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24)
단순, 용감한 신앙의 선택
- 전집 3권 『성서 개요』 다니엘 편 -
오랜만에 만나 나의 근황을 묻는 지인의 말에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답했다. 전업주부 7년 차에 기적 같이 선 강단이지만 학생들을 만나는 기쁨이 컸다고. 처음엔 욕심내지 않고 아이도 어리니 한 과목만, 그러다 두 과목이 되고, 고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는 연구교수도 되고…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게 자연스런 수순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이다. 아, 이렇게 ‘승진’해가는 거구나! 열심히 살면,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전문성을 채워나가면, 아이의 눈을 맞추고 존재의 요구에 반응하느라 잠시 멈추었던 걸음이라도 차근차근 다시 내 꿈을 이루어갈 수 있구나. 직업안정성도 더불어 성취할 수 있는 거구나.
그런데 윷에만 ‘백 도’가 있는 게 아니고 자동차에만 ‘후진 기어’가 있는 게 아니었다고. 딱히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인생에는 ‘백 도’나 ‘후진 기어’가 있더라고. 그것도 어느 날 느닷없이 불쑥 찾아오니 참 당황스럽고 아프더라고 말이다. 모처럼 유학시절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였기에 굳이 포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여 이런 이야기들을 담담히 나누었다. “그래도 좋은 건 하나 있어요. 타성에 젖을 수도 있을 나이에 갑자기 미래가 불확실해지니 마음이 참 가난해져요. 사회학자로서 머리로 분석하고 강단에서 가르쳤던 내용들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남다르고요. 무엇보다 구조적으로 ‘답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과 진심으로 공감하며 함께 고민하고 ‘다른’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인지 강단에서도 성경공부에서도 내 경험에서 우러나와 하는 말들에 아이들이 많이 위로받고 용기를 얻는 것 같아요.”
“루저들의 멘토로 등극했군요.” 제도권에 안착한 이의 무심한 말에 아주 짧게 내 속사람이 흔들렸다. ‘저 대목에서 어떻게 저런 반응이 나올 수 있지?’ 그런데 금세 마음이 중심을 잡아주었다. 모처럼 화기애애한 자리의 분위기를 망칠 생각이 없기도 했거니와, 덕분에 깨달음이 커서 오히려 고마웠다. ‘까짓 거, 하지 뭐~ 루저들의 멘토!’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그냥 사람 좋게 웃어 넘겼다. ‘하자’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멘토가 아니요, 누군가가 나의 발걸음을 귀하다 여기며 지켜보고 용기를 얻고 따라오기도 한다면 그야말로 감사한 일 아니겠나! 그런데 정작 자리에 함께 있었던 선배 한 분은 많이 속상하셨나 보다. 소위 한국의 ‘조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덕목’을 가져야하는지를 애정을 담아 설명해주셨다. 재주 있는 사람이라고 보아주신 것은 고마웠으나, 선배가 말하는 ‘덕목’은 내 마음이나 신앙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 뒤에 이 글을 읽어서인가? 오늘따라 김교신의 다니엘서 묵상이 머리보다 가슴에 와 닿는다. 열 서너 살에 나라를 잃고 대제국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소년들이 ‘왕의 식사’를 거절하는 대목을 풀며 김교신은 이렇게 말했다.
환관장에게 출원할 때에 “10일간 시험하여 채소를 먹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반찬을 먹은 소년들의 얼굴과 비교하여 보고 종들에게 처분하옵소서” 하여 극히 온순하게 청하였다. 속에 부동하는 확신을 품은 자의 언행은 항상 표면이 이렇게 부드럽다.
“속에 부동하는 확신을 품은 자의 언행은 항상 표면이 이렇게 부드럽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다니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포로생활 중이었음에도 다른 이스라엘 젊은이들에 비해 남다른 기회를 얻은 이들이었다. “흠 없고 아름답고 제재(諸才)에 통달하며 학문에 우수하며 지식을 구비하여 가히 왕궁에 시중할 만한 소년들로 뽑혀 간” 인재들이었다. 힘으로 약소민족들의 땅과 재물을 취하고 몸뚱이를 불린 ‘제국’ 바빌론의 심장부에서, 왕이 베푸는 풍성한 식탁에 앉는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어린 소년인들 어찌 몰랐을까? 그러나 음식에 대한 규례에 있어 훈련이 엄격했던 그들로서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인 셈이었다. 물론 말이 양자택일이지 그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Daniel refuse kingsfood" by O.A. Stemler, Wikimedia Commons.>
나는 이 소년들이 일찌감치 ‘옳은 답’에 있어서는 고민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김교신도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탄복했던 지점은 김교신이 표현했던 것처럼, 소년들이 자신들의 의사결정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부드럽고 공손하게 청했다. “열흘 간 시험하여 보소서.” 왕 앞에 서는 소년들에게 베풀어지는 기름지고 풍성한 ‘왕의 식사’는 무엇을 목적으로 했겠는가? 윤기 나고 건강한 모습으로 왕을 보필하게 함일진대, 이스라엘의 식사 예법대로 먹고도 만족할 만한 얼굴과 총기어린 상태이면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겠냐는 제안이었다.
이 소년들이 기적을 믿었거나 바랐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다만 늘 그랬듯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대로’ 일상을 살아내려고 했을 뿐이라 믿는다. 그리 살아도 건강하고 그리 살아도 빛났으며 그리 살아도 그 삶이 충만했었기에 갖게 된 확신이었을 거다. 임마누엘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감이었을 거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생명이 촌각에 놓인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금(金)우상을 예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써 고발을 당하고 처형을 받을 때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의 시련 받는 태도에 참 신자의 규범을 볼 것이다. 저들은 여호와 유일신을 믿는 믿음을 고백하기에 침착스럽고도 용감하였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것이 없나이다. 만일 그렇게 하시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맹렬히 타는 야중(冶中)에서 능히 구출하시고 우리를 또 왕의 손에서 구출하시리이다. 그렇게 아니하여도 왕은 우리가 또한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세운 금우상에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것이 노기(怒氣)와 연야(燃冶)의 형틀로써 위의(威儀)를 돋우고 발악하는 정복자 앞에 섰는 피정복자의 답변이었다.
김교신은 이 소년들이 “구출의 기적”을 장담하였기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 소년들은 그저 “용감하고 단순”했다. 상황이 어찌 변해도, 그저 나는 옳다고 믿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일에 용감하고 단순하려 하니, 복잡하게 생각하고 따지고 도모하고 교섭하고 모략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다니엘과 친구들의 경우는 물론 이들의 ‘단순, 용감’한 선택에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으로 응답하셨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선택이 달라질 까닭은 없다. “구출의 기적”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니 심기 불편하고 마음 복잡할 이유가 없을 일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영의정이나 국무총리와도 같은 자리에 오른 다니엘이 직위는 물론 목숨까지도 위험한 일임에도, 인간-왕의 형상에는 굽히지 않으면서 하나님께는 하루 세 번 몸을 굽혀 기도를 올리는 신앙의 행위를 계속했던 것도, 그저 “신앙의 자연노출”이었다.
쓸모가 없으면 버려지고, 고분고분하지 않아도 버려지며, 때론 그냥 이유 없이도 버려지는 반(反)생명적인 세상 한 가운데서, 그 의기양양한 ‘정복자들’의 위세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신앙인으로서, 아니 한 인간으로서 ‘정복당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키며 사람다울 수 있을까? 옥중에서 이 질문을 묻다 답을 얻고 담담하게, 당당하게 형장으로 걸어갔던 본회퍼의 글이 문득 떠오르는 날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쓸모가 있을까? 장래에는 천재도 아니고 냉소가도 아니고 인간경멸가도 아니고 교활한 책사도 아닌, 소박하고 단순하고 정직한 인간이 필요할 것이다.(《옥중서간》 (1995), 30쪽)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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