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머리에 얹은 손 한해가 바뀌는 시간, 어둠속 촛불 하나씩 밝히고 예배당에 앉았습니다. 경건한 마음들. 늘 그만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시간일터이면서도 해 바뀜의 시간은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더듬더듬, 기도도 빈말을 삼가게 됩니다. 돌이켜 보는 한해가 회한으로 차올라 눈물로 흐르고, 마주하는 한해가 마음을 여미게 합니다. 머리 숙인 교우들 머리 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곤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인 양, 시간 위에 손 얹은 양, 손도 마음도 떨립니다. 전에 없던 일, 스스로에게도 낯선 일 그 일이 그 순간 절실했던 건 내 자신 때문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도 받고 싶은, 문득 그런 마음이 온통 나를 눌렀습니다. 낮게 엎드려, 가장 가난한 마음 되어 단 한 번의 손길을 온통 축복으로 받고 싶은 배.. 2021. 12. 31. 상희의 아픔은 펄펄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상희 아버지는 한참 어둠이 내린 버스정류장을 늦도록 서성였다. 안산으로 취직을 나간 고등학교 졸업반인 딸 상희가, 신정휴가를 맞아 고향에 오겠다고 뒷집을 통해 연락을 해 왔던 것이다. 피붙이 하나 없는 객지에 어린 것이 나가 얼마나 고생이 됐을까. 먹을 것 제대로 먹기나 했는지, 딸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제법 붐빈 막차에도 상희는 내리지 않았다. 막차 지나 한참까지 기다렸지만 상희는 오지 않았다. 밤늦게 다시 걸려온 전화, 야근 나간 상희였다. 상희 아버진 된 술로 한해를 보내고, 상희의 아픔은 펄펄 흰 눈으로 내리고. - 1991년 2021. 12. 31. 떨리는 전화 반갑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전화가 있다. 단강에서 이사 나간 최일용 성도님과 신동희 집사님의 전화다. 최일용 성도님은 아직 배움의 길에 있는 두 형제를 데리고 부론으로 나갔다가 다시 문막으로 이사를 갔다. 막내 갑수가 고등학교 기숙사로 떠나 이젠 백수와 둘이서 지낸다. 문막 농공단지 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신동희 집사님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병관이와 둘이서 살다가 지난해 만종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집사님은 청주 근교로 멀리 떠났다. 단칸방을 얻어 살며 어느 회사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전화했어요,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무슨 용건이 있는 전화는 아니다. 그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하는 전화인 것이다. 뽑아도 뽑아도 밟아도 밟아도 돋아나오는 .. 2021. 12. 30. 따뜻한 기억 성탄절 이른 아침 승학이 할아버지가 찾아오셨습니다. “오늘이 성탄절 맞제?” 그러면서 무언가를 손에 쥐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만 원짜리 지폐였습니다. “얘들 과자락두 사줘.” 할아버지는 이내 걸음을 돌렸습니다. 고마운 손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마다 그랬습니다. 당신은 교회에 나오지 않지만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그렇게 정성어린 손길을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넉넉지 못한 용돈을 아꼈다 전하시는 지폐도 지폐였지만, 해마다 어김없는 따뜻한 기억이 더욱더욱 고마웠습니다. - 1991년 2021. 12. 25. 별빛도 총총한 은총의 첫 새벽!, 새벽송 꿈결인 듯싶게 노래 소리가 들렸다. 자다 말고 한참을 생각했다. 꿈인가? 생시라면 누굴까? 분명 새벽 송은 안 돌기로 했는데 누구란 말인가. 한 곡이 끝나자 또 다음 곡,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문을 열었을 때 문 앞엔 빙 둘러선 젊은이들, 잠이 확 달아났다.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머쓱한 표정을 짓는 내게 커다랗게 인사를 건넸다. 만종교회 학생들이었다. 새벽송을 돌만한 사람이 없어 올해부턴 못 돌겠다는 아쉬운 소리를 귀담아 들었던 친구 최 목사가, 먼 새벽길을 달려왔던 것이다. 그제야 보니 친구는 방앗간 앞에 차를 세워두고 있었다. 그렇게 듣는 성탄의 새벽노래는 그야말로 은총이었다. 첫 새벽 알렸던 천사들의 노래. 별빛도 총총한 은총의 첫 새벽! - 1991년 2021. 12. 24. 단강을 찾은 산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로 돌아 게시판에 머리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욀 때 모두들 열심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술래 쪽으로 나아갔다. 느리기도 하고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는 술래의 술수에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잡혀 나가기도 한다. 그러기를 십 수 번, 술래 앞까지 무사히 나간 이가 술래가 ‘무궁화- ’를 하고 있는 동안 그동안 잡아들인 사람들의 손을 내리쳐 끊으면 모두가 “와-!”하며 집으로 도망을 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꽃을 따러 왔단다, 왔단다.” “무슨 꽃을 따겠니, 따겠니?” 두 패로 나누어 기다랗다 손을 잡곤 파도 밀려갔다 밀려오듯, 춤을 추둣 어울린다. 따지듯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러나 발그레한 모두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조용하고 작은.. 2021. 12. 22. 촛불 같은 우리가 아랫작실 광철씨 네서 속회예배를 드리기로 한 날, 비가 내렸습니다. 봄비 치곤 차기도 하고 빗발도 굵은 비가 스산한 바람과 함께 진종일을 내렸습니다. 어둠이 내리도록 비는 그치질 않았습니다. 작실마을 교우들이 김천복 할머니네로 모였습니다. 마을 첫째집인 할머니 네서 모여 광철씨 네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얘기 저 얘기 하던 중 다들 모여 길을 나섰는데 보니 아무고 손전등을 가져온 이가 없었습니다. 비 내리는 밤이라 한치 앞이 어둠이고 저만치 올려다 보이는 광철 씨네 희미한 불빛까진 온통 어둠에 가렸는데 불이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들 난감해 하고 있을 때 얼른 김천복 할머니가 집으로 들어가더니 양초에 불을 붙여 왔습니다. 촛불을 켜들고 길을 나섭니다. 한걸음씩 촛불로 어둠을 지우며 좁다란 밭둑을 걸어갑.. 2021. 12. 21. 성탄장식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 작은 종이에 크레용으로 써서 제단에 붙였던 글을 성탄 트리를 장식한 지난주까지 계속 붙여놨었다. 아이들과 같이 성탄장식을 끝내곤 트리에 불을 넣은 후 뒤로 물러나 바라보는데 그 글귀가 새롭게 들어왔다. 추수감사절 때나 맞았지 싶었던 그 글귀가 반짝이는 장식과 어울려 성탄의 의미로도 귀하게 여겨졌다. 후배 덕균의 수고로 여기 저기 별이 뜨고, 동방박사가 지나고, “하늘엔 영광, 땅엔 평화“란 커다랗고 멋있는 글자가 제단 가득하지만, 언젠가 성탄엔 게으름을 통해 만난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를 성탄장식으로 써 봐야지, 게으름을 변명하며 마음에 담아둔다. - 1989년 2021. 12. 19. 작고 하찮을수록 소중한 이야기들 장에 다녀오는 길, 단강으로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듣게 된 이웃마을 한 아주머니의 얘기를 이필로 속장님이 했습니다. 기름 한 종지 더 얻자고 개치(부론)까지 갔다가 결국은 한 종지만 얻게 됐다는 얘기에 우린 한참 웃었습니다. 다시 이어진 얘기에 다시 한 번 웃음이 터졌습니다. 아주머니 옆 자리에서 아주머니 얘길 듣던 한 중년 남자가 그 얘길 듣더니만 “아 그거 참 재미난 얘기네요. 아주머니, 그 얘기 차근차근 다시 한 번 해 보세요.“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얘길 글로 쓰면 좋은 글감 될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웃음이 다시 터졌던 건 그 중년 남자 얘길 하던 속장님이 “우리 목사님 같은 분이 또 있드라구요, 글쎄.” 하고 얘길 마쳤기 때문이었습니다. 헛간에 걸어놓은 못쓰게 된 살림살이들처럼 아무짝에도 .. 2021. 12. 19. 이전 1 2 3 4 5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