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낮술



정작 모를 심던 날, 할아버지는 잔 수 잊고 낮술 드시곤 벌러덩 방안에 누워 버렸습니다. 훌쩍 훌쩍, 눈물을 감추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달랠 수도 말릴 수도 없었습니다.


모를 심기 훨씬 전부터 할아버진 공공연히 자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모 심는 날을 일요일로 잡았고, 일부러 기계 모를 마다하고 손 모를 택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일곱 자식들이 며느리며 사위며 손주들을 데리고 한날 모를 내러 오기로 했던 것입니다.


두 노인네만 사는 것이 늘 적적하고 심심했는데 모내기를 이유로 온 가족이 모이게 됐으니 그 기쁨이 웬만하고 그 기다림이 여간 했겠습니까. 기계 빌려 쑥쑥 모 잘 내는 이웃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저 든든히 논둑을 고치고 모심기 알맞게 물을 담아 놓고선 느긋이 그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모를 심기로 약속한 날, 정말로 모 심으러 들어온 건 둘째딸, 둘째딸네 뿐이었습니다. 모두 온다고, 오겠다고 전화론 그랬는데, 그런 전화 믿고 자랑도 했고 일꾼도 그만큼 적게 맞췄는데 결국 들어온 것은 둘째 딸네뿐이었습니다.


속상한 할아버지 마음, 말 안 해도 알기에 아무도 말릴 수 가 없었던 것입니다. 할아버지 마음 위로하듯 하루해론 벅찬 일을 벅차게 해냈을 뿐입니다.


모심기 전날 밤, 신작로 곳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식들 밤늦도록 기다리며 어둠속 줄담배 피우던 할아버지 모습 본 이는 없었다 해도.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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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교회 바로 앞에 방앗간이 있습니다. 단강이 얼마나 조용한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방앗간입니다. 평소엔 몰랐던 단강의 고요함을 방아 찧다 멈춘 방앗간이 가르쳐줍니다. 방아를 멈추는 순간 동굴 속 어둠 같은 고요가 시작됩니다. 익숙해진 덕에 많이는 무감해졌지만 그래도 방아 찧는 소리가 요란한 건 사실입니다.


얼마 전 승학이 엄마를 만났더니 미안하다, 합니다. 미안한 일이 딱히 떠오르질 않아 물었더니, 이틀 전인 주일날 예배시간에 방아를 찧었다는 겁니다. 가능한 피하려고 했는데 손님의 다급한 청에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이야기한 지난 주일만 해도 별 불편함 없이, 아니 아무런 불편함 없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승학이 엄마는 방아를 찧을 때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 년 열두 달 적지 않은 방아일 텐데도 말입니다. 교회에 나오지는 않지만 예배시간을 피해 방아를 찧어온 승학이 엄마, 적어도 그 마음은 믿음에 가까운 아름답고도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주님. 때마다 우리의 예배를 염려하는 승학이 엄마의 조심스런 마음도 함께 받아주세요.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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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끼'와 '곱돌' 그리고 '개구리'




눈썹 하나를 뽑아 돌멩이 사이에 넣어두면 되었다. 누군가 그걸 발로 차면 됐다. 그러면 돌을 걷어찬 이에게 옮는다고도 했다. 들은 말대로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우리식으로는 발바닥에 ‘地平’(지평)이라 쓰는 것이었다.


다래끼가 왼쪽 눈에 나면 오른쪽 발바닥에, 오른쪽 눈이면 왼쪽 발바닥에 지평이라 썼다. 반드시 먹물로 써야 효험이 있다는 그 글씨를 다래끼가 생길 때마다 썼다.


묘하게도 그 방법을 가르쳐 준 분은 교회 목사님이었다. 그래서 더욱 신빙성을 얻은 그 방법은 다래끼엔 무슨 특효약쯤으로 알았다.

어릴 적 갖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는 '곱돌'이었다. 만질만질한 돌로서 맨바닥에 글씨를 쓰면 하얀 글씨가 써졌다.


곱돌 만드는 비책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곱돌과 비슷하게 생긴 차돌을 땅속에 구멍을 파고 넣은 후 거기에 똥을 부어두곤 한 달 쯤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번도 그 효과를 시원하게 확인하진 못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졌다는 곱돌을 우리는 귀하게 대하곤 했다.

개구리를 살려내는 방법은 또 얼마나 기막혔던지. 개구리를 땅바닥에 내리쳐 그야말로 '쭉 뻗게 한' 후 개구리 배 위에 아무 풀이나 뜯어 열십자 모양으로 올려놓고선, 그 가운데 침을 뱉었다.


열십자 모양의 효험 때문인지, 침의 효험 때문인지 놀만큼 놀다 와보면 뻗어있던 개구리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상식을 뛰어넘는 신비한 세계가 있음을 가르쳐 준 어릴 적 기억들, 모든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 후론 다시 맛보지 못한 신비한 세계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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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선물로 주신 새해 
마지막 숫자를

1로 쓰다가
2로 고쳐 쓰면서

같은 하늘을 숨쉬고 있는
같은 예수의 날을 헤아리는

이 땅에 모든 생명들의 건강을 빕니다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빕니다

백신을 맞고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몸속 세계의 평화 협정을 기도합니다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하늘의 평화가 임하는

내게 주시는 어려움과 아픔이
이 또한 내 몸을 살릴 선물이 되는 은총을 누리는

사색의 등불로 밝히는
감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오늘의 햇살처럼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차 한 잔의 평화가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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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잡기

그림/임종수



고향 부곡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월암리와 입북리, 초평리를 끼고 펼쳐져 있는 저수지의 크기는 상당했다. 여름철의 수영과 낚시, 겨울철의 썰매와 스케이팅을 마음껏 즐길 만큼 저수지는 차라리 호수 쪽에 가까웠다.


저수지로 흘러가는 개울이 몇 개가 있었는데 그 개울마다엔 붕어, 미꾸라지, 구구락지, 빠가사리 등 고기들이 많았다.


특히 봄이 되어 첫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굉장한 날이 되곤 했다. 그때쯤이면 붕어가 알을 낳을 때, 첫 비가 오는 날은 알을 낳으려는 붕어가 그야말로 떼로 올라왔다.


그런 날은 그물이 필요 없었다. 그저 손으로 움키기만 해도 커다란 붕어들을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었다, 두 손을 펴 물속에 집어넣고 조심스레 손을 좁혀 붕어를 잡는 맛이라니. 손 사이 붕어의 움직임이 아무리 날래더라도 우리들의 손에서 붕어는 빠져나가질 못했다. 손에 잡힐 때의 붕어의 힘찬 기운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멀리서 그물 가지고 온 어른들은 감탄하며 쳐다보았다. 그물로도 잘 잡을 수 없는 붕어를 아이들이 맨손으로 잡아 올리니, 혀를 내두를 만도 했을 것이다. 그런 어른들을 보면 괜히 신이 나기도 했고 언젠가는 값을 받고 잡은 고기를 팔아본 적도 있다.

내가 모르는 방법을 다른 이가 가지고 있을 때가 있다. 어른이 그물로도 잡을 수 없던 붕어를 어린 우리들이 맨손으로 잡았다.


인정하면 살고 싶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저만의 방법을.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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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배려

  • 안녕하세요. 파이채굴러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부자되세요!
    요기조기 구경다니다가 들어왔는데,
    포스팅 진짜 잘하시는거 같아요.👍👍👍
    저도 배워갑니다.
    시간되실때 제 블로그도
    한번 들려주세요.🤗🤗🤗

    파이채굴러 2022.01.02 07:43 신고

 

안쓰러운 건 어린 선아만이 아니었다. 근 한 달 반 동안 서울에 올라가 수술과 병원생활을 마치고 내려온 아주머니가 한쪽 눈 두툼한 안대를 댄 채 그동안의 얘기를 눈물로 할 때, 자리를 함께 한 모두의 마음은 안쓰러웠다.


아주머니가 눈물 흘릴 때마다 수건을 들고 그 앞에 서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선아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엄숙한 자리이기도 했다.


신실한 불자로서 30년 동안이나 섬겨오던 불도를 떠나 하나님 품에 안기는 시간, 누구도 쉽게 생각 못했던 뜻밖의 변화에 첫 예배를 드리는 모두의 마음은 엄숙함으로 숙연하기까지 했다.


17년 동안 앓아오던 지병이 눈으로 도져 위험한 수술을 앞두게 되었을 때,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안다. 아주머니 옆에 앉아 눈물로 예배를 드리는 한 손길. 그가 그동안 말없이 감내해온 사랑의 수고를. 흘러 흘러 바다에 닿는 강물처럼 찬마루 바닥에 흘렸을 남모를 기도의 눈물을. 결국은 기도의 응답. 드릴 건 감사뿐이었다.


사향으로 썼다는, 그동안 불심을 지켜주던 벽에 걸었던 액자를 모두 떼어내 불을 놓는다. 타오르는 불길. 그러나 이내 수그러들고 만다. 타 없어지는 것, 한줌 재로 남는 것, 그것뿐인 것을. 그래도 그것은 분명한 마침표, 새로운 시작을 위해선 필요한 일이었다.


다음날 아침 노모를 모시고 나온 온 가족은 예배당 앞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새해 들어 첫 번째 맞는 주일, 한해를 은총으로 여시는 주님의 배려가 고맙고 든든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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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地



"한 목사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할 텐데."


목회하는 친구가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어머니가 그러신다. 자식을 목사라 부르는 어머니 마음에는 자랑과 기대, 그리고 한 평생 지켜온 목회자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다. 어머니께 그랬다.


"성지가 어디 따로 있나요, 내가 사는 곳이 성지지요."


혹 어떨지 몰라 어머니를 위로하듯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사실임을 삶으로 확인하며 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을 성지(聖地)로 믿으며.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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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를 하루 지나서
비로소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

문득 한낮의 볕이 좋아서 
모처럼 따뜻한 볕이 아까워서

칠순을 넘기신 엄마랑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한 폭의 땅이 
평생 살아갈 집이 되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줄줄이 선 산책길을 따라서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이 구불구불 걸어갑니다

사찰 내 서점에서 마주선 백팔 염주알을 보니
딸아이의 공깃돌을 옮겨가며 숫자를 헤아리던 기억에

책 외에 모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습니다
옆에 계신 친정 엄마한테 이십여 년만에 사달라는 말을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손수 몇 가지 염주알을 굴려보시더니 
이게 제일 좋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렇지

제가 첫눈에 마음이 간 밝은 빛깔의 백팔 염주알입니다
엄마가 한 말씀 하십니다, "평생 동안 쓰면 되겠네"

당장 오늘 저녁부터 백발 배를 다시 시작합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천천히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2005년 5월 15일 길상사 음악회 때 하늘을 울리던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님이 함께 하신 신청곡

임형주의 목소리로 아베마리아를 듣으며
이어서 12월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며

나도 참
숨을 되뇌이면서

백팔 번의 엎드림으로 숨을 내쉬고
백팔 번의 일어섬으로 숨을 들이쉬며

땅으로 몸을 굽혀 엎드리지 않고서야
하늘로 머리가 뚫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돌처럼 단단해진 심장과
굳어진 몸을 조율합니다

백팔 번의 번뇌가
백팔 번의 감사함이 되고

부처의 손가락이
예수의 손가락이 되어서

내 손가락 끝에 걸터 앉은 염주알이 
천천히 숨을 고르듯 노래를 부르듯 굴러갑니다

하늘이 땅이 되던 예수의 무릎과
땅이 하늘이 되는 성령의 바람과

백팔 염주알과 사이 좋은 벗이 되는
이태석 신부님의 묵주알을 나란히 놓으며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진리 안에서

오늘밤에도 달과 별이
2021년에서 2022년으로 굴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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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얹은 손

사진/김승범

 

한해가 바뀌는 시간, 어둠속 촛불 하나씩 밝히고 예배당에 앉았습니다. 경건한 마음들. 늘 그만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시간일터이면서도 해 바뀜의 시간은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더듬더듬, 기도도 빈말을 삼가게 됩니다. 돌이켜 보는 한해가 회한으로 차올라 눈물로 흐르고, 마주하는 한해가 마음을 여미게 합니다.


머리 숙인 교우들 머리 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곤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인 양, 시간 위에 손 얹은 양, 손도 마음도 떨립니다.


전에 없던 일, 스스로에게도 낯선 일 그 일이 그 순간 절실했던 건 내 자신 때문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도 받고 싶은, 문득 그런 마음이 온통 나를 눌렀습니다.

 

낮게 엎드려, 가장 가난한 마음 되어 단 한 번의 손길을 온통 축복으로 받고 싶은 배고픔, 문득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한해를 보내고 맞는 심정 누군 다를까. 내 자신에게 손을 얹듯 손을 얹습니다. 전에 없던 일, 그러나 축복은 그렇게 올겁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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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엔 또 불고 있으리니

<꽃자리> 출간 책 서평 2021. 12. 31. 07:10
  • '길잃은 양일수록 상처는 많아
    끌지않고 업고와야하는..'
    업으려면 다리를 접고 허리를 굽히고 들어메야 하고..
    무엇보다, 양에 묻은 진흙, 지푸라기, 덤불, 그리고 퀴퀴한 냄새까지 등에 밀착해서 함께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교회. 끌고가려고하지 업고가려고는 안하는.. 목회자..

    2022.01.01 10:56

 

 

 

오래 전, 관옥 이현주 목사님이 보내주신 연하장에는 ‘오늘 하루’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씨는 나를 침묵 속으로 데려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말과 ‘하루’라는 말이 무척 새롭게 그리고 퍽 무겁게 와 닿았습니다. 이후로 이런 하루, 저런 하루, 어떤 하루, 그때 하 루, 내일 하루… 그 하루마다 ‘오늘’이고 그 오늘마다 ‘하루’ 였습니다.

 

한희철 목사님은 이 책 제목을 ‘하루 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걸음과 길’이란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럭저럭 별일 없이 지내는 하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하루가 모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길은 걸음과 걸음이 모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규암 김약연 선생께서 말씀하신 유언입니다. 이 말씀을 만나면서 무덤가의 정직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한 목사님은 자신이 붙인 이 책 제목처럼 오늘 길어 올린 ‘생각’을 스스로 걸어갈, 걸어야 할 ‘길(행동)’이라고 여깁니다. 문장마다 또한, 그 행간에서 울리는 숨과 같은 고백이 마음에 새겨지는 까닭입니다.

 

이 책에서 한 목사님은 한국, 중국, 미국, 유럽 등 동서고금 에서 오늘날 전해져 오는 철학자들과 시인, 예술가와 지식 인들의 이야기를 오래 음미하고 ‘제 것’을 만들어 ‘그 생각’ 을 내놓았습니다. 마치 어미 새가 사냥도 서툴고 위도 약한 새끼들을 위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충분히 씹고 씹어 모이를 주는 것과 같이 말이지요. 사람을 아끼는 사랑 없이는 힘든 작업입니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없이는 나오기 힘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이자 동화작가인 그는 ‘맘곱’(눈가에 찌끼를 말하는 눈곱 처럼 손톱 밑에 끼는 때를 손곱, 발톱 밑에 끼는 때를 발곱이라 한다. 그렇 다면 ’맘곱‘은 없을까,라고 말하는 언어 조크)이란 말을 지어내 사용 하고 싶을 만큼 언어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우리말’을 아끼는 마음은 그가 지닌 품성에서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마음에 낀 때’는 없을까?라는 반성과 겸손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까닭입니다.

 

우리말에 대한 남다른 관심으로 고고학자가 유적지를 캐내 듯 여기저기 묻혀 있는 숨겨진 단어들을 정성스레 찾아냅니다. 곡괭이나 호미로 서둘러 파는 것이 아니라, 혹시 깨지 고 상할까봐 여린 붓으로 쓸어가며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찾아냅니다. 그리하여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말들이나, 시골집에 놔둔 말이나,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말들, 다락에 숨겨뒀다 잊어버린 말들을 우리 앞에 꺼내놓습니다.

 

그 말들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아닌, 잠시 잊었던 익숙함처럼 정답고 포근한 냄새가 납니다. 그렇게 찾아낸 보물 같은 단어들은 목회 현장으로 나서기도 하며, 진솔한 고백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며, 때론 역사와 사회에 대한 외침으로 이어집니다. 또한 그 말들이 지닌 언어의 힘으로 ‘말하고자’ 하는 ‘말’의 적절하고도 품위 있는 표현이 됩니다. 그것은 한 목사님이 ‘하루하루’마다 모든 사물과 현상 앞에서, ‘만들어진 언어’ 이전의 ‘선험적 언어’를 묵상함과 같으며 언어 자체보다 ‘사람’을 향한 연민이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시시한 일상을 주워서 주머니에 넣은 채 좀처럼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공부하는 방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가 화분에 난을 키우듯 고요하게 이야기들을 키워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누구도 모르는 사이, 꽃이 열리고 향기가 피어오르면 슬며시 ‘이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만나는 문장들은 이렇듯 작고 낮은 것들을 향해 있는 그의 천성이 빚어낸 뜰에서 피어난 나무와 풀과 꽃들입니다. 이내, 이 뜰은 그 분을 닮은 ‘신의 정원’이 됩니다.

 

우리는 아는 만큼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말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르는 만큼 씁니다. 말이나 글로 담아내지 못한 더 깊은 세계는 늘 침묵 속으로 침잠합니다. 얼마나 조심스럽고 고요한 마음으로 이 책을 내놓는지 헤아릴 수 있는 글입니다. 사실 저는 한 목사님이 쓰신 글은 낯선 것이 없을 만큼 정답고 많이 익숙합니다. 그가 쓴 동화 ‘소리새’로 92년에 만나 지금까지 한결같이 마음을 주고 받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단강에서 목자로 살며 기록했던 ‘얘기마을’은 읽을 때마다 눈물을 감추느라 힘이 들곤 합니다. 그래도 이번엔 태연하고 무심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만 이 문장 앞에서 울컥하고 맙니다.

 

“길 잃은 양일수록 상처는 많아

끌지 말고 업고 와야 하는 것은”

 

‘목자’라는 글입니다. 교회를 잃은 이 기막힌 시대를 향한 ‘목자로서’ 다짐하는 그 심정이 뭉클하게 묻어납니다. 목회자이니 홀로 삼킨 말도, 꺼낼 수 없는 말도 얼마나 많았을 까요. 그리하여 제법 오래 삭인 말들이 이렇게 책이 되었습 니다. 기억에서 사라진 언어들이 바람처럼 흩어져 뵈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 어딘가엔 또 불고 있을 테니까요. 그가 ‘오늘 쓰려다’ 잊어버린 말이 있다 해도 그리 큰일은 아닙니다. 어딘가엔 그 뜻이 전해지고 있을 테니까요.

 

가수 홍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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