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6 아침 서리를 녹여줄 햇살 한줄기 신동숙의 글밭(28) 아침 서리를 녹여줄 햇살 한줄기 겨울이 되고 아침마다 서리가 하얗게 차를 뒤덮고 있는 풍경을 본다. 딸아이의 등교 시간을 맞추려면 바로 시동을 걸고서 출발을 해야 하는 시각. 시동을 걸면 2~3초 후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그 시간의 공백 만큼 자동차는 밤새 속까지 싸늘하게 차가웠다는 신호겠다. 우선 와이퍼 속도를 최대치로 올리고 워셔액을 계속 뿌려 가면서 앞유리창에 낀 얼음을 우선 급한대로 녹이기로 한다. 뒷유리창과 옆유리창까지는 어떻게 해 볼 여유는 없다. 차를 출발 시킨 후 골목을 돌아 나오는 동안에도 좌우로 와이퍼의 힘찬 율동과 워셔액 분사는 계속된다. 아침 기온이 그런대로 영상에 가까운 날씨엔 뚝뚝 살얼음이 떨어져 나가듯 그대로 물이 되어 녹아서 흐르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 2019. 12. 10. 서점 점원이 되는 꿈 신동숙의 글밭(27) 서점 점원이 되는 꿈 소망이 하나 생겼다. 서점 점원이 되는 꿈. 머리가 복잡한 주인이나 서점의 건물주가 아닌 그냥 점원이다. 새책이 들어오면 제자리에 꽂아 놓고, 서점 안을 두루 정리도 하고, 손님이 원하는 책이 있으면 찾아 드리고,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하는 손님이 계시면, 미안해 하지 않도록 말없이 곁에서 기다려 주는 그런 마음 따뜻한 점원. 물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설명해 드릴 수 있는 친절한 점원. 그리고 주어진 여건에 따라서 그 사람만을 위한 책을 추천해 줄 수도 있는 능력 있는 점원. 이쯤 되면 서점 점원은 거의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몸이 아닌 마음에 대한 처방이 될 수도 있기에.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은 종종 매스컴에서 들어온 .. 2019. 12. 9. 먼 별 신동숙의 글밭(26)/시밥 한 그릇 먼 별 눈을 감으면 어둡고 멀리 있습니다 아스라히 멀고 멀어서 없는 듯 계십니다 내 마음에 한 점 별빛으로 오신 님 바람에 지워질세라 내 눈이 어두워 묻힐세라 눈 한 번 편히 감지 못하는 밤입니다 먼 별을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그 별 아래 서성이며 머뭇거리기만 할 뿐 얼마나 더 아파야 닿을 수 있는지요 얼마나 더 깊어져야 그 마음에 들 수 있는지요 내 마음에 빛으로 오신 예수여 가까이 보라시는 듯 제 발아래 두신 작은 풀꽃들 하지만 마음이 가난한 저에겐 작은 풀꽃 또한 그리운 먼 별입니다 2019. 12. 8.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신동숙의 글밭(25) 찻잔으로 사색의 원을 그리며 예쁜 찻잔을 보면, 순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먼저 마음으로 가만히 비추어 봅니다. 찻잔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사색의 원을 천천히 그려보는 것입니다. 나 하나가 가짐으로 인해 지구 한 켠 누구 하나는 못 가질세라. 희귀하거나 특별한 재료보다는 주위에 흔한 흙이나 나무 등 자연물로 만든 찻잔인가. 나 혼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에 오는 손님이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내놓을 수 있는 평등한 찻잔인가. 간혹 놀러온 어린 아이에게도 건넬 수 있는, 설령 깨어진대도 아까워하거나 괘념치 않을 마음을 낼 수 있는가. 만약에 깨어진대도,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가 후손에게 쓰레기를 남기지 않을 자연물의 찻잔인.. 2019. 12. 7.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신동숙의 글밭(24)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식구들이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우자고 했을 때 결사 반대를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에게 강아지는 오롯이 꼼짝 못하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날 집에 오니 아들이 드디어 자기한테도 동생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눈까지 반짝인다. 성은 김 씨고 이름도 지었단다. 김복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 품 안에 쏙 안기는 강아지를 아들과 딸은 틈나는 대로 안아 주고, 밥도 챙기고, 똥도 치우고, 주말이면 강변길로 오솔길로 떠나는 산책이 즐거운 가족 소풍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서너 달이 못갔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지는 복순이. 일년이 채 안되어 복순이의 덩치는 아들만큼 커진 것이다. 똥도 엄청나다. 한 학년씩 .. 2019. 12. 6. 풀씨 한 알 신동숙의 글밭(23)/시밥 한 그릇 풀씨 한 알 발길에 폴폴 날리우는 작고 여린 풀씨 한 알 풀섶에 이는 잔바람에도 홀로 좋아서 춤을 추는 하늘 더불어 춤을 추는 작고 여린 풀씨 한 알 낮고 낮은 곳으로 내려갈 줄만 알아 그 어디든 발길 닿는 곳 제 살아갈 한 평생 집인 줄을 알아 작고 둥근 머리를 누이며 평온히 눈을 감는다 땅 속으로 사색의 뿌리를 내리며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작은 생명들의 소리 들으려 가만히 귀를 대고 가난한 마음이 더듬으며 사람들 무심히 오가는 발길 아래로 고요히 기도의 뿌리를 내린다 발아래 피어날 푸르른 풀잎 그 맑고 푸르른 노랫 소리 들으려 겨울밤 홀로 깊어지는 풀씨 한 알 (2019.1.9. 詩作) 2019. 12. 5.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신동숙의 글밭(22)/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자연에 가까이, 마음에 가까이 하루를 보낸 후 내 방으로 들어옵니다. 가만히 돌아보고 둘러보는 시간. 정리되지 않은 일들, 사람과의 관계들이 때론 무심한 들풀처럼 그려집니다. 참지 못한 순간, 넉넉치 못한 마음, 후회스러운 마음은 하루의 그림자입니다. 무심한 들풀 사이에도 소소한 즐거움이 들꽃처럼 환하게 미소를 띄기도 하고요. 이런 저런 순간들이 모여 색색깔 조각보의 모자이크처럼 하루를 채우고 있답니다. 낮 동안에도 잠시 잠깐 틈나는 대로 차 안이나 어디서든 홀로 적적한 시간을 갖지만, 밤이 드리우는 고요함에 비할 수는 없답니다. 우선 천장의 조명을 끕니다. 그래도 간간히 책을 읽고, 글도 쓰려면 책상 위 작은 스텐드 조명은 켜둡니다. 종지만한 유리 찻잔 안.. 2019. 12. 4. 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신동숙의 글밭(21)/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순환하는 하느님과 동행하는 자유로운 영혼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자연 곳곳에서 보이는 모든 움직임은 순환하는 하느님의 모습이다. 펄럭이는 돛, 흐르는 시내, 흔들리는 나무, 표류하는 바람, 이런 것들에서 우리는 건강과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세우신 나무 그늘에서 건강하게 뛰놀고 장난치는 것만큼 더 품위 있고 신성한 건강과 자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죄에 대한 의심 따위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인간이 이를 알고 있었더라면 대리석이나 다이아몬드로 성전 따위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고, 성전 건축은 신성 모독 중의 신성 모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낙원을 영원히 잃지 않았을 것이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로우의 일기] ,.. 2019. 12. 3. 물길 신동숙의 글밭(20)/시밥 한 그릇 물길 내게 햇살의 은혜만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마음 사막이 되지 아니 하도록 흐르게 하소서 밤이슬 더불어 눈물 흐르게 하소서 새벽이슬 더불어 눈물 흐르게 하소서 그리하여 내 안에 기도의 샘물이 물길을 내어 작고 여린 생명가로 흘러들 수 있도록 흐르게 하소서 눈물웃음꽃 피우게 하소서 햇살웃음꽃 피우게 하소서 2019. 12. 2. 이전 1 ··· 51 52 53 54 55 56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