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당근 할머니의 정성값

  • 더 담으려는 할머니의 마음, 그만 담으라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 우리의 마음이 그럴 수 있길 원하고,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과도 그런 따듯한 온정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길 2019.12.02 06:28
    • 서로가 서로에게 그런 마음이라면 더없이 좋을 테니까요.

      신동숙 2019.12.02 17:22 DEL

신동숙의 글밭(17)/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흙 당근 할머니의 정성값

 

제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의 장날입니다. 가까운 시골에서 모여든 농사 짓는 분들의 농산물. 부산에서 모여든 수산물 상인들. 마을의 텃밭에서 이웃들이 손수 가꾼 채소들. 그리고 나름의 장날 구색을 갖춘 옷가지, 이불, 생필품, 두부, 메밀 전병, 잔치 국수, 어묵, 떡, 참기름, 뻥이요~ 뻥튀기, 색색깔 과일들, 곡식들, 밤, 대추.

 

가을날 오일장은 풍성한 추수 감사날입니다. 한 해 동안 지은 수확물 중 가장 좋은 것으로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눈길 한 번, 멈추어 서는 발걸음 한 번을 기다리는 간절한 눈빛. 그 생을 끌어 당기는 눈빛들이 모여 햇살처럼 비추면 무겁던 하루살이에도 윤기가 돕니다.

 

땅바닥에 올망졸망 모양도 제각각인 흙 당근 한 무더기를 쌓아 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당근은 집에서도 떨어지지 않는 반가운 식재료. 다져서 볶음밥도 하고, 조림에도 넣고, 깎아서 생으로도 먹는 달고 아삭한 주황 당근. 곁에 쭈그리고 앉으신 할머니께 값을 물으니 한 봉지에 천 원이라 하십니다.

 

할머니는 당근을 담으시고, 나는 이 천 원을 꺼내서 드립니다."할머니, 농사 지으셔서 거져 다 주시면 우째요. 이 돈도 작아요." 했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천 원만 달라십니다.

 

꾹꾹 이 천 원을 손에 쥐어 드리려니, 할머니는 맞잡은 비닐 봉지를 붙드시며 서너 번 검고 투박한 흙손이 왔다갔다 합니다. 그렇게 당근을 덤으로 더 담으십니다. 저는 저대로 그만 담으셔도 된다며 작은 실갱이가 오고 갑니다. 물방울처럼 퉁퉁 부딪힌 할머니와 제 마음이 순간의 온정을 나누었는지, 미안하던 마음 한 켠이 따뜻해져옵니다.

 

흙 당근 할머니의 마음은 거져 주는 흙을 닮으셔서 그런지, 힘겹게 농사 지으신 자식 같은 당근을 거져 주시면서도 할머니의 표정에는 인심을 쓰는 듯한, 생색을 내는 듯한 기색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그 마음을 거절할 수 없어서 흙 당근 한 봉지를 묵직하게 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미안하도록 뭉클하게 따뜻해져오는 마음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굽으신 허리로 한 해 동안 농사 지으셨을 할머니의 땀과 수고로움과 정성에 한 끝도 미치지 못하는 당근값. 한 봉지 가득 이 천 원. 할머니의 정성은 무엇으로 값을 치뤄 드려야 하나, 어느 누가 알아주실까. 마음이 흐르고 흐르다가 낮은데 계시는 하나님한테로 눈물이 빗물처럼 고입니다.

 

제가 치르지 못한 할머니의 정성을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대신 정성값을 치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흙에 손 한 번 안 묻히고 먹기만 하는 염치 없는 마음. 가장 작고 못생긴 당근 한 알 닮은 작은 마음. 작고 작은 마음을 모아서 감사 기도 드립니다.

 

그렇게 잔잔히 흐르는 마음을 따라 걷는 걸음 걸음이 점점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주황색 당근빛으로 노을이 아름답게 물드는저녁답, 작은 마을의 하루는 그렇게 무르익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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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나무

신동숙의 글밭(16)/시노래 한 잔

 

 

사랑 나무

 

없는 듯 계시는
당신이 주신 말씀 한 알
내 가난한 마음밭에
심기로 하였습니다

 

십자가 사랑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내 가슴이 아프도록
뿌리를 내립니다

 

 

 

밤이면 이불을 그러안고서
내 몸은 둥그런 우물이 됩니다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은
내 무딘 손끝에서도 꽃이 필 테지요

 

가슴엔 사랑이 알알이 열릴 테지요
사랑이 달게 열릴 테지요

 

2018.10.24. 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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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마 타기

  • 확신은 퍼센트이지만 믿음은 그냥이겠죠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30 08:39
    • 그냥이 훨씬 무겁게 느껴집니다

      한희철 2019.12.01 19:28 DEL
  • 저는 가르마가 오른쪽에 있는데, 오래 되어서 왼쪽으로 내려니 많이 망설여집니다. 전 계속 오른쪽으로..

    신동숙 2019.11.30 09:40
    • 워낙 헤에스타일에 관심이 없다보니 내내 익숙했던 것이 그중 편하더군요.

      한희철 2019.12.01 19:29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7)

 

가르마 타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머리를 깎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편하고 익숙한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말로 설명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정릉에 온 뒤로 교우가 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는데 때가 되어 미용실을 찾았더니, 집사님은 손을 다쳐 머리를 깎을 수가 없었고 집사님 대신에 낯선 미용사가 머리를 깎고 있었던 것이었다. 중년의 여성이었는데, 잠시 기다리며 보니 손놀림에 막힘이 없어 보였다.

 

 


내 차례가 왔을 때 혹시라도 머리를 어색하게 깎을까 걱정이 된 아내가 한 마디 부탁을 했다. 오른쪽 이마 부분이 휑하지 않게 깎아달라고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미용사는 선뜻 가위를 드는 대신 이리저리 머리를 만지고 넘겨보더니 대뜸 이야기를 했다.


“가르마를 오른쪽에 내는 것이 좋겠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이어지는 동작을 보면서 그 말의 뜻을 이해했다. 왼쪽에 위치한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바꾸어보라는 것이었다. 그 때가 언제였을까,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왼쪽에 가르마를 내고 오른쪽으로 머리를 빗어 넘기며 살아왔다. 원래 머리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없거니와 그렇게 시작했고 그렇게 지내온 터라 지금까지 가르마의 위치를 바꾸는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처음 만난 미용사가 대뜸 가르마를 오른쪽에 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그렇게 권하는 미용사가 신기하게 여겨졌다.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고,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러자 미용사는 다시 한 번 뜻밖의 말을 한다. 이제껏 자기 말을 들은 사람 중에 80퍼센트 이상은 만족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머리를 자르기 시작하는데 정말로 가르마를 오른쪽으로 내고 자르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제안을 듣고 당황했을 뿐 충분히 동의를 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80퍼센트에 대한 지나친 신뢰,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대한 무리한 확신, 내게는 그런 것이 왜 없을까, 예배를 드리러 나가기 전 거울 앞에서 습관처럼 머리를 오른쪽으로 넘기며 나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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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여는 방법

  • 아멘.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는.
    자격 없는 나에게 긍휼로 열어주시는 은총의 문으로'

    신동숙 2019.11.29 09:00
    • 문 앞에서는 언제라도 수동태가 되어야겠어요.

      한희철 2019.11.29 16:42 DEL
  • 열려라 참깨가 아니라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29 11:00
    • 우리의 기도가 "열려라 참깨"의 반복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희철 2019.11.29 16:44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6)

 

문을 여는 방법

 

닫혀 있는 문을 여는 방법에는 두어 가지가 있다. 문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면 두 가지라 해도 되겠다. 하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방법이다. 열쇄로 열든 비밀번호를 누르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집의 주인이 당연히 선택하는 방법이자 주인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문을 여는 다른 하나는 문을 두드리는 일이다. 손으로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른 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할 일을 하고는 주인이 문을 열어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열쇄가 없고 비밀번호를 모르는 이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며 신앙에 대해 생각한다. 신앙도 마찬가지구나 싶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앙을 은총의 문을 여는 열쇄를 얻거나 비밀번호를 배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을 단순한 공식이나 공정으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신앙의 참된 의미는 문이 열리는데 있다. 은총의 문은 내가 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열려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은총을 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나는 은총을 받아 누릴 뿐 은총의 주인이 아니다.

 

은총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쇄를 달라고 떼를 쓰거나 비밀번호를 가르쳐달라고 조를 것이 아니라, 자격 없는 나에게 긍휼로 열어주시는 은총의 문을 감사함으로 들어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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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가 한 알의 씨앗이라면

신동숙의 글밭(15)

 

나의 노래가 한 알의 씨앗이라면
    

나의 노래가 한알의 씨앗이라면
낮고 낮은 땅 위에 떨어지게 하소서

 

나의 기도가 한알의 씨앗이라면
어둡고 가난한 집에 떨어지게 하소서

 

바람이 불면 바람을 느끼고
비가 내리면 온몸이 잠기더래도

 

내려주신 은혜에 떨며
살아있게 하소서

 

꽃을 피우지 못해도
꽃을 사랑하게 하소서

 

열매 맺지 못해도
열매의 꿈 꾸게 하소서

 

온몸이 뿌리째 흔들려도
기도의 끈 놓지 않게 하소서

 

이 모든 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인 줄 알게 하소서


2018.9.15. 詩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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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딘 마음을 타고서 고운 결로 흐르는 이야기

  • 덩달아 내 마음에도 실개천이흐르네요. 단강에서 고단한 마을 사람들을 픔어내는 목자의 막막함이 그려져 있고, 함께 울먹이며 어찌할줄 몰라하는 픙경속에 애틋한 하늘사랑이 그려져 있지요.
    참 가난했던 사람들에게 예수가 위로가 되는...젊은 목회자가 흔들리는 동안에도 떠날수 없는 그분의 징한 설득속에 그려지는 단강풍경

    기쁨지기 2019.11.29 09:59
    • 덩달아 실개천이 흐르신다니 제게도 실개천이 흐른 것 같습니다.

      목자의 막막함과 울먹이며 어찌할 줄 몰라하는 풍경 속에 애틋한 하늘 사랑. 그 마음과 마음들이 그대로 제게도 생생히 전해져 옵니다. 어떻게든 지켜가고 함께 나누고픈 이야기입니다.

      신동숙 2019.11.29 13:53 DEL
  • 하루하루 손바닥만한 삶을 살았을 뿐,
    눈여겨 읽고,
    필사를 하고,
    이럴 만큼의 삶을 살았던 것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제게는 지워지지 않는 지문처럼 남은 단강,
    그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한희철 2019.11.30 08:10
    • 글에서 전해져 오는 울림을 설렁 읽고 넘어가기엔
      그 마음과 사유의 깊이가 그윽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소박하고 잔잔한 듯하면서도 제게 전해진 울림이 커다란 하늘을 닮았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마음에 품고서 바라본 손바닥만한 하루.
      자연과 사람과 하루의 일상을 끌어안으려는
      그 한 마음이면 충분히 곱다란 마음이니까요.
      그리 살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동숙 2019.11.30 09:13 DEL

신동숙의 글밭(14)

 

 

 무딘 마음을 타고서 고운 결로 흐르는 이야기

-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을 읽고 -

 

책을 펼친 후 몇 날 며칠이 흘렀는지 모른다. 책을 펼치면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그러기가 힘이 들었다.

 

한바닥을 읽다가 가슴이 멍먹해지면 고개 들어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또 한 줄을 읽다가 눈물이 자꾸만 나와서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다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어 눈물 콧물을 소매로 닦다가. 그렇게 가슴에 맴도는 울림이 쉬 가라앉질 않아 책을 덮고 마는 것이다.

 

편안히 앉아 눈으로만 읽기가 미안하고 염치가 없어서, 처음 글부터 필사를 하기로 했다. 하루에 한두 편을 적으면 크게 무리는 없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농부와 목자의 마음을 내 무딘 가슴에 새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기를 일주일이 넘었나 보다 어깨 죽지가 아려서 오전에는 잠시 누웠다는 게 한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뜨니 정오가 넘었다. 이런...

 

남들은 지금 밖에서 일하느라 숨 돌릴 틈도 없이 돌아가고 있을텐데,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책상에 편히 한 번 엎드리지도 못할 시각. 이 얼마나 편한 팔자인가. 미안한 마음에 또다시 글을 읽고 글을 적고, 나머지 시간을 사색과 감사함으로 채웁니다.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밖엔 달리 도리가 없기에. 어쩌면 하나님이 그러라고 주신 소명을 위한 터널 같은 시간인지도 모르기에.

 

그러기를 얼마나 했는지. 오늘 겨우 책의 중반을 넘긴 것을 본다. 필사는 잠시 접어 두고서 그냥 읽어 나간 것이다. 뒤로 갈수록 눈물은 터진 샘물처럼 흐른다. 멍먹하고, 애틋하고, 아프고, 더없이 아름답다. 그 마음과 마음들이.
 
1997년 12월 단강, 인우재에서 한희철. 지금으로부터 22년전, 작은 시골 단강 마을 이야기.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농촌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다. 어찌보면 공감 할 만한 삶의 흔적이라곤 없는 나에게. 전국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그 작은 시골 마을 이야기에 온통 멍먹함과 눈물이 된 것을 두고 무엇으로 헤아려야할런지. 내 마음을 헤집어본다. 나도 사람이기에. 이유는 그것 말고는 달리 생각나는 말이 없는 것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읽고서, 닮지도 않은 삶의 기록들을 읽으며, 눈물이 선명히 흐르고 있지 아니한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내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작은 농촌 마을의 농부와 목자가 함께한 눈부시도록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들.
 
그네들의 아픔과 상처에서 고름처럼 흐르던 눈물. 그 눈물을 두 손으로 때론 온몸으로 받은 목자. 아니 끌어안은 목자. 빗물이 눈물 되어 고이는 곳으로, 햇살이 따스하게 감싸 안는 곳으로. 농부와 함께 눈물 흘린 목자의 눈물은 낮은 곳으로 고여 농부의 고단한 삶을 적셔 준 단비가 되었고. 낮아진 목자의 시선은 햇살이 되어 농부의 삶을 구석구석, 그들 자신도 잊고 지내는 속뜰까지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그리고 시절을 훌쩍 지나와 나에게도 눈물이 되어 흐른다. 그렇게 흐르는 눈물은 단비가 되어 내 메마른 심령까지 적시고. 한국 교회의 목청 높은 목회자를 향하던 어둡던 골짜기까지 환한 햇살이 되어 따스하게 감싸 안는 것이다.

 

어찌하여 쓸쓸한지도 모르는 내 무딘 마음을 타고서 고운 결로 흐르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고운 결을 따라서 나에게로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이 흘러온 것이리라. 중고 서점에서 어렵사리 구한 책이라 안타까운 것은. 절판이 된 현실이다. 나와 인연이 된 이 책은 다행히 중고지만 새책이나 진배없이 띠지가 그대로 있다. 거기에 적힌 추천사를 그대로 옮겨 적어 함께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하다.

 

 

<막쪄낸 찐빵>의 작가 이만재가 말하는 예수님 냄새 풍기는 그분을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새털 처럼이란 말은 기분 좋을 때 아메리컨 인디언들이 쓰는 말로 정말 새털처럼 가벼우니 몸이 금방 하늘로 둥둥 떠올라 갈 것만 같게 됩니다. 그런 분을 만나는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을 뿐만 아니라 심신이 아주 뿌듯해지는 충만감을 느낍니다. 내가 만난 한희철 목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 추천사 중에서

 

한희철 목사님은 페북의 벗님이시기도 하다. 면전에서 이런 글을 올리기란 조심스럽고, 주위를 둘러보게도 된다. 그럼에도 이렇게 독서 후기를 적으며 그 따뜻한 마음들을 잔잔히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한편 송구스럽고, 별스런 일에 놀라실세라 적잖이 마음이 콩알 만큼 작아진다.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마음이다.

 

그리고 사람 냄새 그리운 이 시대와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두레 밥상에 둘러 앉아 예수를 나누듯. 작고 외진 시골 단강 마을에서 흙과 농부와 목자가 나눈, 함께 아프고 함께 웃었던 그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살가운 사랑을 심령이 가난한 벗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벗님들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벗님들이나. 절에 스님들이나 농사를 지으시는 벗님들이나. 나처럼 글을 쓰는 벗님들이나 바깥에서 노동을 하시는 벗님들이나. 해외에서 한국을 더없이 그리워하고 있는 벗님들이나. 그 누구와도 따스하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진흙 속에 묻힌 보석을 발견했는데, 어찌 혼자만 숨겨 놓고 볼 수 있는가. 내가 아는 예수님은 혼자만 쟁여 놓는 그런 분이 아니다. 보석은 함께 나누는 것이기에.

 

나에게도 글이 주는 숙제는 언제나 삶이다. 문득 이런 마음이 든다. 삶을 세공하는 것은 눈물인지도 모른다는. 누군가를 위해서 얼만큼 삶 속에서 함께 울어 주었느냐에 따라서 그의 삶은 딱 그만큼 빛이 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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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심지만으로 탈 수 없다

  • 촛불의 심지가 예수라면
    촛농은 우리가 흘리는 눈물일런지요.

    신동숙 2019.11.28 08:52
  • 멋진 묵상입니다.

    한희철 2019.11.28 08:56
  •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28 10:53
    • 반갑습니다.

      한희철 2019.11.29 06:39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5)

 

 촛불은 심지만으로 탈 수 없다

 

겨울이 시작되면서부터 촛불을 켜는 일이 더 많아졌다. 촛불은 촛불만의 미덕이 있다. 촛불을 켜면 마음이 환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백열전등과 다르고 난로와도 다르다.

 

밖에 다녀올 일이 있어 켜둔 촛불을 껐다. 거반 다 탄 초였는데, 그렇다고 촛불을 켜 둔 채 외출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을 보고 돌아와 다시 초에 불을 붙였다. 자기 몸을 다 태워 키가 사라진 초는 촛농으로만 남아 접시에 물 담긴 듯 촛대 안에 담겨 있었다. 그래도 한 가운데 심지가 서 있어 불을 붙였는데, 잠시 불이 붙던 심지는 하얀 연기를 내며 이내 꺼져버리고 말았다. 심지가 다 타기 전에 촛농을 받아들여 태워야 하는데, 백록담처럼 가운데가 파인 상태였기에 녹여낼 촛농이 부족했던 것이다.

 

촛불은 심지만으로는 탈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가 없어도 안 되지만 심지만으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촛농이 심지를 적셔야 한다. 촛불 하나를 켜는데도 그렇다면 세상의 빛이 되는 데는 얼마나 더욱 그런 것일까, 잠시 타오르다 불이 꺼진 촛대를 바라보는 마음이 문득 아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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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 한 마리

신동숙의 글밭(13)

 

봉황새 한 마리

 

훌훌 팬티만 입고
칭칭 이불을 감고
빼꼼 얼굴만 내놓은

 

홀로 쇼파를 점령한
까르르 웃음꽃 터트리며
티비를 보는 모습은

 

힘겨운 하루를 보낸 후
비로소 둥지에 틀어 앉은
봉황새 한 마리

 

책 읽으란 소리에
숙제는 했느냐는 소리에
꿈쩍도 안하던 고귀한 몸이

 

저녁밥 먹으란 소리에
새벽답 참새처럼
훌쩍 날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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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멘..우리네 인생의 마지막 걸음에 나란히 함께 할 이름, 예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한길 2019.11.28 12:20
  • 아멘. 그 고백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 되기를 마음입니다.

    신동숙 2019.11.28 17:29

신동숙의 글밭(13)

 

엄마, 내 휴대폰

 

"엄마, 내 휴대폰!"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옵니다. "엄마, 내 휴대폰 놓고 내렸어요. 지금 내 친구 폰으로 거는 거예요."

 

매일 아침 7시50분이면 딸아이를 태워서 학교로 갑니다. 교문 앞이 붐비지 않도록 한 블럭 못 가서 내려 주는 것은 신학기 초 학교와의 약속입니다.

 

"엄마, 영어 학원으로 좀 갖다 주세요.",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라도 해 줄 수 있는 상황. 잠시 대답을 미룹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 동안 휴대폰 없이 지내보는 것도 괜찮다 싶은. 그전부터 엄마 마음 속에 감춰 둔 한 생각이 선물처럼 주어진 우연한 기회입니다.

 

잠자리에 들기까지 딸아이에게 휴대폰은 떨어질 줄 모르는 분신이거든요. 휴대폰 자리를 대신하여 심심함으로 채우기를 바라는 건 엄마의 헛된 마음일까요. 때때로 찾아드는 심심함과 공허감으로 자녀의 내면이 태초의 커다란 하늘로 가득 채위지기를 바라는 마음. 창조성으로 이어질 그 지루한 터널의 시간을 빼앗은 휴대폰이 엄마는 늘 못마땅한 것입니다.

 

 

 

아침밥을 겨우 한 술 뜨면서도 왼손엔 폰을 들고서 얼굴에 바싹 대고 있는 풍경. 틈틈히 랩 음악을 듣기도 하고, 혼자 있는 딸아이의 방에선 까르르 웃음 소리가 건넌방까지 들려오기도 하고요. 주말이면 거울 앞에 앉아 화장을 하면서도 바로 턱 밑으로 유튜브 동영상은 쉼 없이 흘러 갑니다. 그렇게 휴대폰은 흐르는 강물처럼 딸아이의 일상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릅니다.

 

잠시 휴대폰 없는 딸아이의 하루를 그려 봅니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면 10시가 넘습니다. 학원은 어디까지나 자율선택이었기에. 오히려 학원을 못 다니게 하는 건 엄마 쪽이니까요. 학교 수업만 충실히 해도 얼마든지 내신 성적은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엄마의 입장이지만, 또래 친구들과 학원 선생님과의 정이 학습보다는 더 끈끈해 보입니다.

 

잠자리 머리맡에까지 스마트폰을 손에 쥔채로 잠든 딸아이 얼굴을 슬면서 짧은 한 마디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하나님 자녀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예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딸아이를 차에서 내려 주면서도 어김없이 씨앗처럼 툭툭 던지는 한결같은 말이 있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고, 좋을 때도 안 좋을 때도 항상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라." 쿵, 닫히는 차문 소리에, 딸 아이의 대답은 묻히기 일쑤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제 마음에 평안을 줍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위에 떨어지듯,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으로 '예수'라는 이름 두 글짜를 새깁니다. 휴대폰에 마음을 빼앗긴 자녀의 알 수 없는 내면 세계에 '예수' 이름자를 씁니다. 강물에 글씨를 쓰듯이,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순간의 마무리 인사로 어김없이. 아무리 말해도 서로에게 질리지 않는 이름, 예수.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 걸음에 나란히 함께 할 이름,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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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한 재주

  • 😄
    '가볍게 털어 놓는 속내에는 가볍게 대답함'이 마음에 자유함을 줍니다. '용한 재주, 특별한 재주'도 알고 보면 따뜻한 시선입니다.

    어쩌다 보니 하나의 글에 댓글 3회째가.. ㅎ

    신동숙 2019.11.27 09:22
    • 용한 재주도 따뜻한 시선으로 받는다면 세상 따뜻하지 않을 일 없을 텐데요.

      한희철 2019.11.28 06:28 DEL
  • 재주가 아니라 ~ 불쑥 불쑥 튀어 나오는 내면적 정서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1.27 13:26
    • 어쩌면 상처와 어둠을 거친 말들일지도요.

      한희철 2019.11.28 06:29 DEL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24)

 

용한 재주

 

아가페 위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주일마다 교우들의 점심 식사를 준비한 고마운 분들이다. 적지 않은 교우들이 주일오전예배를 드린 뒤 점심 식사를 한다. 그 많은 인원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얼마나 고된 일일까. 일 년 동안 묵묵히 감당해 준 교우들이어서 고마운 마음이 컸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교우가 웃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즐겁게 일을 해왔지만 때로는 속상할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수고하는 이들의 진심과는 전혀 다른,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 발품을 팔아 음식을 준비하면 싼 것으로 했다고 핀잔을 하는 식이었다.

 

 

 

 

모두의 마음이 같았으리라. 봉사를 하다보면 그런 서운함과 무심으로 인해 생긴 상처들이 왜 없겠는가. 가볍게 털어놓은 속내에 가볍게 대답을 했다.


“그런 용한 재주를 가진 이들이 있는 것 같아요. 같은 걸 봐도 용케 안 좋은 것만 보고, 같은 말을 해도 용케 안 좋은 말만 골라서 하는, 특별한 재주를 가진 이들 말이지요.”


모두들 가볍게 웃었다. 가벼운 웃음이 무거웠던 마음들을 털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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