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82 한 순례자의 시선 이번에 출간한 《말씀 등불 밝히고》는 김기석 목사의 487편의 구약설교와 625편의 신약설교 중에서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책별로 66편의 설교를 편집한 책이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김기석 목사의 글은 언제나 잔잔하면서도 풍요롭다. 그건 참 묘한 경험이다. 침착함 속에 넘치는 열정과 그저 무심한 듯 지나치는 것 같으면서도 깊숙이 응시하는 성찰의 힘을 느끼게 된다. 대단한 독서가로 알려진 그의 글에는 그의 독서 편련이 묻어나고, 그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사와 현실에 대한 생각의 무늬들이 그대로 손에 만져진다. 천 백여 편의 설교를 살피면서 편집한 이 책은 예수를 믿는 그의 삶과 성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수행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행집이라고 하면, 얼핏 뭔가 어려운 고담준론(高談峻論).. 2023. 5. 5. 무엇이 생명을 살리는가? 사진/뉴스1 그 아이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려고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이 강가를 거닐고 있을 때에, 공주가 갈대 숲속에 있는 상자를 보고, 시녀 한 명을 보내서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열어 보니 거기에 남자아이가 울고 있었다. 공주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면서 말하였다. “이 아이는 틀림없이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구나”. 그때에 그 아이의 누이가 나서서 바로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히브리 여인 가운데서 아기에게 젖을 먹일 유모를 데려다 드릴까요?” 바로의 딸이 대답하였다. “그래, 어서 데려오너라.” 그 소녀가 가서, 그 아이의 어머니를 불러왔다.(출애굽기 2:4-8) 사태는 매우 엄중했다.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 아이는 발.. 2022. 11. 23. 환멸의 강을 사랑으로 넘을 때 “주님, 죄송합니다. 제발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시기 바랍니다.”(출애굽기 4:13) 이 대목은 호렙산 떨기불꽃 앞에 선 모세가 하나님의 파견명령에 대하여 거듭거듭 따를 수 없음을 밝히는 장면이다. 그는 자신이 여러 가지로 능력이 없어서 맡기신 일을 수행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 소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진정 그의 능력 부족에 대한 겸허함 때문일까? 그는 애굽으로 돌아가서도 그렇고, 이후 광야에서도 백성들의 불평과 반란, 그리고 배신을 수없이 겪게 된다. 이것은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아니었다.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낼 것을 요구하여 도리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역이 심해지면서 그 비난의 화살이 모두 모세에게로 집중되자, 모세는 하나님께 “아니, 이럴 것을 뻔히 .. 2022. 9. 3. 영생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그러나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마가복음 10:31)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겸허함을 강조한 말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대목은 우선 부자 청년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그는 가진 것으로 보나, 교육수준으로 보나 또는 가정환경이나 그 개인의 성품과 자세로 보나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인격으로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영생에 대한 길을 묻는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의외이다. 왜냐하면 그만한 정도면 누가 보아도 영생의 조건을 이미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과의 문답과정에서 우리는 이 부자 청년이 율법의 정도(正道)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로 연소한 청년이 존경할 만한 믿음과 인품.. 2022. 8. 6. 독기를 품은 혀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잠언 12:18) 말의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인가? 그렇다면 어떤 의사도 다 소통되면 말의 역할은 다 한 것인가? 악한 의사를 소통해도 말은 중립적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 성서는 말의 역할을 의사소통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생명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하여, 그것이 인간의 생명에 상처를 내는가, 아니면 앓던 병도 낫게 하는 능력인가로 판별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로 인간의 생명에 상처를 내고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뿐인가? 잘 나아가던 상처도 덧나게 함으로써 병통을 더욱 도지게 하고 만다. 그래서 신앙은 이 말의 훈련을 제일 중요한.. 2022. 7. 23. 우리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자들일까?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마태복음 5:11) 나사렛 예수의 산상수훈은 복을 받는 자의 모습에 일대 역설을 기한다. 그가 말한 복 있는 자는 사실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모두 지지리도 복이 없는 현실을 안고 사는 자들이다. 가난하고 슬퍼하며 자기 권리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만 같은 온유한 자와, 의에 목마르고 박해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한다. 부유하고 기쁘며, 세상 이치에 밝아 자신을 확실하게 내세우고, 박해받을 이유가 없는 자들이 거론되고 있지 않다. 그러면 세상을 거꾸로 살아야 복이 있다는 말인데, 그렇게 얻게 될 복이 도대체 무엇일까? 더군다나 마태복음 5장 11절의 모욕, 박해, 그리고 비난은 누가 받고 싶어하는 일.. 2022. 7. 8. “뭐 별 일 있겠어?” 바람과 비를 한껏 품은 장마와 무더위를 동반한 날씨가 오락가락한다. 그 사이 강렬한 햇빛이 작렬하여 바다에는 섬 사이에 해무와 윤슬을 만들어 낸다. 하루 사이에도 사뭇 다른 느낌이다.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를 간빙기라고 한다. 이 시기에 지구환경은 격변을 겪게 된다. 지구 전체에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처절한 과정을 거쳤고 인류는 보다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여정을 밟아나갔다. 태양계가 급격하게 팽창하거나 위축되는 우주적 주름살이 만들어지는 이 거대한 충격의 시간은 지구촌의 지층과 기후를 결정하는 때였고, 이로써 인류는 자연에만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문명을 발명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인류는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2022. 6. 27. 악한 자들의 융성 그러나 주인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그것과 함께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거둘 때가 될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내버려 두어라. 거둘 때에, 내가 일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뽑아 단으로 묶어서 불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라고 하겠다.”(마태복음 13:29-30) 종들은 야단이 났다. 주인이 분명 좋은 씨를 밭에 뿌렸는데, 어찌 된 셈인지 가라지가 생기고 만 것이다. 이것은 당장에 주인으로부터 추궁당할 일이었다. 보통의 경우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종들은 주인에게 보고하기 전에 자신들이 재빨리 가라지를 뽑아 버리고 그 책임을 면하고자 수를 쓰기 쉽다. 그러나 비유에 등장하는 이 주인은 그런 주인이 아니었다. 자신은 분명 옳게 투자했고 제대로 경영했는데 과정에서.. 2022. 6. 21. 그 자리가 바로 복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과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시편 1:3) 시편 1편은 세상 대세에 기울지 말고, 혹여 그 길이 다수가 선망하는 듯하지 않다 해도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사는 자가 결국 복된 자라는 고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리어 이 망하고 말 자들이 세상에서 융성하는 듯한 모습에 혹해 거기에 끼지 못해 안달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줄 저줄에 붙어 주변에서 출세하는 듯할 때,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분위기에 휩쓸려 마음이 흔들리고, 세상의 풍향을 재어 자신의 위치를 마련하고자 기를 쓰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작은 인연이라도 이용하여 새로.. 2022. 5. 30. 이전 1 2 3 4 5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