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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고무신 어릴 적 많이 신었던 신은 고무신이었다. 고무신도 두 종류였는데, 그중 많이 신었던 건 검정고무신이었다. 시커멓게 생긴 건 영 볼품이 없었지만 질기긴 엄청 질겼다. 쉽게 닳거나 찢어지지 않아 한번 사면 싫도록 신어야 했다. 땀이 나면 잘 벗겨져 뜀박질을 할 땐 벗어 손에 들고 뛰기야 했고, 잘못 차면 공보다도 더 높이 솟아오르기도 했던 고무신, 고무신은 수륙양용이었다. 사실 고무신은 땅보다도 물에서 더 편했다. 젖는 걸 걱정할 필요 없이 언제라도 물에 들어갈 수 있었고, 때론 잡은 고기를 담아두는 그릇 용도로도 쓸 수 있었다. 싫도록 신었던 고무신. 검정 고무신을 신을 때에는 흰 고무신이 부러웠다. 하얀 빛깔은 얼마나 깨끗했으며 그에 비해 검정 고무신은 얼마나 누추해 보였는지. 때가 지나 흰 고무신을 신.. 2021. 12. 3.
끌개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른다. 소를 끌고, 아스팔트 위를 왔다 갔다 한다. 소등엔 멍에가 얹혔고, 멍에엔 커다란 돌멩이가 얹힌 나무토막이 연결되어 있다. ‘끌개’를 끌며 소가 일을 배우는 중이다. 등 뒤 벅찬 무게를 견디며 소는 묵묵히 걸어간다. 일소가 되기 위해선 배워야 할 게 많다. 곧 돌아올 일철을 앞두고 열심히 일을 배운다. 일소가 되기 위해 등 뒤의 무게를 견디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소, 등짝이 까지도록 끌개를 끄는 소를 보는 마음이 숙연하다. 주어진 밭을 갈기 위해 끌어야 할 끌개가 내게도 있다. 쉽지 않은 무게를 견디며 많은 시간 끌개를 끌어야 한다.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제 멋대로 소가 뛰는 건 제대로 일을 배우지 않은 탓이다. 쉽게 마치려 하고 쉽게 벗으려 하는 내 끌개를 몇 날 며칠 .. 2021. 12. 1.
“됐니?” 초등학교 시절, 난 줄곧 반장 일을 보았다. 반장 일이란 게 특별나지 않아서 조회, 종례시간 선생님께 인사하고, 선생님이 자리를 잠깐 비울 일 있으면 자습을 시킨다든지, 책을 읽힌다든지 그런 일이었다. 반장 일을 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환경정리를 할 때였다. 방과 후에 몇 명이 남아 교실의 환경정리를 했던 것인데, 대부분은 선생님을 도와 드리는 일이었다. 액자를 새로 달 때나 글씨를 써서 붙일 때는 으레 키가 크신 선생님이 그 일을 맡았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됐니?” 하며 액자나 글씨가 똑바로 됐는지를 물었다. 난 그게 어려웠다. “됐어요.” 소리가 선뜻 나오질 않았다. 확연히 삐뚤어진 거야 “좀 더 위로요, 좀 더 아래로요.” 할 수 있었지만 얼추 비슷하게 맞았을 때는 뭐라 대답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2021. 11. 30.
기쁜 소식 보지 않아도 안다. 이때쯤 도시의 모습이 어떠할지를. 어느 때보다 더욱 눈부시게 번쩍일 것이고, 신나는 캐럴은 인파만큼이나 거리마다 가득할 것이다. 예쁜 포장의 선물들이 사람들 손에 들려 있을 것이다. 빈들, 환영(幻影)처럼 서 있는 짚가리들. 무심한 참새 떼가 무심히 날고, 번번이 아니면서도 번번이 울어 혹시나 기대를 갖게 하는 뒷동산 까치들. 일 년 농사 마치고 모처럼 쉬는 소들. 일 때문에 모른 척, 아닌 척했던 병약함을 소일거리 삼아 맞는 사람들. 그렇게 겨울잠에 든 듯 조용한 마을. 2.000년 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도 그러했던 거라면 이 계절, 오늘 이 땅에 전해질 기쁜 소식은 무엇인지. 그런 게 있기나 한 것인지. - 1989년 2021. 11. 29.
눌은밥 전기밥솥을 사용하는 요즘이야 맛보기가 힘들어졌지만 불을 때 밥을 짓던 어릴 적엔 밥솥 밑에 눌어붙은 누룽지 맛이 일품이었다. 누룽지는 좋은 간식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마시는 시원한 숭늉맛과 함께 누룽지에 물을 부어 만든 눌은밥의 구수한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으로 남아있다. 난 특별히 눌은밥을 좋아했다. 눌은밥을 좋아한다는 걸 은근히 강조했고, 식구들도 인정할 만큼 난 눌은밥을 즐겨 먹었다. 뭘 먹어 키가 크냐고 누가 물으며 눌은밥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눌은밥을 좋하했던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땐 단순히 눌은밥이 좋아 그러는 줄 알았지만 지금 와 생각하니 눌은밥을 좋아했던 건,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 어릴 적엔 분명 먹거리가 넉넉지 못했다. 한껏 배불리 먹는 것에 대한 미련이 늘 남.. 2021. 11. 28.
소나무 껍질 어릴 적 동네 뒤편엔 작은 동산이 있고, 그 동산엔 제법 굵기도 하고 키도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어린 소나무들과 함께 서 있었다. 심심할 때면 우리는 뒷동산에 올라 나무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굵은 가지에 끈을 매달아 그네를 타기도 한다. 두툼한 소나무 껍질을 떼어 낸 후 배 모양으로 깎아 꽁무니 쪽에 송진을 바르면 송진은 이내 무지갯빛으로 퍼지며 배를 앞으로 밀어냈다. 지금도 기억하는 건 언젠가 할머니가 꺾어준 소나무 껍질이다. 할머니는 소나무 가지를 꺾어 조심스레 껍질을 벗겨낸 후 껍질 속의 또 한 껍질을 건네주었다. 먹어보라는 것이었다. 입안으로 확 퍼졌던 송진 냄새, 소나무 껍질을 벗겨 주며 할머니는 당신이 한 평생 겪어온 보릿고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난리가 났을 땐 그것도 없어 못 먹었다.. 2021. 11. 27.
끝나지 않은 생의 글씨 찾기 어릴 적 했던 놀이중 하나는 글씨 찾기였다. 술래가 딴 데를 보고 있는 사이 땅바닥에 글씨를 새겼다. 땅을 판판하게 고른 후 막대기를 가지고 글씨를 새겼는데, 글씨를 새긴 후에는 다시 새긴 글씨를 덮어 발로 꾹꾹 밟아 글씨를 지웠다. 그리고 나면 술래가 나서 새긴 글씨를 찾는 놀이였다. 조심조심 손으로 흙을 쓸다보면 조금씩 새긴 글자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렇게 새긴 글씨를 맞춰내면 술래가 바뀌곤 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나면 이내 땅거미가 찾아들고, 그리고 나면 하늘엔 하나 둘 별이 돋기 시작한다. 먼저 불 밝힌 별이 옆 자리 별에게 불 건네주는 듯. 하나 둘 별빛이 번져간다. -난 꺼졌어. 다시 한 번 줘. 교회 계단에 앉아 별빛 번져가는 초저녁 하늘을 바라보다 어릴 적 글씨 찾기 놀이를 생각한다.. 2021. 11. 26.
다시 하는 시작 목요성서 모임에 참석하는 한 자매가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 하여 위문차 병원을 찾았다. 2층 맨 끝 방,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을 깨우지 않으려 잠시 기도하고 그냥 나오려는데, 침대 책상에 놓인 책과 원고지가 눈길을 끌었다. 얼마나 급한 것이기에 병원에 와서도 원고지일까 바라보니 원고지엔 성경 말씀이 적혀 있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시편 1편 말씀이었다. 또박또박 쓴 글씨, 마치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아이가 처음으로 글자 공부한 듯 반듯반듯한 글씨였다. 마음에 새긴 조각인 듯 글씨가 그랬다. 성경말씀이 끝난 맨 아랫줄에는 한 줄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순종과 인내를 가르치소서." 그렇다. 그는 다시 시.. 2021. 11. 21.
기다림뿐인 할머니의 전화 “글쎄, 이번 달엔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왔어유. 쓴 적두 별루 읍는데.” 속회예배를 마쳤을 때 윤연섭 할머니가 전화요금 걱정을 했습니다. 조그마한 오두막집에 홀로 살고 계신 할머니가 전화를 놓은 건 재작년 일입니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를 위해 자식들이 돈을 모아 전화를 놓아 드렸던 것입니다. 눈이 어두운 어머니를 위해 전화기의 반이 숫자판으로 되어 있는 전화기를 골라 샀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 할머니는 드물긴 하지만 전화 걸 일 생기면 ‘건넌말 애덜 불러다 숫자 눌러 달라’ 하던지, ‘애덜 읍슬 땐 전에 그랬듯 딴 집 가 돈 주고 걸든지’ 그렇게 지내오고 계셨던 것입니다. 거의 수신전용 전화기가 되어 버린 셈입니다. 그런데 요금이 많이 나왔다니 얼마나 나왔을까 궁금하여 여쭙자 “삼천 원이 넘게.. 2021.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