜을 위하여, 우주적 비애에 못 이겨서 우는 눈물”, 모순 같지만 예레미야와 김교신의 ‘모남’과 ‘눈물’은 결국 하나다. 그 기원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자신을 낳은 어머니를 원망하고(15장 10절), 태어난 날을 저주할 만큼(20장 14절) 애통한 까닭은 아무리 ‘모난 돌’처럼 외쳐도 정치인들의 눈은 어두워져 날로 포악해지고 백성의 귀는 막혀 있음이었다.

 

그러고 보면 예수께서도 애끓는 울음으로 모난 선포를 했던 신앙의 회오리를 가슴 안에 품고 사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마태복음 23장 37절)하고 외치실 때에,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38절) 그리 모서리 날카로운 선포를 하실 때에 그의 창자 안에 어찌 애끓는 연민이 없었겠는가! 스플랑크니조마이(splanchnizomai), 측은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그 마음은 하나님이 흘리시는 우주적 비애였을 거다. 하나같이 귀하게 낳아놓은 생명인데, 서로 나누고 서로 세우며 주어진 생명을 모두 함께 평등하게 누리고 살면 좋으련만, 죽이고 돌로 치고 빼앗고 군림하는 세계를 만들어놓았으니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에 어찌 애끓는 슬픔이 없으실까. 눈물이 없으실까.

 

우리의 세계도 예레미야나 김교신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김교신의 표현대로 “국민생활의 파탄기”이다. 중동발 메르스가 창궐하고 꽃다운 청춘은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려 애쓰다 거짓과 현실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실정이 되었다. 이러한 때에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는 종교가 과연 가슴 안에 회오리치는 신앙을 품은 종교일까? 눈물을 흘리며 모난 외침을 외쳐야할 때이다. 기도하며 바라기는 아직 이 사회에 기회가 있기를… 애통하며 모나게 외치는 자들이 있고, 그 외침을 들을 귀가 있으며, 지금의 행악을 그치고 하나님의 통치 질서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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