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502 길 원주에서 단강으로 오는 길은 두 개가 있습니다. 문막 부론을 지나서 오는 길과 귀래를 거쳐서 오는 것이 그것입니다. 단강이 거의 가운데쯤 되니까 시작이 다를 뿐 모두가 한 바퀴를 도는 셈입니다. 부론으로 오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부론부터 단강까진 남한강을 끼고 길이 있어 경치도 좋습니다.그러나 귀래 쪽으로 오는 길은 아직 비포장입니다. 굽이굽이 먼지 나는 길을 덜컹이며 달려야 됩니다. 똑같이 온 손님이라도 부론 쪽으로 온 사람과 귀래 쪽으로 온 사람의 단강에 대한 이미지는 다릅니다. 부론 쪽 포장길로 온 사람은 ‘그래도 야 좋다‘ 그런 식이지만, 귀래 쪽으로 온 사람은 이곳 단강을 땅끝마을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부터 귀래에서 단강까지의 길이 포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여.. 2021. 6. 17. 언제 가르치셨을까, 여기 저기 바쁘실 하나님이 언제 만드셨을까. 아가의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별빛 모아 담으셨나, 무엇으로 두 눈 저리 반짝이게 하셨을까. 까만 눈동자 주위엔 푸른 은하수. 언제 저리도 정갈히 심으셨나, 눈 다치지 않게 속눈썹을. 어디를 어떻게 다르게 하여 엄마 아빨 닮게 하셨을까. 어디를 조금씩 다르게 하여 다른 아이와 다르게 하셨을까. 물집 잡힌 듯 살굿빛 뽀얀 입술. 하품할 때 입안으로 보이는 여린 실핏줄. 손가락 열, 발가락 열. 그리곤 손톱도, 우렁이 뚜껑 닮은 발톱도 열. 열 번도 더 헤아려 크기와 수 틀리지 않게 하시고. 언제 가르치셨을까. 엄마 젖 먹는 것과 배고플 때 우는 것. 쉬하고 응가 하는 것. 하품과 웃음. 밤에 오래 잠자는 것. 혼자 있기보단 같이 있기 좋아하는 것. 찬찬히 엄마 얼굴 익히는 것. 햇빛에 나.. 2021. 6. 14. 조용한 마을 단강, 참 조용한 마을입니다. 아침 일찍 어른들이 일터로 나가면 쟁기 메고 소 몰고 일터로 나가면 서너 명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고 어슬렁어슬렁 짖지 않는 개들이 빈 집을 지키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지나는 경운기 소리가 가끔씩 들리고 방아 찔 때 들리는 방앗간 기계소리 들리는 건 그런 소리뿐입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시끄러운 마을이 되고 말았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어 군용 지프차가 지나기도 하고 덩치 큰 트럭과 탱크와 장갑차가 지나가기도 합니다. 아이들이야 구경거리 생겨 신기하고 좋지만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닙니다. 휙휙 달리며 피워대는 먼지야 그렇다 해도 농사지을 밭에 들어가 푹푹한 흙을 딱딱하게 만드는 건 딱 질색입니다. 또 한 가지 나쁜 건 잠든 우리 아기 깨우는 겁니다. 꼬리에 꼬리 물.. 2021. 6. 12. 첫 돌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같은 한해가 같은 길이로 갔지만 지난 1년은 유독 길기도 하고 순간순간 선연하기도 하다. 3월 25일은 단강교회가 세워진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무모하게도 창립예배 드리던 날 어딘지도 모르는 것에 첫 발을 디딘 이곳 단강. 감리사님 차를 타고 단강으로 향하여 어딘가 땅 끝으로 가고 있지 싶었던 생각. 굽이굽이 먼 길을 돌때마다 거기 나타난 작은 마을들, 여길까 싶으면 또다시 들판 하나를 돌고. 그러기를 몇 차례, 막상 도착한 마을은 떠나며 가졌던 나름대로의 생각이 그래도 쉬운 것이었음을 한눈에 말해주고 있었다. 어딘들 어떠랴 했던 마음속 막연한 낭만기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생존의 현장이구나’ 아마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춘설이 섞인 찬바람이 어지러이 몰아쳤던 그날, 예배실로.. 2021. 6. 11. 꼬리잡기 며칠 동안은 저녁마다 꼬리잡기를 했습니다.교회 앞마당, 나는 도망가고 아이들은 나를 잡는 겁니다. 승호 종순이 승혜 종숙이 아직 어린 그들의 손을 피하기는 쉽지만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간 종설이는 만만치가 않습니다.뜀도 잘 뛰지만 웬만한 속임 동작에도 속아주질 않습니다. 키 큰 전도사가 어린 꼬마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겅중겅중 뛰는 모습은 누가 봐도 우스운 일일 겁니다. 잡힐 듯 도망가는 전도사를 아이들은 숨이 차도록 쫒아 다닙니다. 모두의 얼굴엔 이내 땀이 뱁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예배당 계단에 앉아 지는 해를 봅니다. 다시 또 하자 조르는 아이들을 달래 집으로 보냅니다.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줍니다. “제일 먼저 이를 닦고, 이를 닦을 땐 위 아래로, 그렇지 그렇게 말야. 그 다음엔 손을.. 2021. 6. 10. 무소유욕 지방 교역자들의 살림살이가 담긴 회계 보고서가 나눠졌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이없는 표정들, 뭘 계산했고 뭣 때문에 놀랐는지 말 안 해도 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놀란 건 우리 모두, 우리 자신들이다. 액수의 차이일 뿐, 그리고 그 차이란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것일 뿐 다른 게 뭐 있나. 뭘 믿고 살라고 전대 가지지 말라고, 옷 두벌 갖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했을까. 그렇게 말한 당신은 정말로 그랬을까. 삶의 근거. 버릴 것 버리고 남을, 마지막으로 남을 근거, 그게 과연 우리들에게 하나님일까. 진리를 들먹이며 내 배를 채우는 짓거리야 말로 가장 우스운 짓일 텐데. 마지막 한 개 남은 빵을 떨림 없이 나누기까진 우린 얼마나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할까. .. 2021. 6. 9. 늦게 끈 등 작실 마을 올라가는 길 쪽으로 등을 하나 달았습니다. 집 지을 때 부탁해서 사택 옥상에 등을 달았습니다. 밤이면 등을 켭니다. 둥근 달이 걸리면 그런대로 걸을 만하지만 달이 없으면 길도 없습니다. 더듬더듬 발걸음이 더디고 산을 끼고 도는 길, 오싹 오싹 합니다. 사랑의 빛 되었음 싶은 마음으로 불을 켭니다. 작실로 오르는 길, 밤이면 불을 켭니다. 그러나 가끔씩 실수를 합니다. 불을 켜는 걸 잊기도 하고 끄는 걸 잊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가르쳐 줘 날 밝은 한참 뒤 뒤늦게 끄기도 합니다. 사람 발길 끊긴 빈 길을 밤새워 밝힌 걸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날 밝도록 켜져 있던 불을 뒤늦게 끄며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속 그 어느 곳에도 뜻도 없이 켜져 있는 불은 없는.. 2021. 6. 8. 멀리 사는 자식들 “월급은 12만원 받는데, 엄마, 저녁이면 코피가 나와.” 얼마 전 순림이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중학교를 마치곤 곧바로 언니가 있는 서울에 올라가 낮엔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순림이. “돈 벌기 그렇게 어려운 거란다.” 엄마 김 집사님은 그렇게 말했다지만, 마른침 삼키며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래 순림아, 삶이란 때론 터무니없이 힘겨운 것일 수도 있나 보다. 천근만근 저녁마다 두 눈이 무거워도, 선생님 뭔가를 쓰는 칠판에 낮에 일한 실올이 바둑판처럼 아릿하게 깔려도 두 눈을 크게 뜨렴. 네가 마주한 것, 배우는 것, 단순한 공부가 아닌 엄연한 삶이기에. 연신 눈물을 닦으셨다. 얼마 전 자식을 떠나보내고 남은 텅 빈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리며 할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2021. 6. 7. 교우들의 새벽기도 오늘 새벽에도 교회로 들어서는 현관문 앞에는 작은 막대기 하나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오늘도 오셨구나.’ 김천복 할머니, 75세 되신 허리가 굽은 할머니시다. 현관에 서 있는 막대기는 할머니가 짚고 다니시는 지팡이인 것이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새벽예배에 참석하신다. 할머니 사는 아랫 작실까지 재게 걸어도 내 걸음으로 10여분, 할머니는 훨씬 더 걸리리라. 머리 곱게 빗고 맨 앞에 앉으신 할머니, 오늘은 또 무얼 기도하실까. 얼마 전 서울로 떠난 철없는 막내아들 위해 기도하실까. 우리 전도사 좋은 목사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실까. 이는 할머니의 기도 제목 중 하나다. 당신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곳 떠날 생각 아예 말라는 분이다. 교회 출석한지 얼마 안 되는 변정림 성도도 작실에서 내려온다. .. 2021. 6. 6.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