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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4

폭력 혹은 무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3) 폭력 혹은 무례 정릉에 와서 당황스러웠던 것이 있다. 설교를 하고 나면 설교 영상이 곧바로 페이스북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먼젓번 교회에서도 설교를 홈페이지에 올려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오랫동안 거절하다가 음성만을 올리는 것을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자마자 SNS에 오르다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게 관례였다니 받아들이기는 받아들였지만 불편한 마음은 적지 않았다. 우선은 조금씩 조정을 했다. 주일1,2부 설교 모두를 올리던 것을 하나만 올리기로 하고, 안 하던 페이스북에도 가입을 했다. 혹 누군가의 반응이나 의견이 있다면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겠다 싶었다. 그것은 일시적인 방편, 아예 홈페이지를 바꾸기로 했다. 운영비를 줄이느라 교회 홈페이지를 페이스북과 연.. 2019. 5. 13.
말씀의 과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2) 말씀의 과잉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었으니 오래 전의 일인 셈이다. 해마다 전교인수련회를 가졌는데, 한 해는 수련회를 준비하며 엉뚱한 제안을 했다. 특강을 할 강사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기독교인을 아닌 이를 강사로 정하자고 했다. 밖에서 본 교회, 밖에서 생각하는 기독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유익하지 않을까 싶었다. 오히려 그것이 정직한 거울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준비위원들이 동의를 했고, 우리는 그야말로 엉뚱한 강사를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프랑크푸르트 한인회장을 하고 있는 이였는데, 이야기를 듣고는 몹시 당황스러워했지만 얼마든지 편하게 평소의 생각을 이야기해 달라는 청을 마침내는 받아들였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 지금껏 남아 있는 이.. 2019. 5. 11.
붓끝에서 핀 꽃송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1) 붓끝에서 핀 꽃송이 지나는 길에 잠깐 인우재에 들렀을 때, 소리가 찾아낸 것이 있었다. 네잎클로버였다. 누가 아빠의 딸 아니랄까 그랬는지, 소리도 네잎클로버를 잘 찾았다. 네잎클로버는 책갈피에 넣어두지 않으면 금방 시들고 만다. 책을 찾기 위해 서재 방문을 열었다. 무슨 책을 꺼낼까 망설일 때,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였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좋겠다 싶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긴 책이다. 유담(劉惔)이 강관(江灌)을 평했다. "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잘 한다." 달변이나 능변의 재주는 없지만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그것을 눈여겨 바라보는 사람이나 모두 경지에 든 사람이다 싶다. 를 두고 ‘촌.. 2019. 5. 11.
뿔 솟은 모세?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19) 뿔 솟은 모세? 로마에 있는 일명 쇠사슬교회라 불리는 산 피에트르 인빈콜리 성당 안에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모세상이 있다. 의자에 걸터앉아 고개를 들고 왼쪽 위를 쳐다보는 모습이다. 힘줄이 튀어나온 팔과 다리의 근육, 긴 수염에 곱슬머리. 그런데 머리에 뿔 두 개가 솟아 잇는 것이 처음 보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것이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다. 조각가가 모세의 머리에 뿔을 조각해 넣은 것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역의 출애굽기 34장 29절을 읽었기 때문이라고들 설명한다. 우리말 번역의 , 과 은 모세가 증거판 돌을 가지고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났다”(개역),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났다”(개역개정), “얼굴의 .. 2019. 5. 9.
나는 누구일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0) 나는 누구일까? 큰 딸 소리가 다시 독일로 돌아갈 날이 가까이 오면서 함께 연극을 보기로 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지 싶다. 정릉에서 대학로는 버스 한 번만 타면 되는 가까운 거리,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내와 소리가 정한 연극이 , 나는 처음 듣는 제목이었다. 요즘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했던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좌석이 매진이었고, 좌석을 따로 지정하지를 않아 줄을 선 순서대로 입장을 해야 했다. 무대는 한 눈에 보기에도 단순했다. 평범한 의자들이 가장자리에 놓여 있었고, 공사장에서 쓰는 듯한 둥근 쇠파이프가 울타리처럼 둘러쳐 있었다. 설치된 무대만 봐서는 연극이 무척 단조롭거나 지루할 것처럼 여겨졌다. 연극의 상황은 단순했고 .. 2019. 5. 9.
5월의 능선에서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5월의 능선에서 우리에게 5월은 유난히 격동의 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하필 5월인가 싶은 질문을 굳이 던져본다면, 더 이상 미룰 수 없고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그런 계절의 지점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이 때를 그냥 보내면 여름이 다가오고, 그러다보면 무언가 계기를 잡아내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5월은 그런 점에서 어떤 고비를 힘겹게 넘어서는 경계선에 있는 듯 하다. 이런 느낌은 달리 말하자면, 초조감과 통한다. 이후의 시간은 너무나 쏜살같이 흘러서 그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연말의 지점에 자신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건 당혹스러운 일이다. 마땅한 결실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그렇게 되어버린다면 또다시 새롭게 오는 일년에 기대를 걸 수밖에.. 2019. 5. 9.
씨앗과 같은 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30) 씨앗과 같은 말 마음에 떨어져 씨앗처럼 남은 말들이 있다. 동네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느꼈으면 싶어 논농사를 시작하던 해, 논에 물이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를 병철 씨에게 물었을 때였다.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농사꾼은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돼요.” 마을 사람들이 거반 다 나와 강가 너른 밭에서 일하던 날이었다. 아예 솥을 가지고 나와 강둑에서 밥을 짓는 김영옥 집사님께 일일이 짐을 다 옮겨야 했으니 고생이 많았겠다고 인사를 했을 때, 예전에는 물이 맑아 강물을 길어 밥을 지었는데 이젠 어림도 없게 되었다며 툭 한 마디를 했다. “다 씨어(씻어) 먹어두, 물은 못 씨어 먹는 법인데유.”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된다는, 어떤 것이든 물로 씻으면 되지만 물이 더러워지.. 2019. 5. 8.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데 왜 잔이 넘칠까?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머리에 기름을 바르는 데 왜 잔이 넘칠까? 독자적인 몇 개의 낱말들이 서로 모여 구(句 phrase)나 절(節 clause)을 형성할 때 각 개별 단어의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결합된 낱말들이 만들어내는 전혀 새로운 뜻을 우리는 숙어(熟語) 혹은 관용구(慣用句)라고 한다. 이러한 특수 표현의 형성은 언어마다 다르다. 같은 언어라고 하더라도 시대마다 다를 수도 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뜻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관용적 표현이 축자(逐字) 번역이 될 때에는 그 의미를 옮기지는 못한다. 한 언어의 관용적 표현에 대한 의미론적 연구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사고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하기도 한다. 히브리어 특유의 표현들은 번역된 성서 중에서 직역의 경.. 2019. 5. 8.
그냥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129) 그냥 후둑후둑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오래된 흙집 흙벽 떨어지듯 견고하다 싶었던 마음이 허물어질 때가 있다. 태연하던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어디에도 뿌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미동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손을 휘저어도 무엇 하나 잡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어떤 것도 마음에 닿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일도, 음악도, 책도, 커피도, 세상 풍경도, 전해지는 이야기도,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뒷걸음을 친다. 한 순간 내가 낯설고 세상이 낯설다. 모래알 구르듯 시간이 지나가고, 어둠이 깊도록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침내 향방이 사라진다. 그럴 때면 발버둥을 치지 않는다. 고함을 지르지도, 안간힘을 쓰지도 않는다. 미끄러지.. 2019.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