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의 '너른마당'82 ‘얄팍한 수’를 쓰면 “히브리 사람 가운데 더러는 요단 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지역으로 달아났다. 사울은 그대로 길갈에 남아 있었고, 그를 따르는 군인들은 모두 떨고 있었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대로 이레 동안 사무엘을 기다렸으나 그는 길갈로 오지 않았다. 그러자 백성은 사울에게서 떠나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사울은 사람들을 시켜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한 다음에 자신이 직접 번제를 올렸다. 사울이 막 번제를 올리고 나자, 사무엘이 도착하였다. 사울이 나가 그를 맞으며 인사를 드리니”(사무엘상 13:7-10). 사울의 통치가 40여 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전의 쓰라림을 겪게 된다. 승승장구하고 용맹했던 그와 그의 군대가 오합지졸과 같은 모습으로 산산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사무엘상 13장은 기.. 2022. 5. 23. 마음이 낮은 자에게서 나오는 힘 “겸손한 사람과 어울려 마음을 낮추는 것이, 거만한 사람과 어울려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낫다.”(잠언 16:19) 나라의 수장이라는 이가 취임사에서 ‘반지성주의’를 몰아내야 한단다. 35회에 걸쳐 ‘자유’ 운운한다. 세상 도처에는 이렇듯 오만불손하고 안하무인에다가 강한 힘을 과시하는 자로 인해 고역을 치르는 이들이 숱하다. 강자들이 전리품을 얻는다는 것은 이들이 겪는 고난과 상처를 전제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강자 편에 붙어서 약자들을 짓밟아 강탈해낸 전리품의 찌꺼기라도 얻으려 든다. 마음이 겸손한 이들의 자리에 서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 낮은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누리려는 자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을 말함이다. 거만하게 압박하는 자의 줄에 서지 않음을 뜻한다. 상처를 내고도 아무렇지도.. 2022. 5. 11. 예언의 소리 “백성이 상처를 입어 앓고 있을 때에, 그들은 ‘괜찮다! 괜찮다!’ 하고 말하지만 괜찮기는 어디가 괜찮으냐?” (예레미야 8:11) 예레미야는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속이고 사는 것에 대하여 분노했다. 시대가 깊은 병에 걸려서 앓고 있었으며 그로써 백성들이 상처 때문에 그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이들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은 딴소리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까짓 것 가지고 뭘 그러냐? 아무 것도 아니다. 조금만 참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라면서 거짓 희망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모순과 죄의 근원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들은 이러한 백성들의 맹목(盲目)과 조작된 우매함 위에서 챙길 것은 온통 다 챙기는 그런 죄악을 저질렀다고 고발하고 있다. 그 시대의 병폐와,.. 2022. 4. 26. 인생의 갈증, 그 해갈은 어디에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지만 며칠 못가서 어긋나곤 한다. 지난 해를 보내면서 세월의 흐름만큼 우리 자신이 성장했는지 묻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시간의 파편을 주워 모아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가늠하게 마련인가 보다. 그런데, 인생을 살면서 ‘신앙’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삶을 목표로 삼아야 되는가” 등등 간단치 않은 주제들과의 씨름을 보다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단 한마디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라고 설득하면 그로써 우리의 고뇌는 더 이상 의문의 여지없는 상태로 안정되는 것일.. 2022. 1. 6. 순복음교회 성령운동의 빛과 그림자 한국 기독교사에서 성령 이해의 매우 중요한 분수령은 1970년대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성령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개인과 교회의 전격적인 변화에 대한 증언이 존재해왔으나,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파장을 이루면서 한국인들의 신앙에 위력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성령운동이었다. 그리고 비기독교 대중들도 ‘성령’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가 이루어진 시점이라고 하겠다. 애초에는 보수교단에 의한 이단 시비로 신학적 제동이 걸렸지만, 죄의식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교인들을 주눅 들게 했던 기존 교단의 엄격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영적 해방감을 신앙인들에게 맛보게 함으로써 성령운동의 파급은 막기 어려운 속도와 강도로 .. 2021. 9. 18. 복음과 성공주의 이데올로기 “그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것이다.”(욥 8:7)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막 9:23)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 4:13) 이 세 구절은 70년대 중반이후 지금까지 한국교회(특히, 순복음교회) 성장과정에서 가장 많이 쓰인 성서의 대목이라고 할 만 하다. 이 말씀을 듣고 주저앉았던 사람들이 일어서서 재기의 의욕을 불태운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는 이러한 의욕의 무진장한 공급처였으며 그로써 한국사회의 발전을 보다 힘 있게 지원하는 근거지가 되었다. 7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가 겪은 가난과 열등감과 목표상실의 현실에서 풍요와 자신감과 성공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슬로건처럼 이 세 구절은 신앙인들에게 용기.. 2021. 9. 15. ‘영혼의 수척함’에 대하여 폭증하는 코로나에 다시 반복되는 장마와 같은 날씨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계절의 변화를 그 누구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어느 누구도 태양을 바닷속으로 집어넣었다가 산 위로 꺼내 올릴 수 없다. 하늘의 별들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다시 나오게 할 방법도 없다. 세상은 한없이 변하는 것 같지만 인간이 사는 본질은 그리 크게 다르지 않는 것같다. 요즘, 모름지기 자기 의에 사로잡혀 기준이 언제나 자기위주에 빠지는 일을 경계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착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삶이 담고 있는 이런 저런 사연들을 헤아려주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진실 되게 만날 능력이 없다고나 할까. 늘 자기 입장만 내세운다. 자신의 입장이.. 2021. 8. 18. 신앙이라는 것 신앙이라는 것 인생을 살면서 ‘신앙’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만나게 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되는 여러 가지 근본적인 질문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해서 “어떤 삶을 목표로 삼아야 되는가” 등등 간단치 않은 주제들과의 씨름을 보다 용이하게 해주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단 한마디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라고 설득하면 그로써 우리의 고뇌는 더 이상의 의문의 여지없는 상태로 안정되는 일까?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의 생활과 분리되어 따로 종교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또는 사사로운 문제와는 관련이 없이 보다 심오하고 본질적인 차원의 문제들하고만 상대.. 2021. 1. 4.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리영희 선생의 -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 오늘은 엄혹한 시절, 불의가 판을 치고 거짓이 난무할 때 그러한 권력에 맞서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10주기이다. 한 시대를 사상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영광이 무수한 고초와 핍박 그리고 고난이 전제된 것이라면 아무나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그 격동의 시기에, 진실에 대한 깊은 갈구를 해온 세대에게 마치 샘물처럼 솟아오른 존재였다.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는 냉전 의식으로 눈이 가려진 시대를 뚫고 진실의 정체를 보여준 위력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2020. 12. 5. 이전 1 2 3 4 5 6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