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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시월의 나한들 무풍한송로를 걸어서 통도사 대웅전으로 향하는 맨발의 산책길은 나와 너를 지우는 기도의 순례길 절마당 가득한 가을 국화꽃 틈새로 가족들의 이름을 공양 올리려는 염원은 시월의 하늘에 닿아 푸르고 인파에 떠밀려도 홀로 고요해 대웅전 유리창으로 보이는 금강계단 부처님의 진신사리탑 갈빛의 좌복에 깃들어 오늘의 백팔배 숙제를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발이 멈춘 곳은 길바닥을 구르다가 홀로 멈춘 듯한 조막만 한 마른 잎 하나 새벽 빗자루질에 쓸리지 않은 듯 용케 인파에 밟히지 않은 듯 몸이 저절로 허리를 구부려 손끝으로 집어든 갈빛 마른 잎 하나 어디로 돌려보낼까 그제서야 옆을 봅니다. 좌측으로 난 돌층계를 오르며 가지 않은 길을 갑니다. 작은 나무 아래 풀섶이 좋아 보여 허리를 구부려 조심스레 내려놓고 고개를 드니 .. 2023. 10. 5.
우리 인생의 출발점 국화차 한 모금에 그윽해진 가슴으로 고요히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의 출발점은 어딜까 하고 우리가 태어난 집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졸업한 학교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다닌 첫 직장일까? 마음은, 아니라고 합니다. 혹, 저잣거리에 떠돌듯 물고 태어났다는 흙숟가락 금숟가락일까? 물음과 물음을 따라서 흐르는 생각을 따라서 깊어진 가슴으로 깊은 숨을 쉽니다. 숨을 쉽니다. 숨을 고릅니다. 날숨과 들숨이 평화롭게 걸어갑니다. 숨을 고르는 이 순간 우리 인생의 출발점에서 날숨과 들숨 같은 생(生)과 사(死)가 사이좋게 걸어갑니다. 해인사의 장경각 법보전 주련에 새긴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時) 날마다 새롭게 숨을 고르는 이 순간마다 모두에게 공평히 내려주시는 은총과 맞닿은 지금이라는 .. 2023. 9. 30.
오늘 뜬 달 이제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답 어둑해진 경주 토함산 하늘가에 뜬 달 하루 일을 마친 엄마가 중1수학 좌표와 그래프를 마친 중2아들에게 오, 달이 떴네 천 년 전 경덕왕도 보았을 서라벌의 달이네 했다 아들은 달님에게 새 자전거 얘기 엄마에겐 좋은 과학 시간 아랫쪽으로 활처럼 휜 저 달이 무슨 달일까? 물어보려는데 일편단심 아들은 새 자전거 얘기 입속에선 상현달과 하현달이 구르지만 침묵한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어 우리 내일도 같이 밤하늘을 바라볼까? 오늘의 달보다 더 살이 쪘을지 더 홀쭉해져 있을지 오늘 뜬 달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그랬더니 고요히 아들의 두 눈이 달에게로 간다 2023. 9. 23.
하루 하늘과 땅 사이로 울리는 하하하 루룰루 노래처럼 흐르는 물처럼 오늘도 좋은 날 되시라고 까마득히 먼 그 옛날 그 한 사람 그 입에서 꽃 핀 하루 2023. 9. 22.
그곳이 나의 영혼 가까이 다가오고 있구나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35 그곳이 나의 영혼 가까이 다가오고 있구나 마태수난곡 2부 67~69번 (마태복음 27:33~44) 음악듣기 : https://youtu.be/f8fG8y5W_Jg?si=3oh2_JYjZSqHMRFE 67(58)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33.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거기 앉아 지키더라 37.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지.. 2023. 9. 20.
설교자의 강단은 높아야 한다 설교와 관련한 인연은 깊고 오래되었다. 1992년 두란노서원에서 이라는 설교잡지를 만들 때 창간멤버로 들어간 후 얼마있지 않아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근 6년간 설교와 관련해 다양한 기획을 하기도 했다. '이 달의 설교자'라는 꼭지에서 꽤 많은 설교자를 인터뷰하면서 설교자들의 허와 실이 무엇인지 체득하기도 했다. 그 후 를 창간할 때 처음으로 ‘설교 비평’이란 악역(?)을 맡으면서,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전화로 이메일로 대화의 자리에서 설교 비평에 대한 지지를 비롯하여 적대적인 입장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방식의 반응들을 접했다. 글이 나간 후 격려의 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난 일색이었다. 당시만 해도 목사의 강단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저보다.. 2023. 8. 7.
오라 소중한 십자가여!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34 오라 소중한 십자가여! 마태수난곡 2부 64~66번 (마태복음 27:31~32) 음악듣기 : https://youtu.be/SSZAHhl67nw 64(55)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1. Und da sie ihn verspottet hatten, zogen sie ihm den Mantel aus, und zogen ihm seine Kleider an, und führeten ihn hin, daß .. 2023. 8. 4.
영혼의 때를 밀고 오만과 위선을 벗는 일 저자 지강유철 선생이 장기려 선생에 대해 쓴 평전을 잘 읽었다. 이 책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먼저 장기려 박사와 필자가 교제한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겠다. 필자는 장기려 선생을 생전에 두어번 뵌 적이 있다. 1970년대 중반에 부산 산정현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장 박사께서 내게 오후에 잠시 말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순종한 적이 있다. 또 1990년대 초에 일가 김용기 선생을 기리는 일가상위원회에서 장기려 선생을 수상자로 결정하고 손봉호 교수와 나를 부산 장기려 선생께로 보냈다. 장기려 선생이 일가상 수상을 거부할 수도 있으니 먼저 두 사람이 가서 장 박사를 설득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가 내려가서 말씀드렸지만 장 박사는 이제 세상의 어떤 상도 받지 않켔다고 하시면서 거절했다. 이 기회에 평소 .. 2023. 7. 28.
오, 상하신 그 얼굴이여! 조진호와 함께 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순례 BWV 244 Matthäus-Passion / 마태수난곡 No. 33 오, 상하신 그 얼굴이여! 마태수난곡 2부 62~63번 (마태복음 27:27-30) 음악듣기 : https://youtu.be/MFVZzfMm8vc 62(53) 내러티브 에반겔리스트 27. Da nahmen die Kriegsknechte des Landpflegers Jesum zu sich in das Richthaus, und sammleten über ihn die ganze Schar; 28. und zogen ihn aus, und legeten ihm einen Purpurmantel an; 29. und flochten eine Dornenkrone, und setzten si.. 2023. 7.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