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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하루 한 생각(13) 2019. 1. 13.
상처 하루 한 생각(12) 상처 몸에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거나 병원을 찾는다. 상처가 크고 깊으면 꿰매거나 수술을 받기도 한다. 뼈가 부러지거나 탈골 되었을 때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의 상처는 방치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슨 약이 따로 있을까 싶어 그냥 시간에 맡기곤 한다. 방치한 상처는 덧이 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상처가 자란다. 방치된 마음의 상처는 결국 마음의 창으로 남는다. 상처를 통해 세상을 본다. 사람과 사물을 비뚤어지게 보는 것은, 상처가 난 창으로 보기 때문이다.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은 상처에 익숙하다. 때로는 자신을 자해하기도 하고, 툭하면 남에게 상처를 준다. 상처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곤 한다. 상처투성이의 상황을 오히려 편안하게 여긴다. 내 안에 상.. 2019. 1. 11.
어느 날의 기도 2019. 1. 11.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루 한 생각(9)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은 다른 것이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면 오히려 사랑은 아픔과 상처가 된다.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 생각할수록 상처와 아픔도 커진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ㅡ한희철 목사 2019. 1. 11.
어리석음 2019. 1. 11.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하루 한 생각(10)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언젠가 잘 아는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정형외과 의사였다. 그가 뜻밖의 말을 했다. “목사님, 평생 의사 생활을 했지만 갈수록 모르겠어요. 어떤 경우는 분명히 낫는다 확신하고 수술을 했는데 낫지 않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도무지 자신이 없어 흉내만 냈는데 깨끗하게 낫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지요.” 갈수록 모르겠다고,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이야기를 듣고서는 선생님께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께 더 신뢰가 갑니다.” 진심이었다. 우리가 신뢰하는 것은 누군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나 능력만이 아니다. 더욱 신뢰하는 것이 있다. 진실함이다. 겸손함에서 비롯된. ㅡ 한희철 목사 2019. 1. 11.
하루 한 생각(11) 춤 나는 춤을 모른다. 춤을 춰 본 적도 없고, 따로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춤과 술을 모르는 만큼 생의 즐거움과 거리를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춤을 모르는 몸치라는 것은 몸만 굳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굳었다는 것, 몸도 마음도 유연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 춤의 의미를 일러준 이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이다. 였다. 죽은 아들을 백사장에 뉘이고 그 앞에서 춤을 추는 조르바에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그 때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춤을 추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로 미쳤을 것이다.”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마음속 응어리든, 희열이든, 분노든, 사랑이든, 언젠가 한 번은 마음 가는대로 춤을 춰 보고 싶다.. 2019. 1. 10.
쉼표 하루 한 생각(8) 쉼표 “나는 음표는 몰라도 쉼표 하나는 다른 연주자들보다 잘 연주할 수 있다.” 이성복 시인의 책을 읽다가 만난 한 구절, 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라 한다. 문득 그렇게 말한 연주자의 연주가 듣고 싶다. 음표보다도 쉼표의 연주에 더욱 귀를 기울이면서. 말과 생각을 빈틈없이 채우는 사람이 아니라 여백을 말하고 여백을 남기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행간을 읽을 줄 알고 행간을 남기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 한희철 목사 2019. 1. 8.
시(詩)란 하루 한 생각(5) 시(詩)란 어려워서, 가벼워서, 이래저래 시가 시시해진 세상, 시를 읽거나 쓴다는 것은 생각의 난해함이나 미숙함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무례한 비약이나 과장이나 생략이 아니다. 버릴 걸 버려 마침내 본질에 닿는 것이다. ‘마침내’는 ‘단번에’이기도 하다. 게으름이나 주저함과는 거리가 있다. ‘詩’란 ‘언어(言)의 사원(寺)’,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 침묵과도 말없이 마음이 통해 마침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으로 대면하는 것이다. 눈물로 얼싸안는 것이다. -한희철 목사 2019.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