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2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9) 일요일에만 살아계신 하나님 “그들이 나무를 향(向)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向)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 등을 내게로 향(向)하고 그 얼굴은 내게로 향(向)치 아니하다가 환난(患難)을 당(當)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救援)하소서 하리라”(예레미야 2:2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늘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해바라기가 종일 얼굴을 돌려가며 해를 바라보듯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도 모르게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야말로 오매불망하게 된다. ‘오매불망寤寐不忘’이 ‘잠 깰 오’(寤)에 ‘잠 잘 매’(寐), ‘아닐 불’(不)에 ‘잊을 망’(忘)이 합해진 것이니, 말 그대로 자나 깨나 잊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2015. 5. 6. 씻을 수 없는 죄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8) 씻을 수 없는 죄 "주(主)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수다(數多)한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罪惡)이 오히려 내 앞에 그저 있으리니"(예레미야 2:22).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찬송가의 가사다. 부흥회나 기도회에서 그 중 즐겨 부르는 찬송으로 대개는 뜨겁게 박수를 치며 큰 목소리로 찬송을 부른다. 그렇게 간절하게 부르면 찬송가의 가사처럼 마치 우리의 죄가 씻어지는 것처럼. 이 찬송을 부를 때 우리가 갖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아프게 인정하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 나의 죄를 씻기 위해 내 대신 누군가가 당한 고통과 수치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죄를 저질렀더라도 죄.. 2015. 4. 14. 새파랗게 질려버려라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7) 새파랗게 질려버려라 “그러므로 내가 여전(如前)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後孫)과도 다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깃딤 섬들에 건너가 보며 게달에도 사람을 보내어 이 같은 일의 유무(有無)를 자세(仔細)히 살펴보라 어느 나라가 그 신(神)을 신(神)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百姓)은 그 영광(榮光)을 무익(無益)한 것과 바꾸었도다 너 하늘아 이 일을 인(因)하여 놀랄지어다 심(甚)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 백성(百姓)이 두 가지 악(惡)을 행(行)하였나니 곧 생수(生水)의 근원(根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貯蓄)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예레미야 2:9-13). 류연복 판화.. 2015. 4. 1. 안쓰러운 하나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6) 안쓰러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臨)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 거민(居民)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少年) 때의 우의(友誼)와 네 결혼(結婚)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曠野)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爲)하여 기억(記憶)하노라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聖物) 곧 나의 소산(所産) 중(中)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者)면 다 벌(罰)을 받아 재앙(災殃)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2:1-3). 떠나간 사람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오래 전 일이기도 하고 적잖은 아픔과 상처를 남긴 사람이기도 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떠난 사람을 변함없이 그리워.. 2015. 3. 18. 네가 무엇을 보느냐?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臨)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對答)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예레미야 1:11-12). 예레미야를 부르신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물으신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 하지 않는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관심의 방향과 내용일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 물으신 것은 네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를 물으신 것.. 2015. 3. 2. 약점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 약점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예레미야 1:9) 어디 그게 불쑥 튀어나온 가벼운 변명이었을까? 예레미야의 속 깊은 고뇌였을 것이다. 뼛속이 떨리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구별하였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했던 것은. 나는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나를 쓰시겠다고 하신다. 나는 대답도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내가 생겨나기 전부터 나를 택하셨다고 하신다. 갑자기 뒤집히는 시간, 존재의 어지럼증, 이해와 .. 2015. 2. 13.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主)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예레미야 1:6).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예레미야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슬픕니다”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슬프다니!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예언자가 보인 반응이라 하기에는 어이없어 보인다.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믿음이 적고 약해 보인다. 위대한 주님의 종이라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할렐루야!” 하며 두 손을 들든지, “영광입니다!” 하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사막 동굴에서 기도하는 한 수도자를 사탄이 찾아왔다. 빛의 천사를 가장하고서. 사탄은 수도자에게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내서 온 빛의 천사입니다”라고.. 2015. 1. 29. 우리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생각 한희철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2) 우리를 뛰어 넘는 하나님의 생각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臨)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腹中)에 짓기 전(前)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胎)에서 나오기 전(前)에 너를 구별(區別)하였고 너를 열방(列邦)의 선지자(先知者)로 세웠노라 하시기로”(예레미야 1:4-5). 예레미야를 부르시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오래 전부터 알았다고.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을 알게 된 뒤부터 시작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때부터 시작이 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그의 어머니 태중에 생기기도 전부터 아셨다. 말을 할 줄 알고, 생각을 할 줄 알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 2015. 1. 14. 예레미야 읽기를 시작하며 한희철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1) 예레미야 읽기를 시작하며 언젠가 주보 표지에 ‘예레미야를 만나면’이라는 글을 실은 적이 있다. 그럴 수 있다면 언제고 예레미야를 만나 실컷 울리라 여전히 젖어 있는 그의 두 눈을 보면 왈칵 눈물이 솟으리라 당신께는 주님의 말씀 백성들에겐 귀찮고 하찮은 말 그 사이에 서서 울먹울먹 하던 다시는 주님 말씀 전하지 않으리라 다짐할 때마다 뼛속을 따라 심장이 타들어가던 당신의 뒷모습엔 늘 눈물이 어렸노라고 겨울밤 인우재에서 듣던 낙숫물처럼 어둠 속 떨구던 당신의 눈물 소리 쟁쟁했노라고 애써 적은 주님의 말씀 서걱서걱 왕의 칼에 베어질 때 내 마음도 베였노라고 마침내 당신 웅덩이에 던져졌을 때 나도 갇혔고 구스 사람 에벳멜렉이 달아 내린 헝겊쪼가리와 낡은 옷에 이.. 2015. 1. 1. 이전 1 ··· 5 6 7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