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6 햇살이 앉으면 신동숙의 글밭(11) 햇살이 앉으면 흐르는 냇물에 내려앉은 노을빛이 연한 가슴을 흔들어 놓습니다. 물에 비친 모습 중에서 빛그림자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또 있을까요. 흐르는 물에 햇살이 앉으면 하얀 별빛이 보이고. 서로를 비추어 더 아름다운, 대낮에도 볼 수 있는 별빛이 되고. 그 모습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저절로 터지는 감동은 그대로 자연 앞에 선 채로 드리는 숙연한 기도의 시간이 됩니다. 햇살이 앉으면 ... 흐르는 강물에 햇살이 앉으면 환한 대낮에도 하얀 별빛이 보여요 밤하늘 숨은 별들 여기 다 있네요 흐르는 내 마음에도 햇살이 앉으면 그리운 얼굴 보일까요 2019. 11. 27. 그리움이 일거든 신동숙의 글밭(10) 그리움이 일거든 그리움이 일거든 바람따라 떠나가지 마오 제 자리에 머물게 하여주오 한 그루 나무가 되게 하여주오 앙상한 가슴에 새순이 돋아나 잎새마다 그리움으로 살을 찌우는 낮동안 푸른 하늘빛 그리움이 무르익어서 저녁 노을빛이 되었습니다 그리움이 일거든 구름따라 떠나가지 마오 뿌리를 내리게 하여주오 한그루 나무가 되게 하여주오 메마른 가슴에 단비가 내린 후 뜨거운 태양빛에 영글어 가는 까만밤 하얀 별빛 그리움이 무르익어서 새벽 아침해가 떠오릅니다 2019. 11. 26. 가을비와 쑥병차와 쓰레기 신동숙의 글밭(9) 가을비와 쑥병차와 쓰레기 온종일 비가 내립니다. 강변에 단풍잎은 아직 자기의 때가 남았다는데, 그 마음 아는지 조곤조곤 달래듯 어르듯 가을비는 순하게 내립니다. 축축한 땅. 가벼운 바람결에도 속절없이 날리던 낙엽이 몰아쉬던 숨을 비로소 고요히 내려놓습니다. 이런 날씨에는 몸도 가라앉아서 내 마음 빗물에 젖은 한 잎 낙엽이 됩니다. 가슴이 시려 오는 것도 이제는 왠지 견딜 만하답니다. 창밖으로 바라본 하늘엔 회색 구름이 무겁습니다. 검도를 마치고 차에 탄 아들이 잠시 편의점에 들렀다 가자며 조릅니다. 복잡한 골목, 편의점 입구에 잠시 정차를 하고 카드만 주면서 꼭 필요한 것만 사오너라 했더니. 까만 비닐봉지에서 나온 것은, 옥수수 통조림, 모짜렐라 치즈, 컵라면, 초코과자, 버터맛 팝콘.. 2019. 11. 26. 열매가 품은 씨앗 신동숙의 글밭(8) 열매가 품은 씨앗 오늘 받은 기쁨만으로 잠들지 않게 하소서 세상 어느 한 구석 내가 알지 못하는 소외된 슬픔 하나 별처럼 떠올리며 기쁨의 열매 한가운데 슬픔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서 평온히 잠에 들게 하소서 오늘 받은 슬픔만으로 잠들지 않게 하소서 내 안에 어느 한 구석 보물을 찾듯이 행복했던 추억 하나 별처럼 떠올리며 슬픔의 열매 한가운데 기쁨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서 평온히 잠에 들게 하소서 2019. 11. 25. 주신 소망 한 알 신동숙의 글밭(7) 주신 소망 한 알 ... "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아구탕 맛있는 집 있는데, 아구탕 괜찮으세요?", "예!". 전화기 너머 아름다운 울림 소리로 청하는 따뜻한 초대에 어찌 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시노래 가수 박경하 선생님이십니다. 시와 노래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한 마음이면서 두 개의 몸이 된. 끈끈한 끈으로 엮인 사이. 시는 노래를 그리워하고, 노래는 시를 그리워하는 서로가 서로에겐 그리움입니다. 만나면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전하고 싶었답니다. 예쁘게 포장된 빵을 사갖고 갈까, 예쁜 악세사리를 사갖고 갈까. 아직은 취향을 잘 몰라서 선뜻 결정을 못하고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답니다. 약속한 날은 다가오는데, 그러다가 문득 당연하다는 듯 순간 든 생각이 있답니다. 시집. .. 2019. 11. 25. 나의 노래는 신동숙의 글밭(6) 나의 노래는 나의 노래는 큰 예배당에서 웅장하게 울려 퍼지기보다는 두레 밥상에 여럿이 둘러 앉아 예수를 나누는 작고 가난한 교회에서 불려졌으면 나의 노래는 눈 먼 보석보다 산바람이 살갗을 깨우는 푸른 언덕 위 소박한 옷을 걸친 눈동자가 맑은 다윗의 고독한 입을 사랑합니다. 나의 노래는 하늘을 찌르는 첩탑의 소리보다 풀잎에 앉은 이슬처럼 잔잔히 함께 부르는 낮고 따뜻한 그 음성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낮고 작은 집에 계셨기에 예수님은 낮고 가난한 내 마음 속에 계시기에 2019. 11. 24. 기다리는 만남 신동숙의 글밭(5) 기다리는 만남 ... 걸레로 방바닥을 닦으시던 친정 엄마가 주말에는 이모님댁에 다녀오마 하십니다. 이모가 계신 진주 단성까지는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고도 족히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주무시지 않고 당일날 돌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방문하신 얘기를 꺼내십니다. "두 노인네가 내가 왔다고 평소에는 틀지도 않는 기름 보일러를 때는데, 내가 마음이 미안해서 똑 죽겠고", 이번에는 주무시지 않고 그냥 오시겠다며 선언을 하십니다. 친정 엄마도 올해 74세를 맞이 하셨으니, 하루 동안에 오고 가는 버스를 여섯 시간이나 넘게 타신다는 것은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는 녹록치 않은 여정입니다. 게다가 아침마다 당뇨약도 드시니까요. 토요일 오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 2019. 11. 24. 떡볶이와 보혈 신동숙의 글밭(4) 떡볶이와 보혈 ... "엄마, 떡볶이 시켜주세요!", 폰 너머로 딸아이의 목소리가 간절합니다. 저녁답 영어 학원 하나만 든 날에는 6시면 일찍 집으로 오는 날. 이런 날은 된장국, 김치찌게가 한 달에 두세 번 꼴로 떡볶이로부터 밀려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에 떡볶이는 주로 아이들의 군겆질거리였답니다. 물오뎅, 꽈베기 도너츠, 군만두, 오징어와 고구마 튀김과 떡볶이. 간식 정도로 허기를 달래주던 떡볶이를 먹던 우리 세대가 성인이 되면서 떡볶이도 함께 성장한 것을 보게 됩니다. 매콤하고 얼큰한 각종 전골 요리에 쫀득한 떡볶이 떡은 빠질 수 없죠. 허름한 분식점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입가에 고추장을 묻혀 가며 오뎅 국물로 혀를 달래면서 먹던 간식. 어느 레스토랑에선 갖은 야채와.. 2019. 11. 23. 꽃자리 신동숙의 글밭(3) 꽃자리 거의 대부분의 사진이 제가 살고 있는 집과 작은 마당, 집 앞 강변의 풍경들입니다. 글감도 주로 일상의 소소하고 흔한 모습을 담다보니 사진도 그에 어울리는 소박하고 때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습들이 대부분입니다. 신기하고 감사한 건, 손톱보다 작은 풀꽃, 땅을 구르던 낙엽 한 장도 사진으로 담아 놓고 보면은 이렇게 예뻤던가 싶어 새로운 눈을 뜨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답니다. 눈 여겨 보는 일. 아무리 작고 하찮은 대상도 마음을 기울이고 눈 여겨 보아주면 아름다운 순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사진을 통해서도 보게 됩니다. 며칠전에 벗님들의 포스팅을 읽던 중, 유난히 제 눈길을 끄는 사진이 한 장 있었습니다. 적힌 이름을 보니 분홍 동백꽃. 복사꽃보다는 연하고 매화꽃보다는.. 2019. 11. 22. 이전 1 ··· 53 54 55 56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